인간사 괴롭구나

내 인생 최대의 저주가 있다면 그건 언니의 존재일 것이다. 어려서부터 그녀와 엮이면 크건 작건 피해를 입지 않은 때가 없었다. 물질적인 손해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보다 더 큰 것은 정신적인 손해였다. 악마와도 같은 그 여자와 20년동안 강제로 한 방을 사용하면서 나는 미치지 않고 정상적으로 자란 것이 다행일 정도였다.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내 따귀를 때리거나 머리를 때리는 행동, 내 책을 책꽂이에서 빼어 던져버리는 짓을 수시로 했고 그런 짓과 함께 말할 수 없는 폭언이 뒤따랐다. 그 여자는 말발이 참 좋았다. 그 말발이라는 것이 상대의 이야기는 전혀 듣지도 않고, 아니 아예 상대로 하여금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아주 큰 소리로, 따발총처럼 자기 할 말만 다다다다 내뱉고서 끝내는 거라서 그렇지 말하는 것 자체는 청산유수였다. 그 언변을 이용하여 내 가슴을 뼛속까지 드러날 정도로 후벼파고 또 후벼팠다. 그런 일을 당할 때에 부모에게 알려야 한다는 걸 왜 그때는 몰랐을까. 그냥저냥 많은 것들에 참고 또 참고 사는게 익숙해서였는지 아님 내가 병신이어서인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하여튼 나는 그럴 때마다 입 꾹 다물고 아무 대꾸 없이 그것들을 받아내고 있다가 그 여자의 미친 것 같은 푸닥거리가 잠잠해지고 나면 그녀의 눈을 ‘나름대로’ 피해 일기를 썼다. 그거라도 쓰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다. 난 그 여자가 그 난리를 칠 때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야 물가져와! 라고 퉁명스레, 하인에게 하듯 던지는 한 마디에 싫어..라고 반응했다가는 여지없이 폭력과 폭언이 뒤따랐다. 그래서 내 입은 그 여자가 푸닥거리를 하는 동안에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작은 일기장과 볼펜은 내 미칠 것 같은 가슴을 조금이나마 진정시켜 주는 도구였다. 그러나 그 악랄한 여자는 내가 자기 욕을 일기에 쓴다는 것도 알았다. 아무리 꽁꽁 숨겨놔도 기어코 내 일기를 찾아내어 읽고는 마치 부모가 죽은 것처럼 큰 소리로 곡을 하며 일기를 가지고 엄마아빠에게 달려간다. 이 가시내 보라고. 이 악마같은 가시내를 보라고. 날 이렇게 저주해놨다고.

내 유일한 속풀이는 그렇게 만천하에 까발려지고 부모님은 일기에 적힌 수위높은 말에 혀를 내두르시며 날 정신병자 취급 하던 적도 있었다. 왜 그때는 그여자가 자기 입으로 내게 던진 말들이 일기에 적힌 말들보다 더 악랄했다는 말을 못했을까. 그냥 그 위압적인, 광기어린 분위기에 질려서 아예 말을 못했던 걸까. 그래, 이제와서 그 모든 것을 다 알게 된 엄마가 말씀하시듯, 중간에 죽는 시늉이라도 해서 그 악마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한 내가 가장 큰 죄인일지도 모른다. 그런다고 해서 끊어졌을지는 미지수지만.

뒤늦은 나이에 엄마의 전적인 도움으로 꿈에도 생각 못한 공무원이 되는 호사를 누린지 얼마 되지 않아, 휴직계를 내고 집에 다시 들어앉을 줄은 나를 비롯하여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롯데월드에서 엄마의 척추뼈가 부러지는 것을 보고서도 그 여자는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고생한다거나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가 없었다. 아이를 돌봐주시던 엄마가 중상을 입고, 신랑은 지방에서 아직 서울로 올라오지 못했고, 집 이사는 코 앞이고..나는 공무원이 되어 직장에 잘 다니다가 갑자기 사면초가에 빠졌다. 그 여자는 우리집을 순식간에 그렇게 풍비박산을 내 놓고는 너 인제 아프면 안돼, 아플 여유 없잖아..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유유히 지가 살던 나라로 출국해 버렸다. 우리집에 산적한 모든 일들과 보험사 그리고 롯데월드 본사와 배상 문제를 놓고 지루하고 힘든 싸움을 해야 하는 것 모두가 내 몫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공무원에 임용되어 다닌지 반년만에 원치않는 휴직계를 내게 되었다.

그러나 그 여자에게는 내가 겪고 있는 모든 것이 아무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다닌 지 반년만에 휴직해서 어떻게 할거냐는 엄마의 말이 파면당한 것도 아닌데 왜 그 난리냐는 말을 수도 없이 했다고 하니까. 아마 내가 파면이라도 당해야 속이 시원할 모양이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내가 최종합격을 확인하고서 엄마와 기쁨의 눈물을 흘린 것을 알고서도 그 여자는 꽤나 속이 불편해했다고 했다. 왜 엄마까지 울었냐고 따졌다고 하니까. 이쯤 되면 공무원 합격한 게 미안해질 지경이다.

그 여자와 같이 사는, 내가 형부라고 부르는 남자도 참 할말없는 사람이다. 그전부터 매사 자기중심적이고 빈정대는 태도 때문에 나나 울 신랑과 트러블이 생긴 게 한두번이 아니었긴 했지만..휴직중에 엄마의 생신이 있었다. 그 시기는 이삿짐들을 정리하느라 매일 정신없던 때였고 집에는 짐 정리할 사람이 나뿐이어서 난 하루종일 별로 앉지도 못한채 일을 하던 때였다. 갑자기 평소에 전혀 울리지 않던 인터넷 전화가 울어댔다. 그게 인터넷 전화 벨소리인 것은 나중에야 알았고 나는 아침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웬 알람인가 하여 애꿎은 휴대폰만 잡았다. 뒤늦게 허겁지겁 뛰어나가 전화를 받아보니 형부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형부라는 사람이 그리 반갑지도 않았고, 그보다는 평소에 걸지도 않던 집전화로 웬 전화냐는 뜻을 반씩 섞어 어쩐 일이세요..라고 내가 말했다고 한다. 사실 잠결에 받은 전화라 뭐라고 했는지도 잘 몰랐다. 엄마 생신이라 전화걸었다고 하여 엄마를 바꾸고 난 그냥 그 통화에 신경을 끊고 있었는데 점심 무렵에 언니랑 통화하던 엄마의 표정이 다시 일그러진다.

내가 형부를 사람취급 안했다며 언니가 길길이 날뛴다고 한다. 대체 뭔소리야..라고 하니 전화받아서 어쩐 일이세요..라고 한 것을 문제삼으며 그게 형부를 사람취급 한 거냐고 난리친다는 거다. 난 정말이지 문자 그대로 할말을 잃었다. 잠결에 전화받아 무심결에 내뱉은 말 한마디로 그 난리를 칠거라는건 상상도 못했거니와 우리집 사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나이를 그정도 쳐먹은 사람이면 나의 어쩐 일이세요를 문제삼기 전에, 아니 그게 설령 그렇게 서운했다손 치더라도 언니가 그렇게 사고 저지르고 가서 처제랑 장모님이 고생이 많네..미안하고 힘내..난 이정도는 할 줄 알았고 그게 정상적인 사람의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남자는 그런 말 대신 어쩐 일이세요를 들어 언니에게 불평을 늘어놓은 모양이고 언니라는 여자는 우리집 사정에 는 아랑곳없이 그리고 척추가 부러져 잘 일어나 앉지도 못하는 엄마에게 득달같이 전화를 걸어 그 기집애가 인간이냐고 퍼부은 것이다.

그 일을 계기로 그 여자는 나와 연락을 뚝 끊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며칠에 한번씩 전화를 걸어 내 욕을 해대는 모양이었다. 우리집에 그 사달을 내 놓았는데도 그 여자가 연락이 오면 받아주고 싫은 소리 거의 하지 않았던 나로서는 오히려 그 안하무인의 연락이 휴대폰에서 사라져서 엄청 편해진 것도 있었지만 기분나쁘고 황당한 것도 분명 있었다.  그 여자의 황당한 성격 때문에 엄마랑 그 여자가 국제전화비를 감당해가며 싸우고 서로 나를 사이에 두고 온갖 험한 말을 다 할 때, 난 단 한번도 그 험한 말을 액면 그대로 전한 적이 없었다. 이렇게 싸워서 뭐하겠나 어떻게든 풀게 해야지..라는 생각에 그 험한 말들은 다 내 선에서 정리하고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 만한 말들로 각색하고 포장해서 전달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내가 그런 어려움에 빠졌을 때는 그런 역할을 해줄 사람이 없다. 힘들고 외롭다.

불편한 느낌과 편한 기분이 시소를 타다가 편안함 쪽으로 무게중심이 쏠리고 있을 무렵이었는데 그 여자가 전에 내가 요구했던 치료비를 엄마를 통해 보내며(그마저도 나에게 다 주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고 하는) 어쩐일이세요 사건은 자기들이 좀 오해한 것 같다며, 그리고 어린 시절 나에게 그리 패악을 부린 것은 아무래도 집안 분위기도 안좋고 하다 보니 신경이 예민해져서 나에게 스트레스를 풀었던 것 같다고 말하며 내가 먼저 연락을 해줬으면 한다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이제까지 ‘싸우면'(기실 싸운 기억보다는 일방적으로 당한 경험이 압도적인) 자기가 먼저 말걸고 연락했으니 이번엔 내가 먼저 했으면 한다고..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싸우고 나서 그여자가 걸었다는 말 혹은 취했다는 연락은 그야말로 일방적인 것이었다. 어려서 한 방을 쓸 때는 나에게 주먹질을 하고 있는대로 폭언을 하고 나서 속이 후련해진 후 말 그대로 미칠 지경으로 앉아 있는 나를 갑자기 툭툭 건드리는 거다. 야~ 한마디와 함께. 그게 그 여자가 말하는 ‘싸운 후 먼저 취한 화해의 제스쳐’였다. 미안하다든가 기분 많이 상했냐라든가 그런 말은 전혀 없이 그냥 야 한마디. 그 말에 내가 아무일 없단 듯 방긋 웃으며 대답하지 않으면 2차로 난리가 났다. 이 가시내 아직도 이러고 있다고. 싸운게 언제적 일인데 자긴 다 풀렸는데 혼자 꽁해 있다고 역시 성격 나쁜 년이라고. 이런 화해의 제스쳐를 ‘먼저 한 연락’이라고 한다면, 참 할말이 없을 뿐이다. 하도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난 그 여자는 혼자 북치고 장구치며 다 풀고 아무것도 속에 안 남았다는데 속에 이렇게 뭔가가 가득 남아있는 내가 이상하고 못되고 나쁜 애인가..어린 시절에 혼자 참 많이 고민했었다.

이런데도 엄마는 자매간에 이러고 있는게 견디기 힘들고 싫으시니 내가 그만하고 풀어줬으면 하는 뉘앙스를 계속 비치시는 거다. 그래서 이 밤중에 이렇게 고민하며 글을 쓰고 혼자 눈물을 흘리고 있는 거고. 내 상처는 조금도, 조금도 아물지 않았음을 글 쓰면서 절절히 느끼겠는데 어쩌라는 건지..엄마의 바람에 생각이 흔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원래대로 가기엔 너무 많이 와 버렸고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 내 언행 하나하나를 곡해하고 흠잡을 준비를 하고 있는, 동생이 늦은 나이에 공무원에 합격했다는데도 진심으로 축하해주지 못하는 언니를 가족이라고 하기엔 내 일상이 그리 녹록치가 않다. 내일 엄마에게 다시 말해야겠다. 어릴때도 집안분위기, 엄마의 기분 생각하느라 참고 또 참다가 결국 이렇게 되지 않았느냐고. 썩어가는 과일을 얇은 종이로 덮어놓는 듯한 ‘평화’는 없느니만 못하다고, 다시 말씀드려야겠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강해져야 한다.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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