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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총재, 내년 금리 인상 충격 때 빠져나갈 궁리 세우나

선대인 프로필 사진 선대인 2014년 11월 20일

선대인경제연구소 소장


내년 금리가 오르면 한계가구 중 일부가 디폴트할 것
이(한계가구 디폴트)는 통화 당국의 영역이 아니다
내년 한계가구 중 일부 디폴트가 와도 통화정책을 포기할 수는 없다



이주열 한은총재가 한 언론사 주최 포럼 질의응답에서 했다는 답변이다.(참고기사)


참, 정말 어이없고 무책임하다. 그리고 비겁하다. 내년에 금리가 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알고, 기준금리 내리면 가계부채가 느는 게 뻔한 줄 알면서도 기준금리를 잇따라 내렸나. 이총재 스스로도 말하듯이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며 금리가 하락해도 소비와 투자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약해졌다." 사실이다. 결국 최근의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효과는 하우스푸어 부채 부담을 일시적으로 줄여 부동산 거품을 떠받치는 효과가 거의 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해놓고 이제 와서 내년에 금리 인상으로 한계가구 중 일부가 디폴트해도 한은은 책임 없다는 식의 발언을 하고 있으니 이게 책임 있는 당국자의 말인가. 내년에 금리가 올라 문제가 생겨도 자신은 책임을 벗어날 궁리에서 나온 발언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내팽개치고 기재부 압력에 굴해 기준금리를 내리더니 이제 와 기껏 한다는 말이 이렇다니 도대체 한국에는 믿을만한 공직자가 이렇게도 없나.


더구나 이총재의 무책임한 태도가 여전히 안이한 현실 인식과 결합돼 있다는 점에서 더 문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총재는 "가계부채 증가가 금융기관 대출부실로 연결된 가능성은 높지 않다"며 "이는 소득이 있는 계층의 빚이 많아 대규모 부실화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라고 했다고 한다. 물론 이 같은 인식은 이총재 외에도 많은 경제당국자들이나 금융권 관계자들 상당수가 공유하고 있는 인식이니 특별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도 한은 총재만은 남다른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까지 가계부채 문제가 괜찮다는 한국의 당국자들이 대는 근거를 들어보면 한심하다. 가계부채의 대부분이 고소득층에 몰려 있고, 금융부채 대비 금융자산 규모가 2.2배 정도로 높아서 별 문제가 없다는 식의 레파토리다. 미국의 경우 부채의 고소득층 집중도가 한국보다 훨씬 더 높았다. 또 금융부채 대비 금융자산 비율이 세 배 이상으로 한국보다 더 높았다. 반면 소득 대비 부채 상환액의 비율도 한국보다 더 낮았다. 그런데도 금융위기를 겪었다. 그런데도 한국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더구나 이총재는 한은 스스로 발행한 자료도 제대로 읽지 않는가? 2013년 하반기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만 꼼꼼히 살펴봐도 고소득층에 부채가 많아 별 문제가 없다는 인식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잘 알 수 있다. 당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소득 5분위(상위20%) 가운데 부채가구가 가진 금융자산의 비중은 전체의 24.7%인데 비해 부채를 지지 않은 가구의 금융자산 비중이 29.6%에 이른다. 즉, 같은 소득 5분위 가운데서도 부채가구의 부채 대비 금융자산 규모는 부채를 가지지 않은 가구보다 약 3.16배나 적다. 이 이야기는 소득 최상위계층인 5분위 중에서도 부채를 지지 않은 쪽에 금융자산도 몰려 있을 뿐, 부채를 가진 가구는 부채도 많지만 금융자산은 상대적으로 매우 적음을 알 수 있다. 쉽게 말해 소득이 많은 가구라 해도 부채가 많은 경우에는 모아 놓은 돈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 경우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는 등의 이유로 부채를 갚아야 하는 상황이 될 때 부채를 갚을 여유 자금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현실이 이런데도 말도 안 되는 궤변들을 늘어놓으며 정부 당국자들과 금융권 관계자들이 "한국은 괜찮다"는 말만 입버릇처럼 내놓고 있다. 모두 거짓말이거나 착각일 뿐이다. 가계부채 1050조원을 포함해 총 3400조원의 이자성 부채를 쌓아놓고, 다른 나라들이 가계부채 다이어트를 할 때 열심히 역주행했던 나라. 가계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 비율이 이미 170%(OECD평균 134%)를 넘은 나라가 괜찮다면 그건 기적이다. 그것도 이미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시기의 문제일 뿐 거의 기정사실화되고 있고, 한은 총재마저 이를 인정하는 상황에서도 이러고 있으니 문제가 심각하다.


물론 현재의 심각한 가계부채 문제가 이총재 한 사람이 초래한 문제야 당연히 아니지만, 최악의 상황이 발생한다면 이총재도 일정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반드시 인식하기 바란다. 정권에 굴복해 가계부채 증가를 유도하는 금리정책을 펴고도, 이런 말로 책임을 벗어날 수 있다는 착각에서는 벗어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