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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의 제정을 막는 자는 누구인가

강병국 프로필 사진 강병국 2015년 02월 10일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경향신문 기자와 노조위원장을 지냈다. 노조활동이 계기가 되어 뒤늦게 법률을 공부했다. 원래 관심사는 문학이었지만 직업생활을 하면서 언론과 노동 등으로 관심분야가 넓어졌다. 의무를 다하는 것이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지름길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설 명절을 앞두고 백화점을 둘러보면 50만원을 웃도는 한우ㆍ굴비 등의 선물 상품이 즐비하다. 이런 선물을 주고 받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장ㆍ차관 등의 고위공직자 출신으로 대형로펌이나 대기업의 고문이 되어 수억원의 연봉을 받는 사람들, 마찬가지로 금융기관이나 대기업의 사외이사가 되어 한 달에 몇 시간 이사회에 출석한 대가로 매월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의 보수를 받는 사람들,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이른바 ‘김영란법’이 국회 정무위를 어렵게 통과하여 법사위에 상정되자마자 여러 가지 반론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을 보면서 위와같은 의문을 새롭게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른바 ‘김영란법’은 2011. 6. 14.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그 초안이 보고되었다. 당시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이 공정사회 확산방안으로 ‘공직자의 청탁수수 및 사익추구 금지법안’을 보고했는데, 이것이 ‘김영란법’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법안은 국무회의 석상에서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저항에 부딪힌 것으로 보도되었다. 당시 국무회의에 참석한 몇몇 장관이 “청탁이 아니라 건전한 의사소통으로 볼 수 있는 만남도 있다”, “어디까지가 청탁이고 민원인지, 또 의견 전달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공직자윤리법을 고치는 것으로도 가능하다”며 이 법안에 반대했던 것이다. 그 후 이 법안은 2011년 10월과 2012년 2월 공개토론회를 통해 전문가와 각계 각층의 의견을 수렴했고, 부처간 협의를 거쳐 정부안으로 성안되어 2013. 8. 5. 국회에 넘겨졌다. 국무회의에 보고된 후 정부안을 마련하기까지 2년 2개월이 걸린 것이다.


사실 역대 어느 정부도 공직자의 부정부패를 방관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언론 보도를 통해 거의 하루가 멀다 않고 터지는 사건 중 대표적인 것이 뇌물사건이다. 공무원과 정치인의 수뢰행위는 물론 시민단체 대표가 뒷돈을 챙기다가 법의 심판을 받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그동안의 정부 대책이 시늉만 냈을 뿐 부패의 발본색원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얘기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2014년 대한민국의 부패인식지수(CPI)는 55로서 조사대상 175개국 중 43위였다. OECD가입 34개국 중 27위로서 부끄러운 수준이고, 아시아권에서 싱가포르(7위), 일본(15위), 홍콩(17위), 대만(35위)에 비해 한참 뒤떨어져 있다.


수뢰혐의로 재판을 받게 된 거의 모든 공직자들은 대가관계 없는 금품수수임을 강변하며 처벌을 모면하려 든다. 금품을 받은 사실이 분명한데도 직무와의 대가성이 밝혀지지 않아 처벌을 면하는 경우가 실제로 자주 생긴다. 김영란법은 공직자가 일정액 이상의 금품을 받으면 대가성과 직무관련성을 따지지 않고 형사처벌하는 것이 그 원안이었다. 그런데 정부가 ‘부정청탁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안’이란 이름으로 국회에 제출한 김영란법은 원안과는 달리 직무관련성이 있는 금품수수만 형사처벌하고, 직무관련성이 없는 경우는 과태료를 물리는 내용으로 완화되었다.


김영란법은 국회에 제출된 후 1년 5개월동안 상임위의 법안심의를 거쳐 우여곡절 끝에 법사위에 넘겨졌는데, 심의 첫날부터 여러 가지 반론이 제기되면서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될 전망이 불투명해졌다. 법사위 논의의 쟁점은 이 법의 적용범위가 너무 넓고 청탁의 개념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지만 이것이 법제정을 늦출 이유는 될 수 없다. 청탁의 개념이 명확치 않다는 반론은 김영란법이 국무회의에 최초 보고된 때부터 제기된 것이고, 적용범위가 넓다는 점은 모든 국민에게 적용되는 법의 일반적 성격에 비추어 애당초 문제가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가 김영란법을 국회에 발의한 2013년 8월경 워싱턴포스트지는 조지프 필 전 주한 미8군사령관이 중장에서 소장으로 강등되어 전역한 소식을 보도한 적이 있다. 필 전 사령관이 2008년~2010년 한국 근무시절 한국인으로부터 받은 몽블랑 펜세트와 가죽 가방 등의 선물이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미국의 공직자 윤리기준은 공무원과 그 가족이 한번에 20달러, 연간 총 50달러 범위 내에서만 선물을 받을 수 있고, 이를 초과하면 신고하도록 되어 있는데, 연방수사국(FBI)과 육군 범죄수사대 등의 조사로 윤리기준 위반이 드러난 것이다.


김영란법이 국무회의에 보고된지 만 3년 8개월, 국회에 제출된지 1년 6개월이 흘렀고, 그동안 이 법의 탄생을 희구하는 여론의 뜨거운 지지에도 불구하고 법제정 과정의 험로는 계속되고 있다. 이를 지켜보면서 김영란법이 제정되더라도 국민들이 공직자의 직무수행을 끊임없이 감시하지 않는 한 부패 청산과 청렴한 공직사회의 구현이 결코 쉽지 않은 과제임을 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