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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협상의 자세에서 배우는 국내 문제의 해법

강병국 프로필 사진 강병국 2015년 08월 28일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경향신문 기자와 노조위원장을 지냈다. 노조활동이 계기가 되어 뒤늦게 법률을 공부했다. 원래 관심사는 문학이었지만 직업생활을 하면서 언론과 노동 등으로 관심분야가 넓어졌다. 의무를 다하는 것이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지름길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주말인 8월22일부터 무박 3일간 진행된 남북한 고위급 회담의 결실은 6개항의 합의사항이다. 이를 도출하기 위하여 1차 10시간, 2차 36시간에 걸친 마라톤 협상을 벌였음을 되돌아보면 인간사에서 상반된 입장을 조율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실감한다.


그런데 우리는 대체로 반대 의견과의 조율은 물론 토론 자체에 서툴 뿐만 아니라, 일방의 의사를 대차게 밀고 나가는 것을 갈등의 해결책으로 여기는 경향이 짙다. 심심치 않게 언론에 강행처리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협상에서의 강공책이 별다른 부끄러움 없이 제시되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특히 국회에서 여야 간의 쟁점 법안을 처리하는 풍경에서 위와같은 경향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국회의원 간의 몸싸움과 표결 불참 등이 일방통행식 의사진행방식이 횡행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사에는 사실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가 숱하게 많다. 몸싸움이나 강공책으로는 출구를 찾을 수 없는 미로가 도처에 늘려 있다. 우리가 마라톤 협상에 익숙치 않은 것은 인류사의 난제에 관하여 철학적 성찰이 부족한 때문일 것이다. 인류사의 난제로는 안락사, 낙태, 동성애, 매매춘, 인간복제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안락사는 네덜란드만이 전면 허용국이고, 영국 프랑스 스위스 일본 등 11개국이 부분 허용국이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금지되어 있다. 불치의 환자가 겪는 고통과 그 가족의 난감한 처지가 안락사의 허용을 요구한다면 불치 판정의 의학적 한계와 인간생명의 존엄성이 안락사를 금지하는 근거이다. 낙태 역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한다는 차원에서 허용하는 국가도 있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생명 존중과 모성보호의 차원에서 금지하는 국가도 많다.


동성애에 관하여는 2000년 12월 네덜란드가 의회 표결을 통해 처음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이래 20개국이 합법화하였지만 이를 죄악으로 간주하여 사형에 처하는 나라도 있고 우리나라와 같이 동성간의 법률혼을 인정하지는 않지만 동성애 자체는 방임하는 국가도 많다. 국제앰네스티가 최근 성매매를 비범죄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발표해 파란을 일으켰지만 매매춘을 허용할 것인지 여부는 여전히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복제양 돌리로 시작된 동물복제 기술은 이미 인간복제를 넘보는 수준에 이르렀고, 손오공의 마술을 구사하려는 인간의 욕망을 언제까지 성역에 가두어둘 수 있을 것인지도 명쾌한 답을 내리기 어려운 문제다. 무박 3일이 아니라 평생을 불철주야로 토론해도 마땅한 해법이 나오기 어려운 난제 중의 난제들이다.


우리나라는 남북 대치 상태에서 인류사의 난제 외에 특수한 난제를 안고 있다. 종교적인 이유에 의한 집총 거부자,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대체 복무를 허용할 것인가, 북한 탈출민에 대한 중국의 강제 북송조치에 대하여 언제까지 묵인하고 있을 것인가 등이 그것이다. 우리의 경제력과 국제사회의 지위에 비추어 난민 인정 비율을 얼마나 확대할 것인가도 쉽지 않은 문제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2014년 난민신청인은 2,896명이었지만 난민 인정은 94명에 그쳤다. 정부가 하반기 핵심 국정과제로 제시한 공공부문 개혁, 노동개혁, 교육개혁 등도 해묵은 복지논쟁과 마찬가지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이어서 해법이 쉽지 않다.


이러한 난제에 쾌도난마식 해법은 없다. 반대 입장을 인정하고 균형감각을 발휘하는 것이 문제 해결에 다가가는 접근법이다. 상충되는 의견의 핵심이 말살되는 일이 없도록 대립적 가치를 최대한 조화시키는데 타협의 실마리가 있다. 이번 남북 협상의 결과물인 6개항에서 배우는 교훈이다. 일거에 모든 쟁점을 다 해결하지 못해도, 타협안이 명쾌하지 못하더라도 만족해야 한다. 재협상의 기회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통령이 중국의 전승기념일 행사에 참석하기에 앞서 2개월 후의 방미계획을 미리 발표한 것도 균형 외교의 방법론, 국제정치에 있어서 균형감각을 발휘한 예로 보인다.


교육부가 초등학교교과서의 한자 병기를 놓고 찬반 양론이 첨예하게 부딪히고 있는 상황에서 한자 병기정책을 강행하려 하는 것은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먼 접근법이다. 어떤 방안으로 결론이 나든 신물이 날때까지 마라톤 협상을 거쳐 타협 지점에 도달하는 것이 난제를 푸는 유일한 방책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