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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대로 하는 공직자들에게 새해 희망을 건다

강병국 프로필 사진 강병국 2015년 12월 22일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경향신문 기자와 노조위원장을 지냈다. 노조활동이 계기가 되어 뒤늦게 법률을 공부했다. 원래 관심사는 문학이었지만 직업생활을 하면서 언론과 노동 등으로 관심분야가 넓어졌다. 의무를 다하는 것이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지름길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대통령과 법무부장관이 대국민 담화나 취임사를 통해 강조하는 말 중에 법치주의가 있다. 그런데 ‘법치(法治)’는 ‘인치(人治)’의 대립개념으로 탄생한 것으로 권력자가 내세울 용어는 아니다. 권력자가 이를 강조하다가는 양날의 칼이 되어 자신이 법치의 칼에 베이기 쉽기 때문이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청와대의 노동개혁법안과 경제살리기 법안의 직권상정 요구를 거부하면서 새삼 권력분립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 정의장은 현행 국회법상 법률안의 직권상정은 천재지변, 전시, 사변, 국가비상사태, 여야합의의 경우에만 가능하다는 이유로 청와대의 요구가 ‘초법적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30부(부장 이동근)는 최근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의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 관련 의혹 보도에 관하여 무죄판결을 선고했다.


올 한해 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을 비롯하여 대통령의 독주가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는 가운데 나라 운영의 시스템이 견제장치를 잃어버리지는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여겨진다.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 중반기를 넘어선 올해에도 숱한 의혹만 제기된 채 국력을 소모하는 국정난맥상이 계속되었다. 국가정보원 등의 대선 개입 의혹사건이 여전히 재판 진행 중이고, 자원외교 비리 사건, 방위산업 비리, 국정원의 휴대전화 해킹 의혹, 세월호 진상규명 등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히 해소된 것이 없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회장이 죽음으로써 세상에 고발한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여권 인사 8명 중 2명만이 재판에 넘겨진 채 그 진실은 묻혀버렸다. 대통령령이나 부령 등이 법률과 합치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경우 국회 상임위원회가 소관 중앙행정기관의 장에게 수정ㆍ변경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한 국회법 개정법률에 대하여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고, 국회의 재의결 절차에 여당의 불참으로 개정안이 자동 폐기되면서 여당 원내대표가 물러나는 일이 벌어졌다. 메르스 사태가 진정되자 이번에는 난데없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쟁에 온 나라를 몰아넣어 마침내 이를 강행하는 행정독재를 보여준 것이 올해 정치사의 축약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사실 국회의장이 국회법상의 요건을 갖추지 못해 대통령의 관심 법안을 직권상정하지 않겠다는 것이 국민들의 찬사를 받을 일은 아니다. 법원이 산케이신문 지국장의 명예훼손죄 여부에 관하여 심리하여 법을 적용한 결과 무죄 판결을 선고한 것이 각별한 의미를 부여받는 게 이상한 일이다. 헌법은 대통령의 독주를 막기 위하여 국회와 법원에게 이를 견제할 권한과 의무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대로 하는 행위가 특별히 주목받는 것은 비정상이다. 이러한 비정상이 발생한 이유는 법대로 하지 않는 공직자가 쉽게 발견될 뿐만 아니라 법대로 하다가는 불이익을 입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과거사 재심 사건에서 무죄를 구형한 임은정 검사가 명령불복종 등을 이유로 정직 4개월의 중징계를 받았다가 징계처분 취소소송에서 승소하자 이번엔 7년마다 받는 검사적격심사에서 심층심사 대상으로 분류되어 강제퇴직 여부를 가리는 특정사무감사를 받게 되었다. 검찰청법 제4조 제1항은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범죄수사, 공소제기, 법원에 대한 법령의 정당한 적용 청구 등의 직무와 권한이 있고, 같은 조 제2항은 검사는 그 직무를 수행할 때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검사가 피고인의 적(敵)이 아니라 피고인에게 이익되는 사실도 조사하여 제출하여야 한다는 뜻의 검사의 객관의무는 대법원 판례에 의하여도 확인된 것이다. 대법원은 위 검찰청법 제4조를 인용하면서 “뿐만 아니라 형사소송법 제424조는 검사는 피고인을 위하여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검사는 피고인의 이익을 위하여 항소할 수 있다고 해석되므로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실체적 진실에 입각한 국가 형벌권의 실현을 위하여 공소제기와 유지를 할 의무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피고인의 정당한 이익을 옹호하여야 할 의무를 진다고 할 것이고, 따라서 검사가 수사 및 공판과정에서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발견하게 되었다면 피고인의 이익을 위하여 이를 법원에 제출하여야 한다.”고 판시(2001다23447 판결)했다.


그러나 이러한 객관의무를 법대로 실천하는 검사는 지극히 드물다. 이는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사건의 수사팀장이었던 윤석렬검사가 수사팀에서 배제되는 등 법대로 하려는 검사가 불이익을 입는 현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반면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사건과 관련하여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공직선거법 적용을 반대하여 수사팀의 반발을 샀던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그 후 국무총리가 되었다.


법대로 생각해 보면 여당 의원 중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에 따라 친박ㆍ진박ㆍ탈박ㆍ복박 등으로 분류되고 있는 현실 자체가 헌법상 국회의원이 부여받고 있는 직분과 합치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즉 헌법 제46조 제2항은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박근혜가 국가이익과 동의어가 아님이 명백한데도 친박 진박 등의 분류를 하는 언론에 대하여 명예훼손이라고 항의하거나 소송을 제기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역사의 대하는 탁류의 모습을 보이게 마련인가. 수많은 존재들, 삼라만상의 애환과 분노, 진실과 거짓이 섞여 유장하게 흘러가는 역사가 청정무구의 맑은 모습을 보인다면 이 또한 모순이 아니겠는가. 우울한 세밑 풍경 속에서 ‘법대로’를 실천하는 이들에게서 다시금 새해에 길어올릴 희망을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