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리부동한 현실과 공천 갈등

총선을 앞두고 여야 정당이 모두 공천을 둘러싸고 암투와 내홍 국면에 돌입한 형국이다. 공천은 이름 그대로 사천(私薦)과는 반대되는 개념으로 공정하고 정당한 추천을 뜻한다. 정당정치가 정착되면서 정당의 추천을 얻지 못한 무소속 후보자는 유권자의 선택을 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런 만큼 정당의 추천을 받는 것이 당선과 동일시되는 지역구가 상당수에 이르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또한 정당정치가 양당제 내지 과점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비례대표 후보자 명부의 순위 10번 내에 든다는 것은 당선을 뜻한다. 그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선거를 치르기도 전에 비례대표 의원으로 당선이 확정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러한 패러독스를 어떻게 정당화할 것인가. 여기에서 수사학이 등장한다. 공직선거법 어디에도 정당이 하는 추천을 공천이라고 지칭하고 있지 않다. 공천 절차는 법적 제약이 없고 각 정당마다 당헌에 따라 달리 정하고 있다. 말이 공천이지, 실상은 공적 추천이라고 볼 근거가 없다. 그런데도 정당들은 한결같이 공천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것은 유권자들에게 후보자를 멋지게 포장해서 내놓는 ‘레토릭’에 불과할 수 있다. 공천을 둘러싼 정당 내 갈등의 발화점이 여기에 있다. 명실상부하게 공정하고 정당한 추천을 하라는 요구가 나름의 정당성을 갖는 것이다. 권력자와의 친소관계 등 객관성 없는 심사기준으로 밀실공천, 전략공천을 하는 것은 공천이란 명칭과 모순됨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의 정치사는 얼마 전까지 정치 거물의 ‘가방모찌(편집자주 : 어떤 사람의 가방을 메고 따라다니며 시중을 드는 사람)’로 활동하는 것이 정치권 입성의 첩경임을 보여주었다. 정치 거물들이 역사의 전면에서 사라지면서 이러한 현상도 희미해지고 있지만, 문고리 권력에서 보듯 아직은 그 잔재가 남아 있다. 특히 정당에 거액의 후원금을 내고,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되는 사례도 아직은 청산되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선거공영제하에서 선거비용의 국고 부담이 원칙이지만 국고가 부담하지 않는 선거비용이 여전히 많고, 정당은 비례대표 추천과 관련하여 이른바 공천장사를 해 온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소위 여야 정당이 텃밭으로 여기는 지역구의 경우 유권자의 심판이라는 선거의 실천적 의미는 많이 퇴색되었다. 공천이 선량이 되는 관문이 되고 말았으니 선거운동기간이 시작되기도 전에 친박과 비박 간, 친노와 비노 간 공천 전쟁이 전개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사실 우리 사회의 갈등 중 많은 부분은 이름값을 못해 발생하는 것이 많다. 공기업의 임원을 제대로 선출하기 위하여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상 임원추천위원회를 두고 있지만, 낙하산 인사 관행은 그치지 않고 있다. 업무 관련성 없는 인사가 공기업의 기관장이나 감사로 추천된다는 것은 임원추천위원회가 해당 공기업의 업무에 관하여 학식과 경험이 풍부하고 능력을 갖춘 사람을 기관장 등으로 추천해야 한다는 위 법률 규정을 위반한 것이다. 경북대 부산대 한국방송통신대 공주대 등의 총장 후보자에 대하여 교육부가 임용제청을 하지 않는 것도 유사한 사례다. 교육공무원법상 대학의 총장 임용추천위원회가 총장 후보자를 선정하면 교육부장관은 대통령에게 임용제청을 해야 하는데, 총장 후보자가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교육부가 제청을 거부함으로써 국공립대학의 총장 공백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이는 헌법 제32조의 교육의 자주성, 정치적 중립성, 대학의 자율성에 위배되는 처사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서울대 법대, 판사 출신이라는 대법관 면모의 획일성을 타파하여 다양한 출신의 대법원을 만들기 위하여 도입된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도 설치 목적과는 달리 이름값을 하지 못하는 구조를 보인다. 10명의 위원 중 선임대법관, 법원행정처장, 대법관이 아닌 판사, 대법원장이 위촉한 각계 전문가 3명 등 6명이 대법원장의 영향을 받는 구조여서 위원회 설치의 진정한 뜻에 걸맞지 않은 이율배반적 구성을 보이고 있다. 대법원장의 독단을 방지하여 대법원 구성에 다양성을 확립하기 위한 기구가 도입 취지를 외면한 채 표리부동한 관성을 답습하고 있다.

공정을 강조하는 용어나 기구의 이면에는 심각한 불공정이 존재한다는 자조적 평가가 설득력이 있다. 북핵 위기에 개성공단이 폐쇄되고 핵무장론이 제기되는 등 한반도에 긴장상황이 조성되고 있다. 이를 북풍이라는 단어와 연관 짓고 싶지 않지만, 월스트리트 저널은 며칠 전 미국이 지난해 말 북한의 평화협정 제안을 거절한 후 북한이 올해 들어 핵실험을 한 것으로 보도했다.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가 대미 압박용이라면 우리 정부의 초강수가 적절했는지도 다시 음미할 여지가 있다.

네이버 검색창에 북풍을 검색하면 다음과 같은 요지의 설명이 뜬다.

「북풍(北風)이란 언론이 만들어 낸 말로 ‘북한 변수’를 일컫는 말이다. 1996년 4·11 총선 며칠 전에 판문점에서 전개된 북한군의 갑작스런 무력 시위를 계기로 북풍이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했다. 따라서 북풍이란 선거 전에 발생하는 북한의 돌발행동을 말하는 것으로 북풍이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선거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87년 대선 전에 발생한 KAL기 폭파 사건 및 선거 전날 폭파범 김현희의 압송 입국, 92년 대선 전에 안기부가 발표한 거물 간첩 이선실 및 남조선노동당 사건 등이 대표적 사례이다. 그리고 두 사건은 여론조사 결과 각각 당시 여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김영삼(YS)의 당선에 기여한 것으로 나왔다.」

올해의 북핵 위기가 북풍인지 아닌지는 몇 개월 내에 판명 날 것이다.

우리가 겪는 혼란상의 근본 원인은 표리부동과 거짓말에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거짓말을 해도 별 허물이 되지 않는 풍토가 사태의 해결을 미궁에 몰아넣는다. 표리부동한 사회, 거짓말하는 풍토를 혁파하려는 방안은 정직이 최선임을 체질화하는 교육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금언을 되새기며 백년대계의 첫걸음을 내디뎌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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