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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불거진 법조비리를 지켜보며

강병국 프로필 사진 강병국 2016년 05월 17일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경향신문 기자와 노조위원장을 지냈다. 노조활동이 계기가 되어 뒤늦게 법률을 공부했다. 원래 관심사는 문학이었지만 직업생활을 하면서 언론과 노동 등으로 관심분야가 넓어졌다. 의무를 다하는 것이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지름길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또다시 법조비리가 드러났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가 구속된 기업인들을 보석이나 집행유예로 빼주겠다며 100억 원을 받은 사건이 물의를 빚고 있다. 해당 기업인의 원정도박사건을 변호하여 검찰에서 2014년과 2015년 무혐의 처분을 받아 낸 검사장 출신 변호사도 탈세와 로비의혹 등으로 수사대상이 되어 있다.


법조비리의 역사를 살펴보면 1998년경의 의정부 법조비리, 1999년경의 대전 법조비리가 온나라를 뒤흔든 데 이어 2005년과 2006년의 법조 브로커사건, 2010년의 스폰서 검사 사건, 2011년의 벤츠 여검사 사건, 지난해 검사 출신 수원지법 판사가 사채업자로부터 뇌물을 수수한 사건 등이 불거졌다.


법조비리가 간단없이 반복되는 이유는 검사와 판사가 생사여탈권을 가진 대표적인 권력기관이지만 그 통제 장치가 허술하기 때문이다. 특히 인신구속과 관련한 형사 사건이 법조비리의 온상이 된다.


검사가 판사보다 법조비리에 자주 연루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검사는 형사사건만 다루지만, 판사는 형사사건 외에도 민사, 행정사건 등을 담당한다. 특히 검사는 기소독점권을 갖고 있으므로 죄가 있더라도 증거불충분으로 혐의없음, 기소유예 등의 불기소처분을 내리면 그것으로 사건은 대부분 종결된다. 즉, 검사의 불기소처분은 대체로 사건에 종지부를 찍는 효력을 발휘한다. 이에 비하여 판사는 설혹 피고인에게 형량을 줄여 주거나, 집행유예 또는 무죄 판결을 내리더라도 피고인이나 검사의 상소에 의한 2심과 3심의 심리가 남게 된다. 즉, 1심 판사의 판결은 사건에 종지부를 찍는 효력이 적다. 1심 판결에 대하여 검사와 피고인이 모두 항소하지 않아 1심으로 사건이 종결되는 경우는 우연에 속한다.


감방을 안방처럼 드나드는 누범이 아닌 한, 구속 위기에 처한 보통 사람들은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드는 절박한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절박한 상황을 이용하는 것이 법조 브로커들이고, 이들과 결탁한 법조인들이다.


이번 법조비리도 이러한 비리의 본질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도박죄로 1심에서 1년 징역형을 받은 기업인에게 항소심에서 보석이나 집행유예를 받게 해 준다는 조건으로 거액의 수임료를 뜯어낸 것이다. 사실 아무리 벼락부자가 된 사람이라도 구속되거나 실형을 선고받을 때까지는 거액의 변호사 비용을 내지 않으려 하는 게 보통이다. 따라서 거액의 수임료는 그 자체가 구속되었거나 구속될 위기에 처한 피의자나 피고인의 궁박한 상태를 이용한 것이라는 몰염치한 성격을 벗어나기 어렵다.


민법 제104조는 ‘당사자의 궁박, 경솔 또는 무경험으로 인하여 현저하게 공정을 잃은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신병이 구금되었거나 구금될 위기는 궁박에 해당하고, 그러한 상황에서 변호사와 체결한 거액의 수임료 약정은 무효일 가능성이 크다. 과다 수임료 사건이 법정에 가면 대부분 계약한 내용과 관계없이 수임료가 감액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인간의 절박한 상황을 이용할 수 있는 대표적 직종은 의료인과 법조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의료인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환자에게 생사여탈권을 가진 직종이고, 법조인 역시 자유를 박탈당하였거나 박탈당할 위기에 처한 피의자 또는 피고인에게 생사여탈권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유여탈권을 가진 직종이다. 의료윤리나 법조윤리가 타락하면 그 사회적 폐해는 엄청나고, 의료인과 법조인에게 직업윤리가 강조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치명적인 질병의 치료제를 독점 생산하는 제약회사도 이러한 수퍼 갑의 위치에 설 수 있다. 지난해 미국에서 펀드 매니저 출신이 제약회사를 인수하고, 에이즈 치료제의 특허권을 사들인 뒤 한 알에 13.5달러 하던 에이즈 치료제의 값을 750달러로 무려 55배 인상하여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이러한 법조 비리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은 사회윤리와 정의가 확립되어 비리를 허용하지 않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그러나 짧은 기간 내에 사회윤리가 정착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그 전에는 검사와 판사의 재량권을 통제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특히 이 땅에는 자본주의의 윤리적 토대 없이 졸속 성장을 하는 바람에 천민자본주의와 배금주의가 팽배해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다른 나라보다 더더욱 검사와 판사의 독점적 권력을 통제할 수 있는 치밀한 장치가 마련되어야 하는 이유다. 검찰의 구속기준과 법원의 양형기준을 정비하고,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지난해 8월부터 시행 중인 재판부와 연고가 있는 변호사가 선임된 사건의 재배당 제도를 확산시키며, 전관예우방지법을 실효성 있게 집행하는 등의 대책이 강구되어야 한다. 아울러 법조인들이 법조비리를 막지 못하면 공멸한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머리를 맞대어 지혜를 모은다면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비리 근절책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법조비리도 한바탕 소나기가 내리듯 천둥 번개를 몰아온 뒤 아무런 대책도 없이 잠잠해질 공산이 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법조비리가 불거졌을 때 새삼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한 것처럼 부산을 떨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