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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돈의 사회학

강병국 프로필 사진 강병국 2016년 07월 15일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경향신문 기자와 노조위원장을 지냈다. 노조활동이 계기가 되어 뒤늦게 법률을 공부했다. 원래 관심사는 문학이었지만 직업생활을 하면서 언론과 노동 등으로 관심분야가 넓어졌다. 의무를 다하는 것이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지름길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무인도에서는 돈이 필요 없다. 돈을 쓸 곳이 없고 돈을 원하는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돈은 물물교환의 불편을 덜기 위하여 세상에 태어났다. 따라서 돈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산물이고, 태생적으로 분업과 협동의 매개체이다. 다른 사람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돈이 존재할 수 없다. 10여 년 전 이러한 내용으로 일간지에 칼럼을 기고했을 때 편집자는 대뜸 제목을 ‘돈의 사회학’이라고 붙였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돈이 가치저장 기능을 발휘하면서 인간의 돈에 대한 탐욕이 발동되었다. 인간의 탐욕은 흔히 사자와 같은 맹수의 약육강식과 비교된다. 맹수는 먹을 만큼만 사냥하고 먹이를 따로 저장하지 않는 데 비해 인간은 필요를 넘어 부의 바벨탑을 쌓는다. 인간 세계의 약육강식이 정글의 논리를 뺨친다는 비판이다. 강자의 돈에 대한 탐욕,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약자에 대한 착취는 자연의 섭리를 배반하는 것이다.


돈이 범죄와 얽혀 세상을 어지럽히는 현상도 주로 돈의 가치저장 기능에서 비롯된다. 정운호 게이트에 연루된 법조브로커와 전관예우 변호사들ㆍ검찰수사관들이 그러하고, 면세점 입점의 대가로 뒷돈을 받은 롯데가의 딸도 재벌로서는 푼돈에 욕심을 냈다가 쇠고랑을 찼다. 주식대박을 터뜨린 검사장과 리베이트 수수 혐의를 받는 국회의원들, 회삿돈 횡령이나 분식회계에 의한 사기대출 혐의를 받는 대우해양조선의 전직 사장들도 모두 돈의 제단에 올려진 희생이나 제물에 다름 아닐 것이다. 돈은 꼬리가 길어 반드시 흔적을 남기는 점을 직시하지 않은 채 욕심을 부리다가 대가를 치르게 된 사람들이다.


짊어지고 갈 것도 아닌 돈, 그것을 둘러싼 쟁탈전이 가관이다. 지금도 진행 중으로 보이는 롯데가 왕자의 난, 삼성가 장남과 차남 사이에 전개된 천문학적 상속재산 분쟁 등이 그러하다. 돈을 둘러싼 가족간의 목숨을 건 불화와 갈등은 또 어떠한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이 수용되면서 거액의 보상금을 탄 형이 도와 달라는 동생을 공기총으로 사살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상속재산 때문에 가족 간에 적대감을 갖게 되는 일이나 황혼이혼에 의한 부부간의 재산분할 다툼은 돈이 초래하는 인간사의 부끄러운 그늘이다.


국부론이 출간될 무렵까지만 해도 돈은 실물경제의 그림자로 취급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화폐불임설에서 보듯 돈에 이자를 붙이는 것 자체가 고대와 중세에는 금기시된 것으로 보인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이란 작품에는 포샤가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일격을 가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돈을 빌려주는 사업을 유대인만이 한 점, 고리대금업자를 함정에 빠뜨리는 장면으로 관객의 박수와 카타르시스를 이끌어 낸 점에서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16세기 말의 돈에 대한 관념을 읽을 수 있다.


윤리적이 아닌 부의 축적은 오래 유지될 수 없다. 국부론으로 경제학의 원조가 된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을 출간하기 17년 전 도덕감성론을 저술한 사실은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다. 아담 스미스는 국가의 부를 연구하기 전에 오랫동안 윤리학 교수로 활약했다. 오늘날 시장경제의 원리인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한 것도 도덕감성론에서였다. ‘보이지 않는 손’은 사람들이 이기적으로 행동하더라도 자신과 타인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공감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사익 추구가 사회 전체에도 이익이 된다는 논리에 근거하고 있다. 아담 스미스가 자유 시장경제를 주창하면서도 독점과 경제력 집중에 반대한 배경에는 이러한 도덕철학이 있었던 셈이다. 국부론을 토대로 한 자본주의는 그 후 이윤의 무한 추구와 승자 독식의 시대로 전개되면서 윤리적 토대를 잃어 이제 지속가능한 임계점을 지나 파멸의 종착점이 가깝다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돈이란 신기루 같은 것이기도 하다. 올해 초 첫 1주일 동안 유가 하락과 북한 핵실험, 중국 경기의 연착륙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세계 증시에 상장된 주식의 시가총액이 약 4조 2천억 달러(한화 약 5,030조 원) 줄어들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1주일 사이에 세계 3위 경제대국인 일본의 2015년 GDP(4조 4천억 달러)에 맞먹는 돈이 사라진 것이고, 우리나라의 지난해 GDP (1조 3,212억 달러)의 3배가 넘는 돈이 증발해 버린 것이다. 과거엔 실물자산이 대부분이었지만 현재는 선물지수와 같이 예측과 평가 자체가 자산으로 둔갑하면서 돈의 휘발성, 그 신기루의 성격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누구나 경험하듯 돈은 양날의 비수임이 틀림없다. 거액의 비자금이 쌓인 비밀금고의 압수수색 현장에서 풍겨나오는 돈의 악취가 이를 대변한다. 돈이 풍요로운 삶과 행복을 가져다줄 수도 있지만 지나치면 패가망신을 자초하는 화근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사람마다 사주팔자의 배에 재물을 실을 수 있는 선적량이 정해져 있는데 무리하게 욕심을 부리다간 인생의 항로에서 배가 가라앉는 낭패를 당하는 것이다.


구약 창세기에 나오는 바벨탑은 인간의 오만을 상징한다. 바벨탑에 대한 하나님의 응징으로 인간의 언어가 나누어져 인류의 의사소통이 막힌 점을 되돌아보면 돈의 바벨탑이 후손들에게 어떤 불행을 안겨줄 수 있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상속세 폐지에 반대하는 미국의 거부들과 전 재산을 장학재단 등에 기부한 한국의 부자들이 하나같이 자식에게 물려주는 많은 재산이 자식을 망칠 수 있다고 믿는 데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돌고 도는 것이 돈이고, 있다가도 없는 것이 돈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잡는다지만 허겁지겁 덤비다간 코만 깨지고, 잡았다고 까불다간 사그라진다”


오래전 유행했던 ‘사람나고 돈 났지’라는 대중가요의 노랫말 속에 우리가 견지해야 할 돈의 철학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