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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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국가혁신방안이다.

강병국 프로필 사진 강병국 2014년 11월 17일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경향신문 기자와 노조위원장을 지냈다. 노조활동이 계기가 되어 뒤늦게 법률을 공부했다. 원래 관심사는 문학이었지만 직업생활을 하면서 언론과 노동 등으로 관심분야가 넓어졌다. 의무를 다하는 것이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지름길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우리 사회의 부패상이 점입가경이다. 뇌물수수만으로는 부족하였는지 사회지도층의 성추행과 공연음란행위가 연이어 물의를 빚고 있다. 검찰 고위직 출신들이 이에 관련된 것은 무소불위의 검찰권을 행사해 온 직업적 습성에 기인한 것으로 보여 권력형 성범죄로 지칭해도 무리가 아닐 듯하다.


특히 이들 권력형 성범죄 혐의자들은 수사를 받으면서 초기에 한결같이 범행을 전면 부인하는 태도를 보인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피해자가 무고했다는 식으로 오리발을 내밀었을 뿐만 아니라 기자회견을 열어 대국민 사기극을 기도한 위인도 있다. 이는 허위진술에 대하여 별도의 범죄로 처벌하지 않는 우리 형사법상의 미비점 때문인지도 모른다. 미국 연방법은 연방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의 업무에 속하는 사항에 관하여 허위진술, 허위자료 제출을 하면 이를 처벌하는 소위 사법방해행위 처벌규정을 두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는 선서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거짓말하는 것을 처벌하는 규정이 없다. 따라서 현행법상 수사기관에 출석한 자는 일단은 범행을 부인하는 게 상책이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범행이 드러나면 그때 시인해도 늦지 않다. 검사 출신들이 이를 모를 리 없으니 일단은 범행을 부인하고 보는 것이다. 나아가 기자회견을 자청하여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한 자가 생겼으니 후안무치의 진수를 보여준 셈이다.


윗물이 흐리면 아랫물이 흐려질 수밖에 없듯 이들 지도층 인사들의 윤리의식 마비는 민간의 도덕성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 민간업계의 도덕성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공정거래위원회의 홈페이지에 실린 한 두 달간의 보도자료만 보아도 여실히 나타난다.


수익률 등을 부풀려 창업희망자를 속인 커피 가맹사업주, 블로그 운영자에게 뒷돈을 주고 추천하는 글을 올리게 한 사업자, 신고 걷기만 해도 다이어트 효과가 있다고 광고한 신발메이커 등이 공정위로부터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종잇값을 담합해 종이컵, 컵라면 등의 가격인상요인을 제공한 깨끗한 나라, 한솔제지 등 6개 제지회사도 시정명령과 함께 107억여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울릉도와 독도 간 여객선 요금을 서로 짜고 인상한 대아고속해운 등 4개사도 시정명령과 과징금 부과를 받고 검찰에 고발조치됐다. 서울지하철 9호선 공사와 관련, 입찰 담합을 한 삼성물산과 현대산업개발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190억 원을 부과받고 검찰에 고발됐다.


굴지의 대기업이거나 중견기업 가릴 것 없이 소비자들의 푼돈을 가로채거나 나랏돈을 갈취하기 위하여 사기와 협잡을 서슴지 않는 모습이다.


공신력이 경쟁력인 금융기관마저도 협잡꾼 대열에 합류했다. 공정위가 2년 전 수익률을 담합하여 국민주택채권을 저가로 매입한 20개 증권회사에 대하여 과징금 179억원을 부과한 조치가 정당하다는 판결이 지난달 서울고등법원에서 내려졌다. 지난달 국정감사에서는 시중은행들이 CD금리를 담합한 혐의가 있어 공정위의 조사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까지 공개됐다. 만약 시중은행들의 CD금리 담합이 확인된다면 그 파장은 나라를 뒤흔들 것으로 보인다. 가계부채가 1,000조 원이 넘고 이 중 절반가량의 이자가 CD금리에 연동된 점에 비추어 서로 짜고 인상한 금리가 연 0.1%만 되어도 은행이 연간 5,000억 원 이상의 가계 돈을 가로챈 것이 되기 때문이다.


업계가 담합을 통해 가로챈 돈은 물론 소비자의 것이다. 업계가 공정위의 단속에 걸려 과징금이나 검찰고발 등의 불이익을 당하면서도 담합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는 것은 담합이 주는 이익이 크기 때문이다. 즉 담합에 의해 취득한 이익에서 과징금을 내고 검찰 수사를 받게 될 때 대형 법무법인의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에게 지급하는 거액의 수임료를 빼더라도 남는 게 있다는 얘기다. 공정위는 2년 전 4개 라면 제조사에 대하여 담합을 이유로 1,36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4대강 공사 입찰 시 담합을 한 8개 건설사에 1,111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 단속의 고삐를 죄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합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담합해도 적발되지 않을 가능성이 많고, 적발되어도 과징금을 부과받으면 되고, 과징금을 부과받아도 행정소송을 통해 감면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담합에 대한 미온적 대처는 기업이 담합을 통해 소비자의 주머니를 털고, 이 돈을 공정위와 대형법무법인이 서로 나누어 먹는 구도를 고착시켜온 것이다. 즉 담합을 통해 소비자의 돈을 가로채는 것은 영업비결에 속하고, 공정위의 단속에 걸리면 내야 하는 과징금이나 거액의 변호사 수임료는 당연히 지출해야 하는 부정기적 세금으로 여기는 것이다.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라는 금언은 우리 사회에서는 오래전에 용도 폐기된 느낌이다. 어릴 시절 누구나 부모님으로부터 교육받았을 ‘정직’이라는 생활준칙이 우리 사회에서는 더는 통용되기 어려운 듯하다. 사실 선거공약이 거짓말로 드러나더라도 재선 가도에 별달리 불리한 요인이 되지 않는 것이 현실정치판이다. 이는 대의정치의 기본이 무너진 것이다. 그러나 정직하지 않은 토양에서 신뢰가 생길 수 없고,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축적되지 않고서는 선진국 진입은 불가능하다. 세월호 사태를 계기로 논의되고 있는 국가혁신방안은 정직한 사회를 만드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