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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청산의 방법을 생각해 본다

강병국 프로필 사진 강병국 2017년 03월 28일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경향신문 기자와 노조위원장을 지냈다. 노조활동이 계기가 되어 뒤늦게 법률을 공부했다. 원래 관심사는 문학이었지만 직업생활을 하면서 언론과 노동 등으로 관심분야가 넓어졌다. 의무를 다하는 것이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지름길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조기 대선 국면에서 출사표를 던진 후보자들의 대표적인 공약은 적폐청산인 것으로 보인다. 이 시점에서 적폐청산이 강조되는 이유는 민주공화국이 출범한 지 내년이면 70년이 되지만, 그동안 사회 곳곳에 누적된 폐단이 우리의 미래를 옥죄고 있어 이를 청소하는 것을 더이상 미룰 수 없다는 취지로 이해된다.


역대 정부가 한결같이 부정부패 척결을 내세우고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기도 했지만 이번 국정농단 사태에서 드러난 적폐의 민낯을 보면 그것이 구두선에 그쳤음이 판명 난 셈이다.


부정부패의 핵심은 뇌물이다. 대가 관계없이 선처를 바라는 뜻의 향응이나 사례금, 호감을 사기 위한 불평등거래, 눈 밖에 나지 않으려 건네는 선물 등도 그 본질은 뇌물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최근의 법조비리 사건이나 국정농단 사건에서 드러난 것과 같이 뇌물을 주는 수법은 차용금, 매매대금, 납품관계, 광고비 지급 등의 합법적 외양을 갖추는 방법으로 날로 지능화하고 있다. 비단 공직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부문의 갑을 관계에서도 입점, 납품, 공사계약 등에 혜택을 주는 대가로 뒷돈을 받고, 거래관계 유지의 대가로 상납을 받는 부정이 성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정농단 사태에서 드러난 블랙리스트, 비선진료, 대포폰, 부정입학 등도 우리 사회가 지니고 있는 적폐의 뿌리와 넓이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항목들이다.


블랙리스트는 은밀한 탄압의 상징물이다. ‘찍히면 죽는다’는 우리 사회의 통설이 공조직을 통해 체계적으로 실행됐음이 확인된 사안이다. 사실 공직 사회든 민간 기업이든 상급자나 힘 있는 자의 눈 밖에 나면 그 후에는 능력과 노력 여하에 관계없이 고생길이 열리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렇다고 이를 법적으로 문제 삼아도 차별적 취급이나 인과관계를 증명하기 어려워 법적 구제를 받기 어려운 게 ‘쥐도 새도 모르는’ 블랙리스트에 의한 탄압의 특징이다.


비선 진료나 대포폰은 우리 사회의 지도층이 가진 준법의식의 수준을 말해준다. 누구보다 법을 앞장서서 지켜야 할 청와대의 공직자들이 불법을 자행하며 법치주의를 농락한 것이다. 공식적인 대통령 주치의가 있고, 필요하면 절차를 밟아 주치의 아닌 다른 의사에게 진료를 받을 수 있는데도 무엇 때문에 비선의 의사에게 진료나 수술을 받았는지 국민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특히 대통령과 청와대의 비서진들이 수십 대의 대포폰을 사용한 점에 비추어 통신비밀보호법의 보호막 아래에 있다고 믿는 우리 국민들의 통신 비밀은 허울뿐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부정입학은 대학의 학사관리가 표면상 학칙과 교육법에 따라 관리되고 있는 듯하지만 실상은 부정이 끼어들 여지가 많음을 보여주었다. 학교의 학사관리가 이 정도라면 우리 사회의 공직자 임용, 기업의 임직원 채용 시 쓰이는 능력이나 소양에 대한 평가시스템은 사상누각일 것이다. 이러한 공신력으로 해외 유학이나 해외 취업 시 국내 대학이나 학교의 성적표나 추천서를 누구에게 믿어달라고 할 것인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적폐의 또 다른 예로는 낙하산 인사를 꼽을 수 있다. 낙하산 인사는 공기업 등 공공기관의 임원추천위원회를 거수기로 만든 결과물이다. 수 십 년간 청산의 필요성이 강조되어 왔지만 끈질기게 남아 있는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30조는 「임원추천위원회는 그 공기업·준정부기관의 업무에 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하고, 최고경영자 또는 이사ㆍ감사로서의 능력을 갖춘 사람을 후보자로 추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낙하산 인사는 이를 위반한 것이다.


정권 쟁취의 논공행상으로 공기업 임원 자리가 필요하다면 위 법률을 고쳐 임원추천위원회를 없애야 마땅하다. 현행 제도하에서 궤변에 가까운 이유를 대면서 낙하산 인사를 계속하는 것은 위선적이고 표리부동한 국가경영의 전형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공기업의 낙하산인사 관행은 사기업의 사외이사 제도를 변질시키는 등 민간부분에 악영향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음도 유의해야 한다.


이밖에 청와대와 같은 권부(權府)의 원격조정에 따라 전경련의 자금을 지원받은 관제 데모, 소비자나 국민의 호주머니를 터는 기업들의 단합행위, 공개 거부를 일부 인정하는 공직자 재산등록제도, 유명무실한 전관예우 방지책 등 청산과 척결을 필요로 하는 폐단과 구습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따라서 적폐청산이 단기간에 이룰 수 있는 과제가 아님은 명백하다. 우리의 민주공화국은 영국의 명예혁명이나 프랑스 대혁명과 같은 사회 역량의 축적을 토대로 세워진 것이 아니기에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다. 친일 청산을 하지 못한 것이 우리 정치ㆍ사회사에 지우기 어려운 낙인을 찍은 점도 되돌아보아야 한다.


헝클어진 실타래가 일거에 정리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잘못 있는 곳에 징벌 있다는 명제를 철저히 실천하면 희망은 있다. 선진국 국민의 법질서 의식은 일차적으로는 법 위반에 따른 가공할 불이익에 기초하고 있다. 아울러 오랫동안 법을 지켜온 습관이 사회 윤리로 체화된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인간의 이기심을 제도로 차단하고, 인간의 선량한 본성이 십분 발휘되도록 사회구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적폐청산의 진정한 방법론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