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총수 강신명은 ‘백남기 농민 사건’ 책임 없나?

검찰이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의 책임을 물어 구은수 전 서울청장 등 4명을 불구속기소했다. 2015년 11월 14일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살수에 맞아 쓰러진 지 2년 만이다.

▲ 고 백남기 농민
▲ 고 백남기 농민

검찰이 책임이 있다고 본 경찰은 구은수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과 신윤균 당시 서울경찰청 제4기동단장, 그리고 살수차를 직접 조작한 충남지방경찰청 제1기동대 소속 살수차 요원 한 모, 최 모 경장이다. 검찰은 이들 4명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물었다.

그러나 여기에 빠져있는 사람이 한 명 있다. 바로 강신명 당시 경찰청장이다.

당시 살수 현장에 있지 않았던 구은수 서울청장을 검찰이 기소한 이유는 살수를 승인하고 지시할 때는 시야 확보방안을 마련하도록 해야 하는데 이를 게을리했고 머리를 겨냥한 직사살수를 방치한 과실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현장 지휘관과 살수 요원들을 지휘 감독해야 하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주의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반해 강신명 경찰청장은 “민중총궐기 집회 경비와 관련이 없어 현장지휘관, 살수요원 등을 지휘・감독하여야 할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주의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려워, 위법한 직사살수에 대한 지휘・감독상의 과실 책임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혐의없음 결정을 내렸다.

유족들은 강신명 청장이 기소대상에서 빠져 있는 것에 반발하고 있다. 똑같은 지휘책임을 왜 한 사람에게만 지우느냐는 것이다.

물론 검찰의 설명대로 현장의 지휘관과 살수요원들을 지휘해야 할 직접적인 책임은 직속 상관인 서울경찰청장에게 있는 것이 맞다. 그러나 직속 상관인 서울청장이 업무를 게을리할 때 그를 지휘 감독할 책임은 경찰청장에게 있다.

경찰법 제14조를 보면 “지방경찰청장은 경찰청장의 지휘·감독을 받아 관할구역의 국가경찰사무를 관장하고 소속 공무원 및 소속 국가경찰기관의 장을 지휘·감독한다”로 돼 있다.

경찰법 제11조에는 “경찰청장은 국가경찰에 관한 사무를 총괄하고 경찰청 업무를 관장하며 소속 공무원 및 각급 국가경찰기관의 장을 지휘·감독한다”로 돼 있어 경찰청장이 서울경찰청장을 제대로 지휘해야할 책임이 있다는 것은 명확하다.

검찰 조사에서 신윤균 기동단장은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지휘과정에서 머리 겨냥 살수 금지 등에 대한 주의 촉구를 하였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서울청장이 집회 현장에서 직사살수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서울청장은 서울청 상황실에서 무전을 통해 살수 지시를 내리고 진행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강신명 경찰청장은 당시에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2015년 11월 14일 민중 총궐기 집회는 경찰청장이 서울청장에 모든 집회 관리 책임을 맡기고 뒤로 물러나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계엄 상황이나 대규모 집단사태에서나 발동하는 갑호비상명령을 내린 것도 강신명 청장이었고 수차례 공안대책회의를 열어 불법 폭력 시위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하라고 지시한 것도 강 청장이었다. 강 청장의 지시가 없었다면 수압제어장치가 고장 난 충남경찰청의 살수차가 서울 종로에 투입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 2016년 9월 국회 청문회에 출석한 강신명 전 경찰청장(가운데)와 구은수 전 서울경찰청장(왼쪽)
▲ 2016년 9월 국회 청문회에 출석한 강신명 전 경찰청장(가운데)와 구은수 전 서울경찰청장(왼쪽)

또 집회 당일, 강신명 청장은 경찰청 8층 상황실에서 집회 내내 서울청 지휘망을 청취하면서 집회 진행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이는 본인 스스로 국회에서 열린 ‘백남기 농민 청문회’에서 인정한 사실이다.

당시 백재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대해 증인으로 나왔던 강신명 청장은 이렇게 답했다.

◯백재현 위원 : 강신명 청장은 그 당시 어디에 있었습니까?
◯증인 강신명 : 그 당시라는 게 언제를 이야기하는 겁니까?
◯백재현 위원 : 11월 14일 오후 6시 전후.
◯증인 강신명 : 18시 전후, 아마 경찰청 내에는 분명히 있었고요. 제가 8층에 있었는지 집무실에 있었는지는 잘 기억을 못 하겠습니다.
◯백재현 위원 : 그때 지휘망이 서로 공유했던 통신망은 어떤 걸 쓰셨나요? 그때 그 통신망을 같이 열어 놓고 들었을 것 아닌가요?
◯증인 강신명 : 경찰청장이 말입니까?
◯백재현 위원 : 그렇지는 않나요?
◯증인 강신명 : 보통 경찰청장은 무선을 잘 청취를 하지 않는데 그날은 상황이 중대하기 때문에 서울청 지휘망을 청취했습니다.
◯백재현 위원 : 그 당시 살수와 관련된 일의 진행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고 이해해도 되겠지요, 경찰청장도?
◯증인 강신명 : 경찰청장이 무전만 듣고 있는 것이 아니고요 종합 상황 관제를 하면서 여러 가지 정보 보고도 받고 하기 때문에 무전을 들었을 수도 있고 안 들었을 수도 있고 그렇습니다.
◯백재현 위원 : 전반적인 상황을 다 이해하고 있었다 이렇게 보는 것이 정당한 이해겠지요?
◯증인 강신명 : 그렇습니다. 저는 전반적으로 상황을 다 보고를 받고 관제를 하고 있었습니다.

강 청장 스스로 서울청 지휘망을 통해 오가는 무선 통신 내용을 들으면서 전반적으로 상황 보고를 다 받고 관제를 하고 있었다고 말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실이 당시 상황실에 있던 고위 경찰 간부로부터 입수한 증언에 의하면 “보통 서울 집회 시위 상황관리는 서울청장에게 다 맡기는데 백남기 농민 사건 날은 강신명 청장이 집회 시작 때부터 끝날 때까지 본청 8층 집회 상황실에서 50인치 모니터를 통해 국장들과 함께 집회 상황을 모니터링했다”는 것이다.

서울지방청장이 살수차를 제대로 지휘 관리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저녁 내내 벌어졌는데 대체 경찰청장은 상황실에서 종일 모니터링을 하면서 청장으로서 어떤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검찰은 “수집한 증거를 통해서는 강신명 청장에게 책임을 물을 근거를 찾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검찰은 유가족의 고발 후 수사를 질질 끌다가 14개월이 지난 2016년 1월이 돼서야 강신명 청장에게 서면조사만 한차례 실시했을 뿐이다.

2015년 백남기 농민이 쓰러졌던 집회 관리의 총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 그리고 상황실에서 집회 내내 집회 상황을 모니터링했던 사람, 그러면서도 쓰러진 백남기 농민이 위독하다는 사실을 “오후 9시 텔레비전 자막을 보고 알았다”고 말한 사람, 국회 청문회장에 나와서도 “사람이 다쳤거나 사망했다고 해서 무조건 사과하는 것은 아니”라면서 “결과만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끝까지 사과하지 않은 사람, 그러고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임기 2년을 꼬박 채우고 퇴임한 사람.

이런 경찰 총수에게 아무런 책임을 물을 수도 죄를 물을 수도 없는 상황을 과연 유가족들이, 또 국민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본 글은 뉴스타파 블로그를 통하여 작성되었습니다.
뉴스타파 블로그 회원가입을 통하여 뉴스타파 블로그에 합류하세요! 블로그 가입하기 | 자주 묻는 질문
뉴스타파 객원칼럼은 뉴스타파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뉴스타파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