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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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서처는 어떻게 기자가 되었나

이보람 프로필 사진 이보람 2015년 01월 22일

기록을 역사로 남기는 것. 그것을 제대로 알리는 것.

리서처. 뉴스타파에서 나의 포지션이다. 조금 쉽게 말하면 조사기자 정도 되겠다. 리서처가 어떻게 “공개한 기록 다시 비공개..황당한 대통령기록물관리“ 리포트를 하게 됐는지 얼떨떨한 소감을 밝힌다.



탐사보도의 꽃, 리서치


리서처는 기자나 PD들이 취재에 필요한 정보검색을 요청하면 신속하게 찾아서 제공하는 업무를 한다. 뉴스타파는 탐사보도매체이기 때문에 출입처가 따로 없다. 각 기관에서 생산되는 기록물을 모니터링해 취재를 지원한다. 나아가 데이터 저널리즘 프로젝트 기획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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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학생 신분으로 공부만 했던 나는 2014년 초, 우연히 SNS에서 뉴스타파 리서처 모집 공고를 보게 됐다. 기록학 박사과정 수료를 앞두고 있었지만, 연구직 공무원이 맞지 않는다는 사실은 진작 깨달았다. 리서처 업무는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의 일인데다 재미있어 보이기까지 했다. 설렘과 기대감을 안고 지원했고 기적같이 합격했다. 어엿한 언론인이 된 것이다.



첫 아이템


언론에 대해 잘 모르고 입사한 나는 용어부터 혼란이 왔다. 기록학에서 아이템은 기록의 최소단위인 기록건을 의미한다. 언론사에서는 아이템이 기사거리이다. 독자적이고 신선한 아이템이 곧 기자의 경쟁력이다. 아이템을 찾아 헤매는 건 기자의 숙명이다. 리서처인 나는 상대적으로 아이템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운 편이었다.


국가기록원에 정보공개청구한 것이 이 아이템의 시작이었다. 대통령기록관이 홈페이지에 올려둔 ‘2014년 1월 비밀 해제 기록물 목록’을 보고 17건을 모두 정보공개청구했다. 2014년 10월 29일에 접수된 정보공개청구가 11월 20일에야 회신이 왔다.


대통령기록관의 결정이 황당했다. 이미 비밀 해제한 기록인데 무려 10건이나 비공개한 것이다. 비공개사유는 국가안전보장 , 국방, 통일, 외교관계 등에 관한 사항과 재분류시점 미도래였다. 문서제목을 보니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선배에게 불만을 토로하며 왜 안 주는지 모르겠다고 불평했다. 그런데 10건 중 6건은 이미 선배가 6월에 정보공개청구해서 받은 적 있는 것이었다. 갑자기 대통령기록관의 일관성 없는 정보공개 행태에 대해 문제의식이 생겼다.


이렇게 ‘우연히’ 아이템이 되었다.




대통령기록관의 정보공개 난맥상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물, 정보공개청구…
기록학을 전공하고 정보공개제도로 논문을 쓴 나에게 익숙한 키워드다. 사전 취재를 하면서 온갖 관련 법률을 뒤지고 대학원 인맥을 총동원해 자문도 구했다. 혹시라도 놓친 부분이 있을까 염려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록학도들과 전문가들의 의견도 ‘황당하다’였다.


결정통지가 납득되지 않아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보공개청구 과정과 상황을 설명했다. 지난 6월과 11월의 공개결정이 달라진 것에 대해 일관성 없는 정보공개 이유와 전문성 없는 비밀 해제 결정에 대한 가능성을 물었다.




하하하~ 세상에 그런 게 어딨어요 기자님~ 그 분 때문에 나도 해주세요 하는 건 맞지 않는 거고요…



비밀 해제해 공개하고 열람까지 한 기록물을 다시 비공개한 것에 대해 질문했다.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 관계자는 어이없다는 반응이었다. 1차원적 민원이 아니었음에도 뭘 몰라서 그런다는 식으로 반응했다. 다른 사람에게 공개했으니 나도 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비공개된 것인지가 궁금했다.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정보공개심의회의 비공개 결정과 대통령기록관리전문위원회의 비밀 해제 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물었다. 위원회 명단도 알려 달라고 했다. 이번에는 담당자가 조금 당황했다. 그렇지만 역시나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취재에 실패한 후 제13차 대통령기록관리전문위원회 회의 결과보고, 제18차 대통령기록관 기록물공개심의회 결과보고를 또 다시 정보공개청구했다. 이번에도 비공개였다. 마땅히 공개해야할 정보인데 자꾸 비공개하자 오기가 생겼다.



취재 그리고 기사, 그 참을 수 없는 어려움


우선 기사의 핵심이 명확해야 한다. 내가 알리고 싶은 게 무엇인지 기사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해야 했다. 그래야 취재를 잘 할 수 있었다. 정부기관 홈페이지를 돌아다니며 일명 기록물 마와리(?) 하는 것이 업인 나에게 취재와 인터뷰는 영 어색하고 힘든 일이었다. 현장취재 경험이 없던 나에게 기사를 쓰고 취재를 설계하는 것은 인고의 시간이었다.


인터뷰이 섭외는 어렵지 않았다. 대통령기록이나 정보공개에 대한 전문가들은 잘 아는 분들이었다. 기록학계에서 오래 발 붙이고 공부한 것이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아이템 내용을 설명하고 인터뷰를 요청했더니 흔쾌히 응해주셨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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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를 공부하고 전문가 인터뷰도 하고 전화녹취도 했다. 천신만고 끝에 기사도 썼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기사를 읽고 오디오 녹음을 하는 것, 취재한 것들로 영상 구성 하는 것, 최종적으로 편집하는 것까지. 하나의 리포트가 방송되기까지 어마어마한 작업이 이루어졌다. 가까이서 지켜봤지만 체감하진 못했었다.


더빙실에서 듣는 목소리는 어색하기만 했다. 영상 구성은 머리 속만 맴돌 뿐 표현하기 어려웠다. 괴로운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결과물이 완성돼 가는 과정 하나하나가 뿌듯했다. 기자들의 쾌감(?)을 조금 맛보았다고 할까.


이렇게 지난한 과정을 지나 방송이 나갔다. 여러 선배들의 지도편달 덕분에 무사히 제작할 수 있었다. 앞으로 새로운 기록을 발굴해서 알리고 싶다. 감히 기록전문 조사기자가 되고 싶다고 바라본다. 기록을 역사로 남기는 것. 제대로 알리는 것. 기록전문 조사기자의 간절한 소망이다.


※기사보기 : 공개한 기록 다시 비공개...황당한 대통령기록물관리(2015.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