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대통령 사조직인가

지금 한국사회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 통합보다는 분열을 조장하고,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서민들보다는 소수 기득권층의 이익을 옹호하거나 확대하는 정책을 고집하는가 하면 사회적 약자를 외면하고 ‘승자 독식’의 경쟁체제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총체적 위기 상황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국가의 주권 문제이다. 헌법 제1조 2항을 다시 보면서 오늘날 주권의 위기를 살펴보기로 하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통령은 직접선거를 통해 국민으로부터 주권 행사를 위임받은 사람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이 명확한 법리를 모르고 있거나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이 최근에 명백히 드러났다. 지난 10월 24일 한국이 “북한의 핵 위협을 비롯한 한반도 안보상황과 한국군의 핵심군사능력 등 ‘조건’이 갖추어질 때까지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을 연기하기로” 미국과 합의한 직후 박 대통령이 보인 태도가 그 증거였다.

노무현 정부는 물론이고 이명박 정부조차 전작권 환수 시한을 미국과 명확히 합의했는데 박근혜 정부가 실질적으로 그 시한을 무기한 연기하자 정치권은 물론이고 많은 국민이 ‘군사주권 포기’ ‘제2의 을사늑약’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2012년 대통령선거 기간에 친박근혜계의 핵심이던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은 “전작권을 (2015년 12월에) 전환 받는다는 것은 저희 당 후보의 대선 공약이었고, 당선자 시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보고서에도 들어 있고, 대통령 취임 이후 국정과제 보고서에도 들어가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정작 박 대통령은 국가의 주권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전작권을 영구적으로 미국에 넘겨주었다는 비판에 대해 단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았다. 국민들이 들을 수 있는 정부 고위관리의 ‘해명’은 10월 27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민구 국방장관이 한 말뿐이었다. 그는 “전작권 전환의 문제는 군사주권의 문제가 아니”라면서 “우리 군은 전작권 환수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바로 그 이튿날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국회 운영위 국정감사에서 전작권 전환 재연기에 대해 “대통령께 보고했고 대통령이 지침을 줬다”고 말했다. 군사주권을 영구적으로 포기할 수도 있는 결정을 대통령이 내렸음을 시인한 셈이다.

국가 주권의 핵심인 군사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왜 국민이 위임한 군사주권을 실질적으로 포기하는 중대 결정을 국민투표에 부치지도 않고, 심지어 국민의 대의 기구인 국회와 협의하거나 합의하지도 않은 채 독자적으로 기정사실로 만들어버렸는가? 그 자신이 국정 운영을 위임받았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마치 청와대 안에 있는 ‘사조직’의 최고 책임자라고 생각한 것일까?

나는 박 대통령이 국가를 ‘사조직’으로 여기고 있음이 분명한 징후들을 수시로 볼 수 있었다. ‘인사 참사’라는 악평을 듣고 있는 그의 공직자 기용이 대표적인 보기이다. 2013년 2월 25일 그가 대통령에 취임하기 전뿐 아니라 그 이후에도 부정축재, 병역 기피, 역사와 국민을 모독하는 극우적 언동 등으로 많은 고위 공직 후보자들이 스스로 사퇴하거나 물러나기를 요구당했다. 최근에는 적십자 회비를 낸 적이 없는 대기업 경영자가 적십자사 총재로 임명되는가 하면 ‘감사’에 대한 전문지식이 거의 없는 것으로 밝혀진 연예인 출신(78세)이 ‘친박’이라는 이유로 국영기업체의 감사 자리에 앉았다. 대통령이 국가를 사조직으로 보지 않는다면 그런 인사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들을 그 자신과 동일한 ‘국가의 주인’으로 보지 않는다는 사실은 지난 4월 16일에 터진 세월호 참사 이후에 극명하게 드러났다. 그는 참사 직후에는 사고 현장에 가서 희생자와 실종자 가족을 위로하고, 텔레비전에서 사망자들의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으나 그것이 전부였다. 참사 직후 수수께끼가 되어버린 ‘대통령의 행방불명 7시간’에 대해서 직접 해명을 한 적도 없고, 광화문광장과 청와대 들머리에서 장기간 노숙을 하는 유족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지도 않았다. 심지어 지난 10월 29일 시정연설을 하러 국회 본관에 들어가던 그를 향해 유족들이 “대통령님, 살려주세요”라고 울부짖는 데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들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사는 다른 ‘사조직’의 구성원들이기 때문일까?

박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주권을 공정하게 행사하지 않는다는 또 하나의 근거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일절 무대응’에서도 드러난다. 10월 27일 상업통상자원부가 야당 의원에게 제출한 ‘이명박 정부 자원개발 사업별 통계자료’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가 공기업 및 민간자본과 합작해 해외 자원개발사업에 투자한 돈은 무려 40조 원 가까이 되는데 그 가운데 87.2%인 34조 8천7백억여 원이 누적 손실로 처리되었다고 한다. 대통령은 그 엄청난 국고 손실에 대해 엄정한 조사를 하라고 감사원이나 검찰에 지시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아직 아무런 반응이 없다.

이명박이라는 인물이 전과 14범으로 대통령이 된 뒤 수십조 원을 퍼부은 ‘4대강 사업’에서 공기관과 대기업의 수의계약이 다반사로 일어났고, 이른바 ‘영포회’의 비리 의혹이 불거졌다. 그러나 그는 퇴임 뒤에 아무런 조사나 수사를 받지 않았다. 게다가 최근에는 이명박 내외가 국내행사에서 1924회나 경호를 받음으로써 현직 대통령의 6배가 넘는 ‘VIP 대우’를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더구나 그는 해외행사에서도 박 대통령과 비슷한 횟수의 경호를 받았다고 한다. 청와대 예산으로 그를 그렇게 극진하게 ‘예우’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국가라는 공조직의 운영을 한시적으로 책임진 ‘국민’이다. 오늘날처럼 대통령이 국가를 사조직처럼 움직이는 폐단은 하루라도 빨리 척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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