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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종 리스트'-박근혜는 '성역'인가 아닌가

김종철 프로필 사진 김종철 2015년 04월 13일

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위원장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지난 4월 9일 북한산에서 자살한 전 경남기업 회장 성완종이 그날 아침 집을 나서기 전에 경향신문과 나눈 대화 내용이 쓰나미처럼 박근혜 정부를 덮쳤다. 검찰은 주검으로 변한 그의 바지 주머니에서 나온 ‘50자 메모’의 내용을 밝히지 않다가 경향신문의 보도가 나가자 허겁지겁 그것을 공개했다.


죽음의 길을 가기로 결심한 성완종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당시 박근혜 캠프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 허태열(나중에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7억 원, 2006년 국회의원으로서 박근혜의 외유에 동행한 김기춘에게 10만 달러를 주었다고 구체적으로 증언했다. 게다가 ‘성완종 리스트’에는 현직 국무총리인 이완구와 청와대 비서실장인 이병기의 이름까지 들어 있다.


리스트에 오른 당사자들은 하나같이 “그런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거의 모든 언론은 성완종의 주장에 거의 절대적인 무게를 두는 보도와 논평을 계속하고 있다. 오죽하면 친박근혜 정권 신문들 가운데 영향력이 가장 큰 조선일보까지 4월 11일 자 사설에서 눈에 핏발이 선 강경한 논조를 펼쳤겠는가.




문제는 수사 주체다. 원칙적으로는 검찰이 맡는 게 맞다. 그러나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 핵심부를 겨냥한 수사에서 국민이 납득할 만한 결과물을 내놓은 기억이 별로 없다. 올 초 청와대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 수사만 해도 핵심인 ‘비선 실세들 국정 농단 의혹’은 끝내 파헤치지 못했다는 비판을 듣고 있다. 더구나 수사 대상이 될 김·허 전직 청와대 실장은 모두 현직 시절 청와대 인사위원장으로서 검찰 조직 인사에 깊숙이 간여했고, 김기춘 전 실장은 작년 말부터 사임설이 돌다가 올 2월 검찰 인사를 단행한 뒤에야 물러났다. 지금의 검찰이 현재의 권력자들을 상대로 의혹을 샅샅이 뒤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하기 어렵다. (···) 나중에는 결국 특별검사에게 수사를 맡기는 길밖에 없게 될 가능성이 크다.



새누리당 대표 김무성은 조선일보의 이런 ‘충고’에 아랑곳하지 않고 일요일인 12일 오전 긴급기자회견을 하고, “검찰이 명운을 걸고, 좌고우면하지 말고 철저한 수사를 해주기 바란다”면서 “성역 없이 신속한 수사를 해서 국민의 의혹을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검찰에 대한 외압이 없도록 새누리당이 앞장서서 책임지겠다”고 다짐했다. 그야말로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 같다. 새누리당은 과거 대통령선거 때 ‘차떼기당’으로 악명이 높았던 한나라당의 후신 아닌가? 그리고 검찰이 언제 여당 대표의 말을 고분고분 들은 적이 있던가?


한국에서 검찰에 대한 외압을 막을 사람은 그 조직에 대한 인사권자인 대통령 박근혜밖에 없다. 대검찰청은 12일 오후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을 구성하고 팀장에 대전지검장 문무일을 임명했다. 그러자 성완종 리스트에 대해 사흘 동안 침묵을 지키던 박근혜는 “검찰이 법과 원칙에 따라 성역 없이 엄정히 대처하기를 바란다”고 청와대 대변인 민경욱을 통해 발표했다. 언론과 국민이 그의 입에서 나오기를 바란 것과는 거리가 먼 단 한 문장짜리 내용이었다. 이 사건을 보는 박근혜의 인식이 얼마나 피상적이며 진지함이 없는지를 여실히 알 수 있다.


박근혜가 말하는 ‘성역’은 무엇인가? 전·현직 청와대 고위 관리들인가, 아니면 대통령 자신까지 포함하는 범주를 가리키는가? 성완종이 주장한 대로 2007년 대선과 2012년 대선 때 비합법적인 거액의 돈이 박근혜 캠프에 들어갔고, 그것이 공식적으로 처리되지 않았다면 대선 후보 자신이 그 사실을 알았건 몰랐건 간에 도덕적 책임을 져야 마땅하지 않은가?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나 독일에서 이런 의혹이 터졌다면 대통령이나 총리는 당장 특별검사를 임명하겠다고 나섰을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는 세월호 참사 1주년을 하루 앞둔 4월 16일 중남미 4개국을 순방하기 위해 무려 9박 12일의 여행을 떠난다고 한다. 가뜩이나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권력기관들이 저지른 부정행위, 개표 과정에서 불거진 컴퓨터 조작 의혹 때문에 정통성을 의심받고 있는 그가 느긋하게 방문외교 무대에서 ‘국익’에 큰 도움이 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박근혜가 참으로 흔들리는 ‘국기(國基)’를 걱정한다면 중남미로 떠나기 전에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특검 논의를 하라고 여당과 야당에 강력히 권고해야 할 것이다.


여권 일각에서는 박근혜가 ‘성완종 리스트’ 때문에 레임덕이 될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에 대한 무능과 직무유기, 무너지는 서민경제 때문에도 ‘데드 덕(죽은 오리)’이라는 평가를 받는 그가 ‘성완종 리스트’에 대해서도 오불관언으로 일관한다면 다음에는 어떤 별칭으로 그를 불러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