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미래 파괴’의 파시즘

올해 들어 ‘메르스 대란’을 비롯해서 많은 사건들이 국민을 불안과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지만, 정치·사회·문화적으로 심각한 갈등과 혼란을 일으킬 ‘태풍’이 오는 26일부터 시작되는 추석 연휴 또는 그 이후에 한국사회를 덮칠 가능성이 크다. 그것은 바로 대통령 박근혜와 그를 맹종하는 새누리당 지도부, 그리고 정부 고위관료들이 강행하려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이다. 박근혜가 ‘그 일’을 기어코 해내겠다고 암시하거나 다짐한 것은 어제 오늘이 아니다. 그는 일찍이 1989년 MBC의 ‘시사토론’에 참석해서 이렇게 주장했다.

 “유신에 대해 옳다고 그 불가피성을 주장해야 한다. (···) 5·16과 유신은 매도당해 왔다. (···) 부모님에 대해 잘못된 것(국민들이 오인하고 있는 것)을 바로잡는 게 자식의 도리이다. (···)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그런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일이다.”

박근혜는 2007년과 2012년 대통령선거 시기에는 그런 ‘확신’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잘못된 과거사를 바로잡겠다”고 에둘러 표현했을 뿐이다. 나중에 그것은 ‘입에 발린 말’로 드러났다. 그는 2013년 2월 대통령 자리에 앉은 뒤 뉴라이트가 추진하던 ‘교학사 국사교과서’ 편찬을 음양으로 지원했다. 그러나 그 책은 채택률 0%라는 비참한 결과에 부닥칠 수밖에 없었다. 그 뒤에도 간간이 “국사 교과서를 하나의 책으로”를 강조해온 박근혜는 올해 1월 6일의 신년 기자회견에서 노골적인 주장을 하고 나섰다.

“역사교과서 문제가 이념 논쟁으로 번지는 것이 참 안타깝다. 균형 잡힌 교과서를 가지고 학생들이 배워야 한다. (···) 정부뿐만 아니라 교육계 등과 함께 의견을 수렴해 국민이 믿을 수 있는 교과서를 만들도록 노력하겠다.”

박근혜의 주장대로라면 그 동안 학생들은 ‘믿을 수 없는 교과서’를 가지고 공부를 한 것이 된다. 그는 박정희의 ‘10월 유신’ 이후인 1973년에 제정되어 전두환과 노태우의 실질적 군사독재 기간을 거쳐 김영삼 정부 말기인 1996년에야 검인정으로 바뀐 ‘국정 한국사교과서’만이 ‘믿을 수 있는 것’이라고 강변하는 셈이다. 그 교과서(고등학교 교재)는 사실 왜곡과 독재 미화의 표본이었다. 박정희 일파가 1961년 5월 16일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뒤 발표한 ‘혁명공약’ 제6조(“이와 같은 우리의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하고 우리들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준비를 한다”)를 “이와 같은 우리의 과업을 조속히 성취하고 새로운 민주공화국의 굳건한 토대를 이룩하기 위하여, 우리는 몸과 마음을 바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한다”로 날조했다. 그리고 1982년 판 고등학교 한국사교과서는 전두환과 노태우가 1980년 5월 광주학살을 저지르기 전에 일으킨 1979년 12월 12일의 군사반란과 ‘신군부’의 권력 탈취를 극도로 미화했다.

“제5공화국은 정의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모든 비능률, 모순, 비리를 척결하는 동시에 국민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민주복지국가 건설을 지향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의 장래는 밝게 빛날 것이다.”

박근혜와 그 추종자들의 뜻대로 한국사 교과서가 ‘국정’이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일제강점기의 독립투쟁은 물론이고 이승만과 박정희가 저지른 온갖 부정과 비리, 수탈과 만행이 제대로 기술되지 않을 것이다. 박정희와 김무성 아버지 김용주의 친일반민족행위, 이승만의 반민특위 강제 해체, 한국전쟁 기간의 국민방위군 9만여명 사망사건, ‘조봉암 사법살인’ 같은 역사적 사실들은 전혀 언급되지 않을 것이다. ‘1948년 8월 15일 건국’이 국가의 정설로 확정되고, ‘박정희의 군사혁명 찬양과 10월 유신 미화’가 추진되는 반면에 광주 5월항쟁의 역사적 의미 지우기가 자행될 것이다. 그리고 전두환과 노태우의 부정축재와 반국가적 범죄, 그리고 4대강 사업과 자원외교로 국토와 국고를 유린한 이명박의 ‘국사범적 행위’도 면죄부를 받을 것이다.

청와대와 새누리당 지도부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강행’의 뜻을 명확히 한 지난 8월 하순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의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국회의원 도종환을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도종환은 그 뒤 조사활동을 통해 ‘국정화’는 대통령 박근혜의 확고한 지침에 따라 추진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언론에 밝혔다.

9월 들어 한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운동은 전국으로 거세게 번져 나갔다. 대학 교수, 고등학교 교사, 학부모, 시민단체, 심지어는 새누리당의 일부 의원들, 그리고 정부가 한국사 교과서 집필 기준 개발을 맡긴 연구자들까지 반대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아주 뜻밖인 것은 박근혜의 정책이나 ‘담론 설정’을 적극 지지해온 주요 보수신문들이 회사의 공식 견해인 사설을 통해 ‘국정화’를 적극적으로 반대하거나 비판했다는 사실이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 밀어붙일 만큼 충분히 준비됐는가”(조선일보), “역사 교과서, 국정 발행이 대안이 될 수는 없다”(중앙일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최후의 대안이어야 한다”(동아일보), “역사 교과서, 국정 아닌 집필기준·검증 강화가 옳다”(문화일보).

박근혜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기도에서 우군의 완강한 반대에 부닥치고 말았다. 그런데도 그는 왜 벽창우처럼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을까? 아버지 박정희 시기의 ‘한국적 파시즘’에 대한 병적 집착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본군 장교 출신인 박정희는 세계 제1차 대전 이후 이탈리아, 독일, 그리고 일본에서 기세등등하던 파시즘을 한국에 재현하려고 집요하게 시도했다. 그는 1970년 12월 문교부를 통해 ‘대학교련의 시행요강’을 발표했는데, 그것은 히틀러의 나치독일을 연상시키는 강제 군사훈련 제도였다. 대학생은 4년 동안 총 수업시간의 약 20%인 711시간을 교련에 할애해야 했으며, 교련을 위해 대학에 현역 군인들이 배치되었다. 대학가에서 격렬한 교련 반대운동이 일어났음은 물론이다. 60만여명의 국군과 2백만여명의 향토예비군을 보유한 나라에서 전시도 아닌데 그런 ‘전체주의 제도’를 대학생들에게 강요했기 때문이다. 박정희의 ‘한국적 파시즘’은 끝 간 데를 몰랐다. 연극, 영화, 음악 등 여러 분야에서 검열을 상시화하고, ‘국민교육헌장’을 통해 어린 시절부터 획일적 국가관을 주입하려 들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어떻게 되었던가? 독재와 한국적 파시즘은 히틀러, 무솔리니,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간 길을 따라 그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박정희의 유신독재가 기승을 부리던 1970년대와 오늘의 한국사회는 크게 다르다. 비록 수구보수세력이 주도권을 잡고 있기는 하지만 1960년의 4월혁명 이래 축적된 민중의 민주적 의식은 ‘신판 한국적 파시즘’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는 ‘미래’와 ‘창조’를 언제나 강조한다. 그러나 역사를 자신의 고정관념과 편견이라는 틀에 가두려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한다면 그의 앞길에는 ‘미래 창조’가 아니라 ‘미래 파괴’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E. H. 카)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교과서를 국정화 함으로써 과거의 사실들을 은폐하거나 왜곡한다고 해서 현재를 사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속을 리가 없음을 박근혜는 왜 모르는가?

※ 이 글은 <미디어오늘>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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