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멸로 가는 고속도로’ 탄 박근혜

11월 3일 오전 11시 국무총리 황교안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역사교육 정상화를 위해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을 발표했다. 그의 ‘말씀’ 가운데 박근혜 정부를 자가당착에 빠뜨리는 대표적 대목들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현재 한국사 교과서 집필진 다수는 특정 단체, 특정 학맥에 속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새 교과서가 발행될 때마다 매번 집필진으로 반복 참여하고 있습니다. 2011년에 출판된 한국사교과서를 집필한 37명 중 28명이 2014년에도 교과서 집필에 참여했을 만큼, 특정 집필진들이 한국사교과서를 주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

지난 2014년,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20여 곳의 학교는 특정 집단의 인신공격, 협박 등 집요한 외압 앞에 결국 선택을 철회했습니다. 가장 교육적이어야 할 학교 현장이 반민주적, 반사회적 행위에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전국에 약 2,300여 개의 고등학교가 있습니다. 그 중 세 학교만 교학사 교과서를 선택했고 나머지 전체 고등학교의 99.9%가 편향성 논란이 있는 교과서를 선택했습니다.

황교안의 이런 주장은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다. 교학사 교과서가 극우적 역사관에 바탕을 두고 독재와 친일을 미화한 데다 2천여 개가 넘는 오류 때문에 시장에서 버림을 받았다는 것은 어린 학생들도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가 검정 허가를 내준 다른 7종의 한국사교과서가 그렇게 좌편향이라면 왜 한 해도 넘게 방치했다가 이제야 ‘올바른 교과서’를 만들자면서 ‘역사 쿠데타’라는 비판을 자초하는가?

황교안이 ‘입에 침도 안 바르고’ 한 7가지 거짓말(<미디어오늘> 11월 3일 자)로 뒤범벅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자 새누리당 대표 김무성은 같은 날 오후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 당정회의에서 그를 이렇게 극찬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를 하는 걸 속 시원하게 지켜봤고, 총리 수고 많았다.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올바른 역사관 확립을 위한 충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같은 날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의 기자회견에서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박석운은 “국정화 확정고시로 싸움이 본격화됐다”며 “박근혜 정부는 파멸로 가는 고속도로에 올라섰다”고 잘라 말했다. 김무성과는 정반대 평가를 내린 것이다.

황교안이 PPT 자료까지 영상으로 보여주면서 국민들을 설득하려고 한 대국민 담화의 뼈대는 철저히 박정희 정권 때의 국정화 논리와 박근혜의 어록을 복사하다시피 한 것이었다. 1973년 6월 23일 당시 문교부 장관 민관식은 “민족적 가치관에 의한 올바른 국사교육”을 주장했는데 황교안은 “편향된 역사교과서를 바로잡아야 학생들이 우리 역사에 대한 확실한 정체성과 올바른 역사관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황교안은 얼마 전 박근혜가 국회 시정연설에서 레이저를 내뿜으면서 쓴 표현을 ‘재방송’하다시피 했다. “친일·독재 미화의 역사 왜곡이 시도된다면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대표적 공안검사 출신으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온갖 부정과 비리 혐의를 ‘딛고 일어나’ 총리로 임명된 인물다운 발언이다.

박근혜가 올라타 버린 고속도로의 종점에는 왜 ‘파멸’이 기다리고 있을까?

첫째, 이성과 양심과 건강한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전체주의적인 국정화를 반대하는 대다수 국민을 ‘좌편향’으로 몰기 때문이다. 11월 2일자 <내일신문>이 <디오피니언>에 의뢰해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정화 찬성은 32.3%에 불과한 데 반해 반대는 무려 59.9%로 나타났다. “우리 예쁜 박근혜”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 태반이라는 대구·경북에서조차 찬성(39.6%)보다 반대(50.7%)가 훨씬 많았다. 강원·제주에서만 찬성(52.8%)이 반대(42.1%)를 앞섰을 뿐이다.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는 거의 거국적이다. 보수와 진보를 망라한 28개 역사학회가 ‘제작 불참’을 선언했고, 36개 대학 학생 4만5천여 명이 ‘교육 획일화’를 비판하고 나섰다. 전교조·비전교조 교사 2만여명이 국정화 반대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100여개 대학 교수와 연구자 2천여명은 국정화는 “민주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고 규탄했다. 심지어 박근혜 정부 초기에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이태진조차 “국정화는 반민주”라고 단정했다.

둘째, 박근혜 정부가 강행할 국정화는 2017년 첫 학기 전에 결코 이루어 질 수 없다. 절대 다수의 역사학 전문가들이 집필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20~40명의 극우적 학자나 다른 분야 전공자들로 집필진을 꾸린다면 그들이 만들어내는 교과서가 교학사 것보다 훨씬 조잡한 ‘물건’이 되리라는 것은 결과를 보지 않아도 자명하다고 확신할 수 있다.

셋째, 새누리당 국회의원들 가운데 몇 명을 뺀 모두가 국정화에 찬성하는 까닭은 박근혜의 ‘콘크리트 지지층’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대구·경북에서까지 반대가 우세하므로, ‘박정희 신화’를 종교처럼 믿는 사람들 말고 다수의 국정화 반대자들이 내년 4월 총선에서 새누리당 후보를 거부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본다.

위의 세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나타난다면, 박근혜는 아버지의 ‘탄생 100주년’에 현충원을 찾아가서 제상에 한국사 국정교과서를 바칠 수 없음은 물론이고, 주권자들 사이에 한국적 매카시즘을 퍼뜨리고 공동체가 파국에 이를 정도로 분열을 조장했다는 사실 때문에도 대통령직을 수행하기가 불가능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박근혜는 이제라도 ‘파국으로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눈을 가리고 귀를 막은 그가 그렇게 파격적인 변모를 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앞으로 한 해 동안 나라와 겨레가 얼마나 극심한 곤경에 빠질는지가 사뭇 걱정스럽다.

※ 이 글은 <미디어오늘>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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