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된 한상균 ‘대역죄인’인가 평화의 투사인가

-박근혜 정권과 언론이 합작한 ‘공안 몰이’ 광풍

민주노총 위원장 한상균이 일요일인 13일 구속되었다. 서울지방법원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발부한 구속영장에 적힌 혐의는 특수공무집행방해, 집회금지장소위반, 일반교통방해 등 8개 항목이었다. 최근 여러 날 동안 박근혜 정권의 검찰과 경찰, 그리고 대다수 언론매체가 ‘대역죄인’으로 몰아붙인 사실에 비하면 그다지 무거운 ‘죄’가 아니다.

지난 10일 오전 조계사 관음전에서 25일에 걸친 은신 생활을 마치고 도법(스님, 조계종 화쟁위원회 위원장)과 나란히 걸어 나오던 그의 얼굴에는 강인한 투쟁 의지와 따뜻한 사랑의 빛이 어우러져 있었다. 민주노총 집행부 간부들, 그리고 산별노조 위원장들과 함께 서서 기자회견을 하는 그는 열흘 동안이나 단식을 계속한 사람 같지 않게 기운차 보였다.

한상균이 힘찬 목소리로 낭독한 기자회견문은 오늘의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세력에 대한 준엄한 경고이자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보내는 뜨거운 연대의식의 표현이었다. 나는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는 그의 ‘연설’을 들으면서 깊은 감동과 함께 비장함을 느꼈다.

12월 9일은 대한민국 권력의 광기를 여과 없이 보여준 치욕의 날로 기록될 것입니다. 박근혜 정권은 저를 체포하기 위해 수천 명의 경찰병력을 동원했습니다. 저는 살인범도 파렴치범도, 강도범죄, 폭동을 일으킨 사람도 아닙니다. 저는 해고노동자입니다. 평범한 노동자들에게 해고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뼈저리게 느끼며 살아왔습니다. 아이들은 꿈을 포기해야 하고, 단란했던 가정은 파탄 났습니다. 불나방처럼 떠돌다 때로는 생과 사의 결단을 강요받고 실제로 생을 포기한 동료가 많았습니다. 누구의 잘못입니까? 노동자가 죽어야 기업이 사는 정책이 제대로 된 법이고 정책입니까?

한상균은 이명박 정권 시기인 2009년에 터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건 당시 그 회사의 노조 지부장이었다. 그는 권력의 묵인 속에 자행된 노동자 2646명 대량 해고에 반대하는 투쟁을 이끌면서 77일 동안이나 고공농성을 벌인 끝에 3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2009년부터 지난 4월까지 해고자들과 가족 가운데 무려 28명이 자살, 질병, 생활고 등으로 세상을 떠났다. 달걀로 바위를 치는 듯한 투쟁의 과정에서 웬만한 노동자들이라면 기가 꺾일 만도 한데 한상균은 지난해 12월 더 험난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민주노총 위원장 직선제 선거에 출마해서 노동계의 예상을 뒤엎고 당선되었다.

지난 11월 14일의 ‘민중총궐기’ 직후 한상균이 조계사로 들어가 25일 동안 은신을 하던 기간에 가장 많이 대화를 나누었다는 도법은 한마디로 그를 ‘불덩어리’라고 표현했다. 그가 고등학생으로서 1980년 5월 광주항쟁 때 ‘시민군’에 자원해 들어갔다는 사실은 고난 받는 동포에 대한 사랑과 정의감이 얼마나 뜨거운지를 일찍이 보여준 바 있다. 한상균은 12월 5일자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혈기왕성한 나이에 내 눈앞에 펼쳐지는 살인 만행을 가만두고 보기 어려웠다.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죄없는 시민들이 피 흘리고 죽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 전남도청에도 들어가 지키려 했는데 형님들이 너무 어리다고 못 들어가게 해서 그것만 못했다.

소년 시절부터 그렇게 순수하고 뜨거운 가슴을 가진 한상균은 체포되기 직전의 조계사 기자회견에서 언론과 박근혜 정권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여기 계신 많은 언론인들이 민주노총을 못 잡아먹어 안달을 내는 기사를 연일 쏟아내고 있습니다.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변하지 않는 귀족 노동자들의 조직이라고 합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진실입니까? 98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글의 세상에서 생존경쟁을 벌이며 희망 없는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와 새누리당의 비정규 악법은 그나마 2년 뒤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소박한 꿈과 기회마저 없애버리겠다는 것입니다. (···) 이 시대의 가장 큰 죄인은 1차, 2차 총궐기로 표출된 이대로는 못살겠다는 민심을 확인했듯이 민생파탄을 책임져야 할 박근혜 정권입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습니다. 껍데기뿐이었던 민주주의마저 죽어가고 있는데 왜 아무도, 어떤 언론도 말하지 않습니까?

박근혜 정권이 집시법과 도로교통법 위반 등 혐의로 수배당한 한상균을 체포하려고 조계사 안팎에 투입한 정사복 경찰은 수천 명에 이르렀다. 군사작전에 비유하자면 ‘여단 급’ 인원을 동원한 셈이었다. 한상균이 철통같은 포위망을 뚫고 달아날 가능성은 전혀 없고 그 자신이 그럴 의도가 없다고 명백히 밝혔는데도 박 정권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온갖 수단을 썼다. 조계사 ‘신도회’의 극성 회원들은 한상균을 강제로 끌어내려고 시도했고, 보수적 개신교 신자들은 그를 저주하고 비난하는 모임을 열기도 했다.

조선·중앙·동아일보를 필두로 한 보수언론과 KBS, MBC, SBS 등 지상파 방송사와 TV조선, 채널A 같은 종편의 ‘공안 몰이’는 반이성적이고 마녀 사냥 같은 야만성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한상균이 ‘자진 출두’ 형식으로 경찰병력을 향해 다가간 지난 10일 언론의 융단폭격은 극에 이르렀다. “지상파 3사 메인뉴스 중 한상균 위원장 체포를 가장 악질적으로 보도한 곳은 공영방송 KBS였다. KBS는 톱뉴스부터 6번째 꼭지까지 한상균 위원장과 민주노총에 대한 노골적인 ‘비난’ 기조를 유지한 채 보도했다.”(인터넷매체 <미디어스> 12월 11일자). MBC와 SBS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성향의 보도를 했다.

언론매체들의 한상균 기자회견 생중계와 지면 보도는 역설적으로 박근혜 정권이 국회에서 통과시키려는 노동악법의 본질과 민주노총 탄압의 실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효과’를 냈다. 한상균의 회견문을 통째로 전달하면서 투쟁의 열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한상균이 자진 출두하기 전에 검찰과 경찰은 그에 대해 ‘소요죄’를 적용할 수 있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바 있다. 그러나 정작 경찰의 구속영장 청구서에는 소요죄라는 말이 들어 있지 않았다. “다중이 집합하여 폭행·협박 또는 손괴행위를 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형법 제115조)로서 “한 지방의 공공의 평온을 해할 수 있는 폭행, 협박, 손괴” 같은 행위를 한상균이 주도했다는 확증이 없어서 법원이 영장을 기각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한상균은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사는 사람들이 다 그렇듯이 먹고 살기 힘들어서” 바로 취업하려고 광주기계공업고등학교(현재 광주공업고)를 졸업하고 거화(쌍용차 전신)에 입사했다고 한다. 그에게는 대학 4학년인 딸과 1학년인 아들이 있다. “애들이 청소년기에 아빠가 감옥에 간 해고자였다. 애들 입학과 졸업을 한 번도 못 챙겨줬다. 이런 아빠한테 화 한 번 내지 않는 애들에게 너무 고맙다.”(<한겨레> 위 인터뷰)

박근혜 정권의 ‘노동악법 제정’ 강행을 저지하기 위해 민주노총은 12월 16일 총파업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한상균은 지난 번 기자회견에서 ‘노동 동지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감옥 안에서라도 노동개악 저지 총파업 투쟁 승리 소식만은 꼭 듣고 싶습니다. 승리할 수 있고 승리해야만 하는 역사적인 투쟁입니다.

한상균은 남대문경찰서로 연행되어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묵비권으로 일관했다고 알려졌다. 그리고 11월 14일 밤 광화문광장에서 경찰의 물대포 조준사격을 받고 사경을 헤매고 있는 농민 백남기의 쾌유를 빌면서 해오던 단식을 계속했다.

한상균은 부당한 해고와 무도한 권력의 탄압을 그 누구 못지않게 처절하게 겪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노동자의 모든 투쟁은 단호하면서도 평화적이기를 바랄 것이다. 그가 감옥에서 박근혜 정권의 ‘노동 재앙’이 불발로 끝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감사의 ‘합장’을 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한다. 재판장이 ‘도주와 증거인멸의 가능성’이 없는 그를 보석으로 내보내고 불구속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한다면 무너져가는 사법부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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