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안철수 창조자인가 파괴자인가

-‘낡은 진보’와 ‘수구보수’ 사이에서 헤엄치기

지난 12월 13일 새정치민주연합(새정연)을 탈당한 국회의원 안철수가 27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새로운 비전과 발상으로 새 정당을 꾸려 우리 사회 변화를 이루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텔레비전 생중계를 통해 긴 ‘기자회견문’을 낭독했다. 안철수가 특히 강조한 것은 “새로운 정치, 다른 정치, 바른 정치”였다.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회견문을 읽어나가는 그를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도대체 안철수가 주장하는 새정치의 본질과 실체는 무엇일까?’였다. 이모저모로 따져 보아도 자신과 ‘새로운 인물들’이 만드는 신당이 펼쳐나갈 정치가 ‘새’라는 형용사를 달아야 한다는 뜻이라고밖에 달리 해석할 길이 없었다.

과연 안철수는 자신이 ‘새정치’의 주역이 될 수 있다고 외칠 수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오래 전에 ‘새정치’를 현실화하는 데 실패한 인물이다. 2013년 4월 24일 실시된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당선(서울 노원병)된 안철수는 초선이었으나 높은 대중적 인기에 힘입어 같은 해 11월 28일 ‘국민과 함께하는 새정치 추진위원회’를 결성했다. 2014년 2월에는 창당 준비 작업에 나섰다가 3월 26일에 민주당 대표 김한길과 급작스럽게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하고 1기 공동대표에 취임했다. 그러나 같은 해 7월 재보선에서 참패한 데 책임을 지고 대표직을 사퇴했다. 그때부터 이미 그는 ‘낡은 정치’에 빠져드는 인물이 되고 말았다. 최근 새정연을 탈당하기까지 그가 대표 문재인을 향해 외쳐댄 “내가 곧 혁신 주체이니 전당대회를 통해 대표를 뽑아야 한다”는 투의 으름장은 ‘새정치’를 표방하던 사람에게는 전혀 걸맞지 않는 것이었다. 안철수는 탈당한 직후 “새정연은 평생 야당 작정한 당”이라고 독설을 퍼붓기도 했다.

안철수는 27일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새로운 인물이 들어올 수 있고, 성장할 수 있어야 정치가 바뀝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인재들이 정치와 국정의 새로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3, 40대 우리 사회의 허리가 정치의 소비자만이 아니라 생산자가 되어야 하고, 주체가 되고,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분들이 국회에 들어가서 제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는 안철수는 자신이 새정연을 탈당한 뒤 가장 먼저 뒤를 따른 국회의원 임내현(광주 북)이 문제의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왜 선뜻 내치지 않았던가? 그는 2013년 여기자들 앞에서 성행위를 ‘서부 총잡이’에 비유함으로써 국회 윤리심사자문위원회에서 ‘출석정지 30일’의 중징계 의견을 받았던 사람이다. 그뿐 아니라 안철수는 창당 의지를 밝힌 직후부터 호남을 비롯한 여러 지역을 찾아다니면서 ‘새정치’와는 거리가 먼 현역 의원들에게 “뜻을 같이하자”고 촉구하기도 했다.

안철수는 “내년 2월 설 이전에 신당의 구체적인 모습을 국민 여러분께 보여드릴 계획”이라며 신당이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개헌을 저지할 수 있는 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안철수가 신당 창당을 선언하면서 공언했듯이, 새정연을 떠나는 국회의원들, 그리고 야권의 직업정치인들 또는 ‘새로운 인물들’을 규합해서 새누리당의 개헌을 막을 수 있는 1백1석을 확보할 수 있는지부터 살펴보자. 안철수는 새정연을 탈당하면서 그 당과의 연대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며 “혁신을 거부한 세력과의 통합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단언했으므로 실질적으로 새누리당과 맞대결을 펼칠 수 있는 강력한 제1야당을 출범시켜야 한다. 그런데 문재인이 이끄는 새정연에서 아무리 많은 의원들이 탈당한다고 해도 그들이 모조리 ‘안철수 신당’에 들어가서 제1야당을 만들어주겠는가? 박지원을 비롯한 호남 출신과 김한길 계열의 의원들이 새정연을 떠나더라도 전원이 안철수 신당에 가입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다. 안철수의 인기에 힘입어 국회의원이 된 송호창조차 “수도권에서는 야권이 7석도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그렇다면 안철수가 목표로 삼고 있는 개헌선 확보가 불가능한 경우, 차선책으로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성공할 수 있을까? 이미 안철수 노선을 따르겠다고 밝힌 김동철(광주 광산)을 비롯해서 호남 의원들이 다수 동조하고 수도권에서 새정연 후보로는 당선되기 어렵다고 믿는 의원들이 가세한다면 20석을 만들어 한 해에 국고보조금을 88억이나 받는 제2야당으로서 정의당을 제3야당으로 떨어뜨릴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철수 신당이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한다고 해서 내년 총선에서 새정연을 배제하고 군소야당들과 연대를 이루어 개헌을 저지할 수 있는 101석을 얻을 수 있을까? 그것은 새누리당과 새정연이 199석을 나누어 갖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김종인은 안철수가 2012년 대통령선거전에 나서기 전에 ‘청춘콘서트’에 초대 받으면서 그의 ‘정치적 멘토’로 알려졌다가 나중에 박근혜 캠프에 참여해서 중요한 역할을 한 바 있고, 현재는 안철수를 강력히 비판하는 사람이다. 김종인은 <오마이뉴스> 12월 21일자에 실린 인터뷰에서 안철수를 향해 실질적으로 ‘정치적 사망선고’를 내렸다. 그의 발언 요지는 아래와 같다.

당을 새로 만들겠다는 것은 자신이 대선후보가 되겠다는 집념에 사로잡 혀 있다는 이야기다. (한국) 정당사에서 제3당이 성공한 예가 없다. 선거를 계기로 신당이 출현하기는 했지만 두 당으로 모두 흡수됐다. 안 의원이 아무리 노력해도 새정치연합의 뿌리까지 빼낼 수는 없다. 그런데 왜 이런 소동을 일으키는지 모르겠다. 야권이 선거에서 이기려면 연대든, 후보 단일화든 하나로 합치는 수밖에 없어 갈수록 재통합 압박이 커질 것이다. 안철수 신당이 호남과 수도권 일부에서 후보를 빼낼 수 있겠지만 실질적으로는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의 싸움이 될 것이다.

안 의원은 당분간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새정치연합을 향해서도, 새누리당을 향해서도 극단적인 이야기를 많이 할 것이다. 그러면 중도에 있는 사람들의 지지가 커질 것이라고 기대할 텐데, 그런다고 2011년 8월의 안철수 현상이 재현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착각이다. 안 의원이 2011년 이후에 보여준 것이 별로 없다. 정치는 이미지로 하는 게 아니다.

안철수가 새정연을 탈당하면서 가장 중요한 목표로 내세운 것은 정권교체였다. 현재 정권을 잡고 있는 세력의 중심이 대통령 박근혜이고 새누리당이 여당이므로 내년 4월 총선에서 괄목할 만한 승리를 거둔 뒤 2017년 대선에서 자신 또는 같은 당의 후보가 당선되도록 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런데 안철수가 27일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정권의 문제점들을 지적한 것을 보면 지극히 피상적이다. 그는 제일 먼저 경제를 거론하면서 “박근혜 대통령 식 창조경제는 전혀 창조적이지 않”으며 “새누리당 식 낙수이론, 관치경제로는 21세기 경제의 활력과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독과점질서를 공정거래질서로 바꾸고” “시장을 시장답게 만들어야 하며” “개인도 기업도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이런 것들이 새정연이나 정의당의 경제정책과 크게 다른 ‘창조의 경제’가 될 수 있을는지 의문이다. 지나치게 추상적인 구호가 생산적이 될 수 없음도 물론이다.

기자회견에서 안철수는 “격차 해소를 통해 국민 다수의 삶이 나아져야 선진국으로 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옳은 말이다. 그는 정권교체만 이루면 ‘격차 해소’가 쉽사리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고 있을까? 그 자신이 재벌은 아니라도 ‘거부’ 소리를 들을만한 자산을 지니고 있는 처지에서 그런 말을 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중앙일보> 12월 26일자 기사를 보면 놀랍기만 하다.

올 초 공직자 재산신고 당시 안 의원은 자신이 보유한 안랩 주식 186만 주를 주당 3만6천원 가격으로 쳐 669억6천만원을 신고했다. 그러나 안랩의 주가는 안 의원이 탈당한 뒤 하루에 20% 이상씩 올랐다. 안랩은 23일 이례적으로 ‘주가 급등의 특별한 사유가 없다’며 투자유의를 공시하기도 했다. 안랩 주식 시가는 24일 종가 기준 7만5천원이다. 보유주식액도 1395억원으로 배 이상 불었다. 안 의원은 마포당사 보증금 2억5천만원을 선뜻 자기 돈으로 내놨다.

안철수는 27일의 기자회견에서 새누리당은 ‘1970년대의 개발독재’, 새정연은 ‘1980년대의 운동권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양비론의 전형이다. 새누리당에 대한 공격은 일리가 있다고 치자. 그러나 60년이 넘도록 ‘전통 야당’의 길을 걸어온 새정연이 지금 아무리 분열과 갈등에 휩싸여 있다고 하더라도 그 존재 자체를 1980년대의 운동권 집단으로 매도하는 것은 지나치게 독선적인 언행이다.

기자회견문의 내용은 그가 한국의 현대사와 민주·통일운동 또는 민생·평화운동에 대해 명확하고 합리적인 인식을 갖고 있지 못함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박근혜 정권을 청산하는 작업은 무엇보다도 먼저 친일파인 박정희가 1960년 5월에 저지른 군사쿠데타, 1980년 5월 전두환과 노태우의 ‘신군부’가 권력 찬탈을 위해 광주에서 민중을 학살하고 군사독재정권을 세운 야만적 행위, 노태우·김영삼·김종필이 야합한 ‘3당합당’의 반민주성을 지적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런데 안철수는 그런 오욕의 역사에 대한 비판적 의식이 전혀 없는 듯하다. 게다가 이명박이 대통령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시기에 ‘친이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알려진 안철수는 그 정권이 저지른 온갖 비리와 부정을 구체적으로 비판한 적이 없다. 이런 정치인이 정권교체를 이룬다고 해서 뒤틀린 과거사를 바로잡을 수 있을까?

내년의 총선과 2017년의 대선은 주권자들이 민주체제를 다시 세워 민족의 화해와 공존을 향해 달려갈 수 있는 중대한 정치적 행사이다. 현재 거의 모든 정치전문가들이나 다수 언론이 예측하듯이 야권이 지금처럼 분열된 상태로는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 아무리 험난한 장벽이 앞에 놓여 있더라도 야권이 새누리당에 맞서는 ‘1 대 1 구도’를 만들지 못한다면 수구보수세력의 장기집권체제가 굳어질 것이다. 그런데 안철수는 정권교체를 최대 목표로 삼고 있다면서도 제1야당인 새정연과의 연대는 원천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이것이 ‘창조적 새정치’인가? 안철수는 정치인으로서 자신이 ‘창조자’의 길을 걷고 있는지 ‘파괴자’의 길로 치닫고 있는지를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미디어오늘>에도 함께 실립니다.

  • Eunhyung Lee

    안철수는 처음부터 파괴자의 길을 걷고 있었다. 여러 과정을 통해 회색인간의 본질을 보여주었던 것일 뿐이다. 이제 그에게는 정치인으로서의 사망선고를 기다리는 것 외에는 없을 것이다.

본 글은 뉴스타파 블로그를 통하여 작성되었습니다.
뉴스타파 블로그 회원가입을 통하여 뉴스타파 블로그에 합류하세요! 블로그 가입하기 | 자주 묻는 질문
뉴스타파 객원칼럼은 뉴스타파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뉴스타파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