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를 이대로 둘 것인가

-‘증거 없는 해고’ 폭로에 ‘선거철 정치공작’이라니

MBC의 경영진이 최근 <뉴스타파>와 <한겨레>에 보도된 충격적인 기사에 관해 “MBC 본부장과 간부가 한 인터넷매체 사람들과 사적 대화를 나눈 것을 녹취록이랍시고 폭로하여 마치 엄청난 일을 저지른 것처럼 침소봉대하고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고 공격했다. 지난 1월 29일 MBC의 ‘공식 블로그’에 실린 ‘선거철 정치공작인가?’라는 글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들어 있다.

선거철을 앞두고 익히 봐왔던 기획된 정치공작이 상암동 MBC 사옥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정치 계절병이 돌아온 것이다. (···) 특정 정치세력과 일부 좌파 매체들이 한 몸이 되어 선량한 MBC 직원들을 선동하고 내부를 극단적인 갈등으로 몰아갔던 2012년 파업상황의 완벽한 데자뷔이다.

소문에 의하면 녹음파일은 이미 작년 10월경 특정 정치세력에 넘어갔고 수개월이나 묵혀져 있다가 모 정치인의 선거출마에 맞춰 공개된 ‘기획이벤트’라는 의혹까지 나오고 있다. 여기다 특정 매체와 노조 정치꾼들이 각본처럼 역할을 분담해 가면서 판을 키워가는 모양새다. 우선 좌파 인사가 좌파 신문에 단독이라고 기삿거리 하나를 던져 주면 이 신문은 세상이 뒤집힌 것처럼 대서특필하고 이어 좌파 인터넷 매체들이 기계처럼 받아 전파하는 식이다.

MBC 경영진의 ‘공식 견해’인 이 글은 그 회사의 미래전략본부장 백종문이 2014년 4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 극우 인터넷매체 편집국장과 나눈 대화를 이렇게 ‘평가’했다.

녹취록을 근거로 ‘근거 없이 해고’ 운운하는 노조와 일부 정치세력들의 주장은 허구이고 오보이다. 최승호, 박성제는 본부 노조의 전임 위원장으로서 당시 집행부의 공식 직책이 없었을 뿐, 불법 파업 과정에서 핵심적이고 중추적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녹취록은 백종문과 극우매체 편집국장을 중심으로 대화가 오고가는 자리에 합석했던 그 매체의 기자가 작성해서 새정치민주연합(현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최민희에게 제공한 것이다. 그 내용 가운데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백승문이 한 다음과 같은 말이었다.

그때 최승호하고 박성제 해고시킬 때 그럴 것을 예측하고, 알고 그들을 해고시켰거든. 그 둘은, 왜냐면 증거가 없어. (···) 그런데 이놈들 가만 놔두면 안 되겠다 싶어 해고를 시킨 거예요.

MBC 공식블로그의 주장대로 이 말이 ‘허구이고 오보’라면 백종문은 즉각 뉴스타파와 한겨레에 대해 보도를 취소하거나 정정하라고 요구했어야 한다. 그리고 최승호와 박성제가 면담을 요청했을 때 외면하지 말고 사무실로 불러들여 그 보도의 진실 여부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어야 옳다.

공식블로그의 글은 2012년 MBC 노조 파업에 관한 진상조차 왜곡하고 있다.

지난 2012년에 선거를 앞두고 주동자들에 의해 기획된 노조의 불법파업은 무려 170일간이나 계속돼 회사는 물론 노조원을 포함한 모든 MBC 임직원들에게 씻을 수 없는 고통과 피해를 주었다.

노조의 2012년 파업이 정당하다는 판결은 이미 1·2심 법원이 명백히 내린 바 있다. 2014년 1월 17일 1심 재판부의 판결 요지는 이렇다. “일반 기업과 다른 방송사 등 언론매체는 민주적 기본질서 유지와 발전에 필수적인 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할 공정성의 의무가 있다. 이 의무는 헌법이나 방송법에 규정돼 있어 공정방송의 의무는 기초적인 근로조건에 해당한다.”

2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는 2015년 4월 29일 선고공판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파업의 주된 목적은 김재철 사장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방송의 공정성 보장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방송의 편성과 제작 등 원고들의 구체적인 업무수행에 있어 (공정성을 보장하는) 장치가 영향을 미쳤다면 이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고 쟁의행위를 인정하는 것은 근로조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MBC 경영진은 그것을 아직도 ‘불법파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당시 노조위원장 정영하를 포함한 조합원 6명은 해직된 뒤 끈질긴 법정투쟁을 벌인 끝에 1심과 2심에서 ‘부당해고’라는 판결을 받아냈다. 그들과 가족이 지난 4년 가까이 겪은 고통과 피해를 어찌 말로 다할 수 있겠는가? 이런 사실을 모를 까닭이 없는 경영진이 ‘모든 MBC 임직원들이 고통과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MBC 현재 사장 안광한은 2012년 파업 당시 부사장으로서 인사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부당해고’를 결정한 기구의 책임자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는 당시 인사위원회에 참여했던 백종문의 ‘증언’(두 사람은 증거 없이 해고했음)에 대해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고 있다.

2013년 2월 25일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이래 3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는 동안 2012년 파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MBC 노조원들이 겪은 고난과 시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지경이다. 유능한 기자들과 피디들이 전문영역과는 전혀 다른 부서로 쫓겨나거나 삶의 근거지에서 먼 지역으로 유배를 당하기도 했다. 한국 방송계에서 가장 앞서가던 ‘피디저널리즘’의 핵심 인물은 회사가 소유한 스케이트장 관리자로 발령을 받기까지 했다. 시사교양국이 폐지되는 바람에 많은 사원들이 낯선 부서에서 전문성과는 관련 없는 업무에 매달려야 했다.

경영진이 노조를 극한적으로 탄압하면서 전문성과 경험이 부족한 시용직을 수시로 채용하는 동안 MBC의 뉴스와 시사프로그램 시청률은 곤두박질을 계속했다. 신뢰도도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의뢰를 받아 ‘방송프로그램 시청자 만족도 평가지수’를 조사한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발표한 결과를 보면, MBC는 2012년 7.08%에서 2014년 7.07%로 지상파 4사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 공정방송 실현을 위해 노력했다는 이유로 갖은 핍박을 당하고 있는 사원들이 느낄 분노와 좌절감이 얼마나 컸을는지는 가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MBC의 인사와 경영을 관리·감독하는 기구가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이고, 방문진 이사를 선출하는 곳이 정부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방통위 이사장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이사들은 다수가 여권, 소수가 야권 추천 인사들이다. 이런 체제 아래서 MBC 사장이 청와대의 ‘낙하산’이 되는 것은 자명하다. 그래서 MBC는 공영방송이 아니라 관영방송 또는 국민이 주인이 아니라 경영진이 사조직처럼 움직이는 집단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 본부는 ‘녹취록’ 내용이 언론에 보도된 지난 1월 26일 발표한 성명(‘경영진의 추악한 민낯이 드러났다’)에서 다음과 같이 요구했다.

정말 이제는 더 이상 망가지려야 망가질 것도 없다. MBC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가? 공영방송 MBC의 수준을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대체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백종문 본부장은 더 이상 MBC에 발붙여선 안된다. 안광한 사장 역시 마찬가지다. 구성원들에 대한 왜곡된 시각으로 불법행위도 서슴없이 저지르고, 외부 극우 매체와 추악한 거래를 일삼은 이들에 대한 엄정한 조사와 문책이 뒤따라야 한다. MBC를 망가뜨린 주범들이 누구인지 대명천지가 알게 됐다. 이번 사태를 그냥 넘어간다면 MBC에 미래는 없다. 국민이 주인인 MBC, 신뢰받는 공영방송 MBC를 파괴하는 데 앞장선 자들을 단죄하기 위해 조합은 모든 힘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노조가 이렇게 요구한다고 해서 경영진이 순순히 응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제는 공영방송의 주인인 국민들이 나서야 한다. MBC가 ‘무법천지’가 되어가던 2014년 12월 9일, 언론·문화·종교계 등의 시민단체들은 ‘MBC를 국민의 품으로, 공동대책위원회(MBC 공대위)’를 결성했다. 공대위는 그동안 MBC 경영진이 부당한 인사나 위법적 행위를 할 때마다 상암동 본사와 전국의 지사 앞에서 항의집회를 열었다. 그러나 그들은 마이동풍이었다. 이제야말로 많은 주권자들이 공대위에 참여해서 MBC를 ‘국민의 품으로’ 돌리는 운동을 치열하게 펼쳐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미디어오늘>에도 함께 실립니다.

본 글은 뉴스타파 블로그를 통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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