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통일대박론’의 파탄

-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은 최악의 선택이다

설 연휴 마지막 날인 2월 10일 통일부장관 홍용표는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북한이 최근에 강행한 제4차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에 대한 제재와 응징인 이 조치는 박근혜 정권이 전쟁 말고 북한에 대해 가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개성공단에서 이루어지는 교역액(2015년)이 남북교역액 전체의 99%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금강산 관광이 오래전에 중단된 이래 남북 교류의 유일한 통로로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진 개성공단이 실질적으로 폐쇄 상태에 들어가게 됨으로써 이제 남과 북 사이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언제 다시 열릴지 모르는 이산가족 상봉만 남게 되었다.

2013년 2월 대통령으로 취임한 박근혜는 통일정책으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남북 사이에 교류협력과 신뢰 구축을 통해 통일 기반을 마련한다는 그 정책은 “인도적 문제를 지속적으로 해결할 것을 추구하며, 대화 창구를 구축하고, 기존 합의정신을 실천하며, 호혜적 교류협력을 확대하고 심화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각각 일구어낸 ‘6·15 공동선언’과 ‘10· 4 선언’의 이념과 실천방안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는 것이었다.

박근혜는 2014년 1월 기자회견을 통해 “통일은 대박”이라고 선언했다. “평화통일은 대박이지만 흡수통일은 쪽박”이라는 비판이 일자 그는 북한을 흡수의 대상이 아닌 협력의 대상으로 간주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같은 해 3월 독일을 방문하던 기간에 ‘드레스덴 제안’이라는 것을 발표했다.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하며 이산가족 상봉을 정례화하고 ‘민생 인프라’를 구축해 북한에 ‘복합농촌단지’를 조성하며 남북 간 신뢰 축적에 따라 더 큰 규모의 경제협력을 하고, 북한 인프라 건설에 투자하며 그곳의 지하자원을 개발한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그러나 정작 이루어진 것은 ‘비정례적인 이산가족 상봉’ 단 한 가지뿐이었다.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통일대박론’을 무참하게 박살 낸 셈이 되고 말았다.

박근혜가 그렇게 화려한 통일정책을 내세웠을 때 많은 국민들은 이명박 정권이 ‘5·24 조치’라는 것으로 거의 단절 상태에 빠뜨려버린 남북관계가 획기적으로 개선될 수도 있으리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 3년 동안 남과 북은 더 깊게 골이 파인 적대적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박근혜와 그의 측근에서는 이렇게 주장할는지도 모른다. ‘북한이 핵개발이나 장거리미사일 발사를 다시는 시도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약속한다면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 같은 초강경 조치는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러나 이미 국제적으로 ‘공지(共知)’의 사실이 되어 있듯이, 북의 김정은 정권은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가 ‘자주권’을 위한 방어적 방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 일본이 아무리 강력한 제재를 가해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권리라는 것이다.

북한 정권의 그런 노선을 물리적 수단으로 막기 어렵다는 사실은 명확해졌다. 그렇다면 당사국들의 모임인 6자회담을 통해 합리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길 밖에는 달리 수단이 없을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변호하거나 옹호하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그 두 나라와 북한이 한국, 미국, 일본과 함께 대화 자리에 앉도록 끈질기게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는 어설프게도 북한을 제외한 ‘5자회담’을 제안했다가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냉대를 당했다.

이번의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에 대해서는 박근혜 정권의 ‘자해행위’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김연철(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그 까닭을 이렇게 말했다.

국제법상 일반적인 제재에 정상적 경제활동이나 무역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개성공단은 제재 대상이 될 수 없다. 북한보다 우리 중소기업의 피해가 훨씬 크다는 점에서 북한을 제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 기업을 제재하는 것이어서 이해하기 어렵다. (···) 개성공단은 한반도 정세의 바로미터로 역할해 왔다. 그 부분이 다시 닫히고 냉전시대로 다시 돌아가게 됐다. 앞으로 안보 리스크는 지금까지와는 패턴이 많이 달라질 것이고 국가 리스크는 더욱 커지게 됐다.
– <한겨레> 2월 10일 자

한반도는 한 민족이 둘로 갈라져 있는 세계 유일의 땅이다. 분단의 장벽은 71년이 가까워지도록 허물어지기는커녕 더욱 굳어져 가고 있다. 권력이 분단에 기생해서 민족공동체의 주인인 민중 또는 인민 위에 군림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직 1998년 2월부터 2008년 2월까지의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에만 그런 경향이 크게 누그러져 남북의 화해와 공존을 위한 움직임이 활발해졌지만, 이명박근혜 정부는 두 정권의 통일정책을 철저히 무산시켜버렸다.

진보적인 정치학자나 역사학자들 가운데는 민족을 국제화 사회에서 배타적인 성격을 지닌 개념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정치적 선진국들은 물론이고 세계의 대다수 국가에서 민족은 부정할 수 없는 실체로 존속하고 있다. 혈연과 문화를 오랜 세월 공유해온 민족은 국수주의적 개념이 아니라 인간의 공동체에서 핵심적 기능을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반도처럼 오랜 기간 비극적 분단을 강요받고 있는 지역에서는 민족의 화합과 통일 없이는 평화로운 삶이 보장될 수 없다. 한반도에서 그런 삶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들려면 갈라진 민족의 재결합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이명박근혜 정권은 보수언론과 하나가 되어, 남의 동포가 북의 동포를 적대시하도록 만드는 ‘세뇌 공작’을 일삼아 왔다. 통일부가 동아시아연구원 등에 의뢰해서 조사한 결과(‘통일 인식에 대한 세대 격차의 원인 분석과 갈등 해소를 통한 국민통합 방안’)를 지난 1월 18일 발표한 것을 보면, 북한을 적으로 인식하는 국민의 비율은 2005년 15.3%에서 2010년 31.9%, 2015년 41.0%로 10년 사이에 2.7배로 치솟았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노래를 부른다고 해서 통일이 오지는 않는다. 민주적, 합법적으로 선출된 정부가 주권자들의 뜻을 받들어 갈라진 겨레가 하나가 되어 따뜻한 정을 나누며 살 수 있는 민족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전력을 다할 때 비로소 통일은 구체적 실체로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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