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가 광야에서 죽으면 무엇이 남을까?

-적어도 야권연대만은 거부하지 말아야

국민의당 공동대표 안철수가 일요일인 6일 오전 서울 마포구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더불어민주당 대표 김종인을 향해 ‘직설’과 ‘독설’을 퍼부었다. “야권통합은 양당 체제를 유지하고 현재의 상황을 모면하려는 하책이다. 의석 몇 석을 늘릴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정권교체 희망은 없다. 원칙 없이 뭉치기만 해서는 더 많은 지지를 받을 수 없다.” 그는 아래와 같은 주장도 했다.

김종인 위원장께서는 며칠 전 새누리당 승리를 막기 위해 야권통합 하자고 했습니다. 진정성이 없는 제안입니다. 제안 이틀 전에 우리 당 천정배 공동대표를 떨어뜨리려 영입인사를 이른바 자격 공천 해놓고 통합을 말할 수 있습니까? 한 손에 칼을 들고 악수를 청하는 것은 명백한 협박이고 회유입니다. (···) 국민의당 의원들은 모욕하면서 합치자, 돌아오라고 하는 것은 진정성 있는 제안이 아니라 정치공작입니다.

현재 국민의당 소속 현역 의원은 18명이고 그 가운데 대다수는 더불어민주당을 떠난 사람들이다. 당의 혁신이 지지부진하고 ‘친노’의 패권주의를 청산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총선 승리와 정권교체가 불가능하므로 제3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탈당 이유였다. 그들이 더민주로 돌아가려면 그런 주장을 접어야 마땅하므로 지난 4일 의원총회와 최고위원회의에서 ‘야권통합 거부’를 당론으로 정했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해 보면, 국민의당이 총선에서 바람직한 성과를 거두어 ‘기득권정당’인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을 견제하고 비판할 수 있는 강력한 제3당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아주 희박해 보인다. 안철수와 국민의당에 대해 우호적인 기사와 논설을 내보내 온 조선일보가 여론조사기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서 실시한 조사 결과(3월 5일 발표)를 보면 각 정당에 대한 지지율은 새누리당, 33.3%, 더민주 22.2%, 국민의당 5.7%였다.

국민의당이 중시하는 호남에서도 더민주 27.6%, 국민의당 23.8%였다. 총선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수도권에서 국민의당 지지율은 겨우 3.5%에 불과했다. 새누리당 31.2%, 더민주 25.1%와는 아예 경쟁이 불가능한 수치이다. 한국갤럽이 지난 4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국민의당 전국 지지율은 9%였는데, 광주/전라는 더민주 35%, 국민의당 16%였다(전주는 더민주 32%, 국민의당 15%).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국민의당이 오는 총선에서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합해서 두 자리 수 의석을 확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치는 현실을 떠나 추상적 관념 속이나 허공을 떠도는 기체(氣體)가 아니다. 국민의당은 지난 1월 10일 창당준비위원회를 결성한 뒤 2월 2일 창당되어 전국 지지율에서 더불어민주당과 대등한 수치를 보였고, 특히 호남에서는 제1야당을 능가하기도 했다. 그렇게 위세를 떨치던 국민의당이 겨우 한 달 남짓한 기간에 어떻게 이렇게 초라한 위상으로 전락했을까? 유권자들의 뜨거운 지지가 없으면 한국의 정치를 획기적으로 바꿀 동력도 정권을 교체할 힘도 생기지 않을 텐데···.

그런데도 안철수는 6일 기자회견에서 주권자들을 향해 비장한 선언을 했다.

국민의당과 저는 지금 힘들고 두려운 광야에 있습니다.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사방에는 적들뿐입니다. 그래도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새로운 나라 새로운 땅을 향해 전진해야 합니다. 저를 포함해 모두 이 광야에서 죽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안철수가 말하는 ‘사방의 적들’은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일까? 정치세력임이 분명한 국민의당이 마실 ‘물’과 ‘먹을 것’은 유권자들의 지지와 성원,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선거에서 줄 표뿐이다. 그런데 물과 양식이 보이지 않는 광야에서 오아시스조차 발견하지 못하고 ‘새로운 나라 새로운 땅’을 향해 전진한다면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정치적 죽음뿐이 아닐까? 그것은 명확한 목표도 나침반도 없이 ‘정치의 광야’를 걷다가 역사의 무덤에 파묻히는 비극적 죽음이 될 수도 있다.

4월 13일에 치러질 20대 총선은 지금 빈사 상태에 빠진 민주주의가 숨을 거두느냐 회생하느냐를 판가름하는 중대한 결전의 마당이 될 것이다. 야권이 분열과 갈등을 거듭하면서 새누리당에게 180석이 넘는 의석을 ‘선사’함으로써 국회선진화법을 폐기처분하게 만들 것인가? 그 당이 201석 이상을 확보하면 영구집권을 위한 개헌이라는 최대의 참사가 일어날 것이 분명하다.

김종인이 대표하는 더불어민주당이 4월 총선에서 독자적으로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는 일은 전혀 기대할 수 없다. 지지율 5% 안팎을 넘나드는 정의당과 당 대 당 통합을 하면 세력이 확대되겠지만 정의당의 노선과 정책 때문에 합당은 극히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정의당 대표 심상정은 오래 전에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총선과 대선을 위한 ‘연대’를 제안했고, 더민주도 동의했으므로, 남은 문제는 국민의당의 합류뿐이다. 그런데 국민의당 주류는 전국적 연대는 물론 ‘수도권 연대’도 완강히 거부했다.

지난 5일 오후 광주·전남지역 재야 원로들이 광주 ‘민주의 집’에서 작지만 의미심장한 모임(집담회)을 가졌다. 거기서 나온 주요한 발언은 다음과 같다. “수도권을 비롯한 비호남에서 연대를 하지 않아 새누리당에게 180석 이상을 헌납하는 결과가 나온다면 이에 대한 모든 책임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지도부가 져야 할 것이다.” “광주에서 정치특위를 꾸려 중앙에서 활동 중인 다시민주주의포럼, 민주주의국민행동 등과 함께 수도권 연대를 강제하는 대책기구를 구성해야 한다.” “새누리당의 전횡을 막기 위해서는 범민주세력이 참여하는 광범위한 국민전선체가 필요하다.”(시민의소리, 3월 6일자).

많은 사람들이 2011년 9월 6일 안철수가 발표한 감동적 ‘결단’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지지율을 보였지만 5%에 불과한 박원순에게 흔쾌히 후보 자리를 양보했다. 그 직후 안철수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이 치솟았다. 18대 대선을 15개월 앞둔 2011년 9월 10일 MBC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양자 대결일 경우 안철수 59.0%, 박근혜 32.6%로 나타났다.

안철수가 2012년 대선 직전 문재인으로 후보 단일화를 한 뒤에도 대중적 인기는 좀체 사그러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2013년 11월 ‘국민과 함께하는 새정치 추진위원회’를 결성했다가 이듬해 3월 민주당 대표 김한길과 함께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한 뒤 이렇다 할 지도력을 보이지 못한 채, 7월 재보선에서 참패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했다. 최근 ‘대권 주자들’에 관한 여론조사에서 새누리당 오세훈에게도 뒤지는 4위가 되어 한 자릿수 지지율로 떨어진 안철수의 모습은 2011년 9월에 비하면 비마(飛馬)에서 조랑말로 갈아탄 듯이 초라해 보인다. 그러나 그가 부활할 길은 널리 열려 있다. 지금이라도 총선과 대선을 위한 야권 연대의 대열에 열성적으로 참여한다면 대중은 그를 다시 미래의 지도자로 평가할 것이다. 안철수가 야권의 특정 정치인들을 ‘적’으로 여기지 말고 동지가 되어 대승적인 자세로 총선 승리와 정권교체의 전선에 나서기를 기대한다.

※ 이 글은 <미디어오늘>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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