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비례대표 후보 사퇴하라’

당신의 독선 오만 탐욕이 총선 망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자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실질적 대표를 맡고 있는 김종인이 총선을 24일 앞둔 3월 20일 치명적 잘못을 저질렀다. 바둑에 비유하자면 호구(虎口)에 자기 돌을 놓은 것이다. 이날 더불어민주당이 발표한 비례대표 명단이 안고 있는, 일일이 셀 수 없는 문제점이 바로 그것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김종인이 자신의 이름을 비례대표 후보 2번(남성순위로는 1번)에 올린 것은 그가 ‘선당후사(先黨後私)’나 ‘백의종군’은커녕 본인의 정치적 장래와 당권 유지를 최우선으로 여기고 있음을 여실히 입증했다. 김종인은 당선이 확실한 1번에 박정미(홍익대 교수), 2번에 자신, 6번에 최운열(서강대 교수)을 ‘천거’함으로써 ‘셀프 공천’이라는 조롱을 받고 있다. 단적으로 말하면, 김종인은 그동안 “비례대표에는 관심 없다”고 되풀이 말한 것이 거짓이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탐욕을 버리고 즉각 비례대표 후보를 사퇴해야 한다.

김종인이 정치윤리적으로 얼마나 무감각한지는 박정미를 1번에 올린 데서 뚜렷이 드러났다. 그가 2004년 11월에 발간된 <한국수학교육학회지> 43권 4호에 올린 논문이 제자의 논문을 표절한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김종인이 그런 사실을 모르는 채 비례대표 후보 명단에서 박정미를 더민주의 ‘얼굴’로 내세웠다면 어떤 사람들은 크게 시비를 걸지 않을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당사자인 박정미는 비례대표 명단 발표 당일인 20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마음에 남아 있던 일이어서 (비례대표 제안을 받은 뒤) 이 사실을 당에 보고했다. 김종인 대표 쪽에도 보고된 걸로 알고 있다.” 이 ‘사건’은 매우 심각하다. 김종인은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에는 논문 표절자들이 수두룩한데 우리 당에서 한 명쯤 나온다고 무슨 대수일까’라고 생각했을까?

김종인이 주도한 비례대표 후보 선정이 안고 있는 큰 결함들 가운데 하나는 국회의원이 되어 한국사회의 각계각층을 유능하게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늘날 가장 심각한 정치·경제·사회적 쟁점이 되어 있는 청년세대의 높은 실업률을 해소하고, 이른바 ‘헬조선’에서 그들을 구하기 위해 최전선에 나설 수 있는 인물은 들어 있지 않다. 인구의 최대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와 농민을 대표할 사람들도 당선 가능성이 없는 후순위에 ‘들러리’로 배치되어 있다.

야당의 비례대표 후보는 전문분야에 관한 지식, 창의력, 민주화를 위해 헌신할 각오를 가져야 하지만 선거에 나서려면 대중적 지명도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주권자들은 좋은 인상으로 머리에 각인된 후보들에게 표를 주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론계에서 40년이 넘도록 일해 온 내가 보기에도 더민주의 비례대표 후보(A그룹과 B그룹) 20명 가운데 알 만한 인물은 다섯 명이 넘지 않는다. ‘음지’에서 열심히 일했다면 모를까, 총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의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들을 선택해야 하는데 말이다. 당선이 확실해 보이는 A그룹(1~10번)에 박종헌(전 공군참모총장)이 들어 있는 것을 보고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2012년 18대 대선 당시 새누리당 후보 박근혜 지지를 선언하는 예비역 장성들의 성명서에 참여하면서 민주당 후보 문재인을 ‘종북’으로 몰아붙였다. 김종인이 설마 그런 인물까지 공천하며 ‘친노’ 청산에 힘을 쏟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혹까지 일어난다.

‘김종인 식’ 비례대표 공천은 20일 오후에 열린 더민주 중앙위원회의에서 격렬한 비판을 받았다. “(비례대표 선정을 위한) 중앙위 투표를 A·B·C 그룹으로 나눠서 하는 것은 중앙위 투표로 비례대표 순번을 정한다는 당헌을 위배하고 중앙위원들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결국 중앙위는 21일 오후로 연기되었다. 김종인은 왜 당의 ‘헌법’인 당헌까지 어겨가면서 자신이 주도한 비례대표 공천을 기정사실화 하려 드는가?

더불어민주당 대표이던 문재인은 지난 1월 14일 김종인을 선대위원장으로 영입했다. 당 안팎에서 ‘친노패권주의’의 핵심이라고 비난을 받던 그로서는 절실한 총선 승리를 위한 자구책이었을 것이다. 지난 석 달 남짓 당 대표 직무를 수행한 김종인은 더민주를 “공화정에서 전제군주제(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조국의 표현)”로 변모시켰다. 그는 김대중 이래 제1야당의 당론으로 굳어진 ‘햇볕정책’을 ‘북한궤멸론’으로 바꾸는가 하면, 테러방지법안 의결 저지 과정에서 소속 의원들이 벌인 ‘필리버스터 투쟁’이 대중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데도 ‘총선이 우선’이라는 단 한마디로 원내대표 이종걸을 굴복시킴으로써 오히려 지지세력의 표를 깎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게다가 김종인은 더민주의 공식 의결기구를 거치지도 않은 채 선거대책을 발표하거나, 명백한 이유를 밝히지도 않고 유능한 현역 의원들에게 ‘정치적 사망선고’를 내리기도 했다. ‘정무적 판단’이라는 말이 해명의 전부였다. 그의 독선과 오만은 멈출 줄을 몰랐던 것이다.

김종인이 더민주 대표를 맡은 이래 새누리당과 국민의당, 그리고 보수매체들은 그가 정치 생애에서 저지른 많은 과오를 비난했다. 대표적으로, 1980년 광주학살의 주범인 전두환이 주도한 국보위에 참여한 일, 1993년 문을 닫게 된 동화은행에서 2억여원의 뇌물을 받은 죄로 2년 동안 옥살이를 한 일 등이 가장 아픈 상처였을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이 총선체제를 이끌면 더민주가 지리멸렬하리라고 걱정한 지지자들은 김종인이 당의 혼란을 수습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는 그런 기대를 저버리고 독단적 태도와 혼자만의 ‘소신’으로 중요한 사안들을 결정해 나왔다. 안철수가 주도하는 국민의당에 ‘통합’을 제안했다가 거절당하고는 ‘싫으면 그만’이라고 잘라 말했고, 정의당과 굳게 약속했던 ‘연대’도 불가능하다며 접어버렸다.

많은 주권자들은 박근혜 정권 3년 남짓에 정치, 외교, 경제, 사회, 문화, 남북관계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국가가 파탄 상태에 빠진 것을 통탄하고 있다. 그리고 야권의 갈등과 분열에 힘입어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200여 석을 확보한 뒤 영구집권을 위한 개헌을 기도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래서 흠도 많고 잘못도 자주 저지르지만 제1야당인 더민주를 중심으로 야권이 연대를 이루어 총선에서 승리하기를 바랄 것이다. 김종인은 총선에서 더민주 의석이 107석 밑으로 떨어지면 책임을 지겠다고 공언했다. 나는 그가 지금이라도 공동선대위원장 체제를 구성한 뒤 협업을 통해 민주적으로 총선운동을 펼쳐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게 하려면 김종인이 비례대표 후보 2번을 사퇴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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