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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화, 박근혜와 새누리당 통렬히 비판

김종철 프로필 사진 김종철 2016년 03월 28일

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위원장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새누리당 공천은 악랄한 사천’ ‘새 정치결사체 만들 것’


국회의장 정의화가 최근 자신의 ‘친정’인 새누리당과 대통령 박근혜를 통렬하게 비판한 사실이 27일 자 인터넷매체들에 보도되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공식 방문과 잠비아에서 열린 국제의회연맹 총회 참석을 마치고 귀국한 그는 24일 점심시간에 기자들을 만나 다음과 같은 요지의 말들을 했다.




(새누리당은) 공천이라는 이름으로 정당민주주의와 의회민주주의, 법치국가의 기본 원칙을 완전해 뭉개버렸다. 이것은 공천이 아니라 악랄한 사천(私薦)이며, 비민주적인 숙청과 다름없다. (···) 조선시대의 사화(士禍)와 같은 꼴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좋은 말을 했는데, 오히려 점점 비정상으로 가고 있다. (···) 유승민 의원이 당선돼서 새누리당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는데 그건 옛날 방식이 아닌가. 차라리 밖에서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당을 만들겠다고 하는 게 좋았을 것이다. (···) 지금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이 보여주는 정체성이라면 나라가 밝지 않다. 나는 새로운 정치판을 만들고 싶다. 그렇게 하기 위해 괜찮은 사람들끼리 모여서 정치결사체를 만들어 보겠다.



정의화는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 이한구에 대해서 “공관위원장은 인격이 훌륭하고 중립적인 사람이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비록 임기를 한 달 남짓 앞두고 있기는 하지만 ‘합리적 보수’를 대변하는 발언과 행동을 해온 현역 국회의장이 대통령과 집권당에 대해 군더더기 없이 날카로운 공격을 가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그러나 정의화의 폭탄선언을 들으면서 ‘만시지탄(晩時之歎)’이라는 아쉬움을 짙게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지난 2월 하순 그가 청와대와 새누리당 주류의 압박에 굴복해서 테러방지법안 직권상정을 결정함으로써 야당의 필리버스터 투쟁을 유발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당시 상황은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주장하는 ‘국가 비상사태(천재지변이나 전시·사변 등)’가 분명히 아니었다. 만약 정의화가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테러방지법안은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의 합의 없이는 상정될 수 없다고 단호하게 거부했다면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극도의 혼란에 빠져 ‘공안 정국’ 조장을 막무가내로 밀어붙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야당의 필리버스터가 많은 주권자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고 있음을 근거로 정의화가 테러방지법안 직권상정을 4·13 총선 이후 또는 20대 국회로 미루었다면 그는 강직하고 합리적인 정치지도자라는 인상을 대중의 뇌리에 더욱 강하게 심어줄 수 있었으리라.


이승만의 자유당, 박정희의 민주공화당, 전두환의 민주정의당, 이명박의 한나라당, 박근혜의 새누리당으로 이어져 내려온 극우보수정권의 ‘속성’에 비추어보면 정의화는 분명히 이색적이라 할 정도로 민주주의 원칙과 합리적 의회 운영에 충실하려고 노력한 정치인이었다. 현역 국회의장이던 그는 2012년 8월 17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통일동산에서 열린 ‘장준하 39주기 추모식’에서 “장준하 의문사는 타살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국가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 가운데 그런 공개적 발언을 한 사람은 정의화가 처음이었다. 그는 2014년 새누리당과 야당이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두고 150일이 넘도록 국회 기능을 정지시키다 시피 하고 있던 시기에 새누리당이 단독으로 법안을 처리하려는 것을 막고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연기한 뒤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출석할 때까지 기다려 국회를 열었다. 2015년에는 청와대가 유형무형의 압박을 통해 ‘주요 쟁점법안들’(야당과 시민단체들은 ‘악법’으로 규정)의 처리를 강요했지만, 정의화는 ‘직권상정 불가’ 입장을 고수했다. 정의화는 권력 남용과 ‘악법 제정’을 예사로 여기는 집권세력 안에서 ‘배신자’로 낙인찍힌 유승민과 함께 외로운 저항을 계속해온 것이었다.


지난 2월의 테러방지법안 직권상정 파동 이후 대중의 눈에서 멀어진 듯하던 정의화가 박근혜와 새누리당 지도부에 대한 직설적 비판을 계기로 다시 언론과 주권자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국회의장 임기를 마치면 아무런 공직도 갖지 않은 자연인으로 돌아갈 정의화는 과연 ‘새로운 정치결사체’를 탄생시키는 주역이 될 수 있을까? 새누리당 원내대표 원유철은 27일 오전 한 방송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무소속으로 당선된 분들이 복당해서 새누리당에 온다는 것은 안 된다. 당헌 당규가 그렇게 돼 있다.



현재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유승민을 비롯해서 ‘비박’으로 불리는 출마자들 가운데 당선 가능성이 큰 전 새누리당 소속 의원의 수는 적지 않다. 그들이 ‘친정’으로 돌아가지 않고 새 정치결사체를 만든다면 유승민과 정의화가 중심에 설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렇게 되면 최근 지지율이 30% 대 후반으로까지 떨어진 박근혜는 ‘따뜻하고 합리적인 보수’를 표방하는 새로운 정치세력이라는 버거운 상대와 맞서게 될 것이다. 특히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박근혜와 더불어 집권여당조차 헤어날 수 없는 ‘레임덕’의 수렁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무기력해진 집권세력이 내년 대통령선거에 강력한 후보를 내세우지 못할 경우 중립적 위치에 있는 ‘새 보수정치결사체’가 유승민이나 정의화를 대선 후보로 앞세워 정치 지형을 크게 변화시키려고 시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현상이 벌어진다면 대중은 ‘살아 움직이는 정치’의 역동성을 확인하면서 신명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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