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치적 파산선고’ 받았다

새로운 지도자들이 정당 민주화 앞장서야

새누리당의 참패로 끝난 20대 총선은 껍데기만 남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부활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 온갖 책략과 술수로 유권자들을 기만하는 거대 집권당을 원내 제2당으로 전락시켰기 때문이다. ‘선거혁명’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이 놀라운 사건은 새누리당에 대한 심판일 뿐 아니라 그 당을 사조직처럼 지배하려 들던 대통령 박근혜에 대한 ‘정치적 파산선고’이기도 하다.

박근혜는 주권자들이 위임한 대통령 직위를 국가의 발전과 민족의 통일에 활용하지 않고 유신독재자이던 아버지 박정희의 과오와 추한 행태를 덮어버리거나 오히려 미화하는 데 악용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그는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을 1970년대의 ‘겨울공화국’으로 되돌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사는 듯한 언행을 자주 보였다. 이번 총선에서 박근혜는 집권당의 압승을 위해 마치 새누리당의 선거대책위원장 같은 발언과 선거운동을 펼쳤다. 이른바 ‘진박’ 후보들을 지원하기 위해 자주 현지를 방문하는가 하면 국무회의를 비롯한 공식 석상에서 ‘국회 심판론’을 주장함으로써 여당의 선거운동을 노골적으로 돕기도 했다. 그는 선거 전날인 12일 국무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경제활성화 법안들이 국회에 묶여서 일어난 경제손실과 일자리는 그만큼 국민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준 것과 다름없다. (···) 저는 막중한 책임감으로 마음과 몸이 무겁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이번 선거에서 나라의 운명은 국민이 정한다는 마음으로 진정으로 국민을 섬기고 나라를 위해 일하는 20대 국회를 만들어주실 것을 당부 드린다.

그러나 정작 선거 결과는 박근혜가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훨씬 많아지게 만들 것이 분명하다.

선거를 며칠 앞둔 시점에서 정부는 ‘중국 식당에서 일하던 북한 동포 13명 탈북’을 전례 없이 신속히 공개하는가 하면 지난해에 일어난 해묵은 사건인 ‘북한군 대좌 망명’을 언론에 유포하기도 했다. 이 ‘북풍’은 정보기관의 ‘공작’이라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했다.

박근혜는 새누리당의 상징색인 빨강 점퍼를 입고 선거 관련 현장을 도는가 하면 같은 옷을 입고 투표도 했다고 한다. 여기서 총선을 앞둔 2004년 3월에 일어난 ‘대통령 노무현 탄핵소추’를 되돌아보기로 하자. 당시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이 주도한 탄핵의 사유는 아주 단순했다. 노무현은 그해 2월 중순 경인지역 6개 언론사와 가진 합동회견에서 “개헌 저지선까지 무너지면 그 뒤에 어떤 일이 생길지는 나도 정말 말씀 드릴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2월 하순 방송기자클럽 초청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 대통령이 뭘 잘해서 열린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것이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위반이라는 것이었다.

박근혜가 시도 때도 없이 선거에 직접 간접으로 개입한 것에 비하면, 마음속에 담아두어야 할 생각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노무현의 ‘가벼움’이 빚어낸 ‘참사’였다고나 할까? 박근혜가 국회의 입법권을 공개적으로 침해하고 유승민 같은 합리적 보수주의자를 ‘배신자’로 낙인찍어 원내대표직을 사퇴하게 만든 사건 같은 것은 노무현의 ‘탄핵 소추 사유’보다 훨씬 심각하다.

어쨌든 박근혜는 이번 총선 결과 때문에 ‘정치적 파산선고’를 당했다. 새누리당이 국회 과반 의석에 한참 못 미치는 122석을 얻는 데 그침으로써 그가 그렇게도 국회 통과를 바라던 노동관계법안과 서비스발전기본법안, 사이버테러방지법안 등은 휴지조각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그리고 박근혜 자신이 앞장서서 만들었다가 대통령이 되고서는 폐기하려고 갖은 노력을 하던 국회선진화법 국회 처리도 물거품이 되었다. 그 법을 없애거나 개정하려면 의원 180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장기집권을 위한 개헌에는 의원 200명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하니, 그 ‘원대한 기획’도 백일몽이 되고 말았다.

박근혜는 오랜 세월 ‘선거의 여왕’이라고 불렸다. 주요한 선거 때마다 승리를 일궈내는 주역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 그는 ‘선거의 졸(卒)’로 전락했다. 수도권(서울, 경기, 인천)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압승을 거두었을 뿐 아니라 그의 정치적 아성인 대구에서 야당 후보(김부겸)가 31년 만에 당선된 것은 임기를 1년 10개월밖에 남기지 않은 박근혜에게는 레임덕의 결정적 징후가 될 것이다. 그리고 부산과 경남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7명이나 승리한 것은 ‘이변’이 아니라 박근혜와 새누리당 심판을 알리는 결정적 신호라고 볼 수 있다.

박근혜에 대해 ‘정치적 파산선고’를 하는 데는 그를 적극 지지하던 조선·중앙·동아일보가 앞장섰다. 1997년 당시 대통령 김영삼이 측근의 비리와 부정 때문에 곤경에 빠졌던 때 보수언론이 보인 ‘칼질’이 이번에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은 14일 자 사설(‘박근혜 대통령과 친박의 오만에 대한 국민적 심판이다’)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박 대통령은 임기 초에는 인사 실패를 거듭했고, 안하무인의 태도로 불통 시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박 대통령 주도로 선진화법을 만들어 주요 국정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매번 의사 결정이 지연되면서도 국민에게 사과 한 번 하지 않고 국회 탓만 했다. 이제 국정 주도력이 국민 불신을 받음으로써 사실상 임기 말 레임덕이 그 어느 정권보다 빨리 시작됐다.

중앙은 같은 날짜에 ‘중간평가에서 참패한 여권···국민 이기는 권력 없다’라는 제목의 사설을 내보냈고, 동아는 1면 머리기사 제목을 ‘여당 참패, 박근혜 대통령 확 바뀌라는 국민의 명령이다’라고 뽑았다.

4·13 총선은 야권의 기적 같은 승리를 통해 박근혜와 새누리당의 독선과 오만을 심판하는 역사적 계기가 되었지만, 원내 제1당으로 떠오른 더불어민주당과 제3당의 지위를 확고하게 굳힌 국민의당에 어려운 과제를 안겼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정당의 민주화이다. 총선 직전 붕괴 위기에 직면한 더민주 대표 문재인은 당 최고의결기구의 합의도 없이 김종인을 실질적 대표로 ‘영입’했고, 김종인은 공천과 선거운동 과정에서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전횡과 아집을 자주 보였다.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 안철수는 친일과 독재의 뿌리인 새누리당과 정통 야당의 맥을 이어온 더민주를 동일시하면서 기득권정당 청산을 외쳤다. 그는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이력도 없으면서 ‘호남의 사위’라고 자랑한 끝에 더민주를 압도하고 호남을 석권하는 주역이 되었으나, 앞으로 당을 민주적으로 운영할 의지를 가지고 있는 지 의문이다. 특히 38석을 확보한 국민의당이 제3당으로서 중요한 정치적 쟁점들에 대해 국회에서 어떻게 캐스팅보트를 행사할는지 두고 볼 일이다.

이번 총선 결과를 보고 나는 이런 바람을 품게 되었다. 야당의 민주화를 위해서는 지금의 지도부보다는 젊고 참신한 인물들이 중심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대구에서 낙선의 고배를 거듭한 끝에 오뚝이처럼 일어난 김부겸, 부당한 공천 배제를 당하고도 전국을 돌며 헌신적으로 선거운동을 펼친 정청래 같은 사람들이 앞으로 있을 전당대회에서 당 지도부에 참여하게 되면 좋겠다. 이번에 총선을 승리로 이끈 ‘어른들’은 논공행상을 받으려 하지 말고 깨끗하게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면 어떨까? 이 말을 국민의당에도 전하고 싶다. 민주화된 정당만이 국가와 사회를 민주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이 글은 <미디어오늘>에도 함께 실립니다.

  • 엄연진

    정치적 파산 선고 이어 탄핵으로 갔으면…. 국민들이 나서서 탄핵시키고 싶은 대통.

    • 이원복

      탄핵에 한표

  • 이원복

    구구절절 옳으신 말씀 그네의 교만의 끝을 보여준 선거

  • 묵언

    쥐새끼도 잡고 닭의 목아지도 비틀어야지.

  • 김대성

    옳으신 말씀. 바램이 있다면 안 보이는 곳에서 수고하신
    개표 감시단 이 있습니다. 이들 덕에 부정 조작 선거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이들를 격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음 대선에서 저들은 부정 선거를 획책하려 한다는 소문도 돌고 있습니다. 모두 두눈 크게 뜨고 감시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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