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대통령’을 언제까지 두고 봐야 하나

새누리당에 참패를 안겨줌으로써 박근혜 정권을 ‘데드덕(죽은 오리)’ 상태로 몰아넣은 4·13 총선은 ‘선거혁명’이라고 불러야 마땅한 사건이었다. 독선, 오만, 불통, 무능, 무책임 등 이루 열거할 수 없이 많은 수식어를 달고 살던 박근혜는 민심이 내린 준엄한 심판의 의미를 깨닫고 신속히 사죄를 했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선거 이튿날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고, 청와대 대변인 정연국이 기자들이 모여 있는 춘추관에 나타나 단 두 문장짜리 논평을 내놓았다.

20대 국회가 민생을 챙기고 국민을 위해 일하는 새로운 국회가 되기를 바란다. 국민들의 이러한 요구가 나타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뜬 구름 잡는 듯한 그 논평이 박근혜의 ‘승락’ 없이 나왔을 리는 없기에 조선·중앙·동아일보 같은 권력언론조차 민심을 읽지 못하는 그를 향해 융단폭격을 퍼부었다. 박근혜는 총선 13일 뒤인 26일에야 청와대에서 46개 언론사 편집·보도국장들과 오찬 간담회를 갖고 ‘말 폭탄’을 쏟아냈다. 취임 이래 한 해에 한두 번의 기자회견을 미리 짜여진 ‘각본’에 따라 하고 기자들의 질문도 받지 않는 것을 관례처럼 여기던 박근혜로서는 파격적인 행사를 가진 셈이었다. 그런데 그가 소낙비처럼 퍼부은 ‘말의 홍수’는 20대 총선의 민심을 전혀 읽지 못하고 종래의 독선과 자기도취를 되풀이하는 공허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간담회 들머리에 “이번 선거에 나타난 민의를 잘 반영해 변화와 개혁을 이끌면서 각계각층과의 협력, 그리고 소통을 잘 이루어나갈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을 다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정작 박근혜가 2시간 20분 동안의 간담회에서 언론인들의 질문에 답변한 A4용지 24장 분량의 ‘장광설’은 그런 다짐과는 정반대였다. 박근혜의 가장 심각한 착각 또는 자기 합리화를 단적으로 입증한 발언은 여소야대라는 총선 결과의 원인을 국회 탓으로 돌린 것이었다.

사실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국민과 국가에 대해서 무한한 책임을 지는 자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나라 체제가 대통령중심제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사실은 지난 시절을 보면 대통령중심제라고는 하지만 대통령으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어요.

특히 국회와의 관계에서 보면 되는 것도 없고 또 이건 좀 해야만 경제를 살릴 수 있겠다 호소도 하고 국회를 찾아가기도 하고 초청해서 말씀도 나눠보고 그래도 뭔가 되는 게 없이 쭉 지내왔기 때문에 그런 데하고 관계없는 법으로 되어야 되는 것하고, 관계없는 그런 행정부 안에서 할 수 있는 일,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만들어서 그런 쪽으로 성장 동력을 확충한다든지 또 외국에 나가서 수주하는 일을 돕고 정상외교나 이런 것을 통해서 뭔가 교류를 확대해서 경제에 도움이 되도록 한다든지 그런 쪽으로 계속 돌아다니면서 일을 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박근혜는 이렇게 주장하면서 “국민들이 볼 적에도 이게 국회가 양당체제로 되어 있는데 서로 밀고 당기고 이러면서 되는 것도 없고 정말 무슨 식물국회라고 보도에도 봤지만 그런 식으로 쭉 가다 보니까 국민들 입장에서는 변화와 개혁이 있어야 되겠다 하는 그런 생각들을 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그야말로 후안무치한 책임 전가(轉嫁)이다. 박근혜가 ‘경제 살리기’를 명분으로 국회 통과를 강행하려던 ‘노동 4법’은 노동자들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경영자들이 독점하도록 하려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테러방지법은 모든 국민을 권력의 감시와 통제에 예속시키는 위헌적 법률이다. 그런데도 국정원장이 국회의장을 찾아가서 말이 ‘권유’이지 강압을 통해 직권상정을 ‘관철’하지 않았던가? 박근혜 정권의 입법권 침해 사례는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박근혜는 ‘3당 체제’를 민의가 만들어 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만약 원내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제3당인 국민의당이 161석이라는 압도적 우세에 힘입어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반대하는 법안들을 통과시키려 한다면 그것도 ‘민의’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박근혜가 이번 ‘총선 민의’를 존중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점은 간담회의 발언에서 명백히 드러났다. 그는 세월호 참사 진상 조사, 국사교과서 국정화, 파탄 상태에 빠진 경제, 대선공약으로 내걸고도 지키지 않은 연금 문제 등에 관한 질문을 받고 “이런저런 다양한 분석이 있다”는 말로 넘어가버렸다. 그리고 국정 운영의 주체로서 국가를 총체적 위기에 빠뜨린 책임을 져야 할 내각을 개편하거나 청와대 참모진을 교체할 의향이 있느냐는 물음에 대해서는 부정적 답변을 했다. 결국 박근혜는 46개 언론사 편집·보도국장들의 귀와 입을 통해 자신의 실정과 악정에 대한 변명을 주권자들에게 전하는 ‘이벤트’를 한 셈이다. ‘내일’이 없이 오늘의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젊은이들, 갈수록 삶의 벼랑 끝으로 몰리는 대다수 노동자와 농민 등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정책과 대책에 관해서는 책임있는 말을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박근혜는 오찬간담회에서 총선 시기에 극한 대립을 벌인 ‘진박’과 ‘반박’에 관해 ‘오불관언(나는 모르쇠)’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자신이 ‘친박’을 만든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친박이라는 말 자체가 선거 때 마케팅으로 자신들이 그냥 만들어 갖고 친박이라 했다가 탈박이라고 그랬다가 짤박이라고 그랬다가 별별 이야기를 다 만들어내면서 한 것”이란다. 박근혜가 음양으로 그런 편 가르기를 하고 ‘반박’의 대표적 인물인 유승민을 새누리당에서 추방한 일을 아예 잊었다는 뜻인가? 그는 대구에서 70%가 넘는 압도적 지지로 당선된 유승민의 복당에 관해 실질적으로 거부의 뜻을 밝혔다. 스스로 새누리당의 ‘상왕’임을 인정한 셈이다.

오늘날 한국사회에는 ‘지옥’이라는 접두어가 따라 다닌다. ‘헬조선’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해 3월에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들에 관한 통계지수를 보면 한국은 ‘나쁜 종목’에서 ‘50관왕’에 올랐다. 자살률, 산업재해 사망률, 가계부채, 남녀 임금 격차, 노인 빈곤율, 청소년 흡연율, 최저임금, 저임금 노동자 비율, 어린이 고통사고 사망률, 환경평가, 청소년 행복지수, 이혼 증가율, 국가채무 증가율, 실업률 증가폭, 독주 소비량, 정치적 비전 등등이다.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뒤 2년 만에 나라가 ‘지옥’으로 변하는 속도가 훨씬 더 빨라진 것이다.

박근혜는 간담회에서 파견근로법의 취지를 설명하면서 “해보려는 것을 이렇게 못할 수가 있는지, 임기를 마치면 엄청난 한이 남을 것 같다”고 탄식했다.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 하는 건 아닌데 하는 마음의 아픔이 많이 있다”고 읍소하듯 말하기도 했다. 자신이 하루라도 빨리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야 국가도 민족도 경제도 민주주의도 살아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는 채 대통령 자리를 ‘한풀이’ 무대쯤으로 여기고 있다는 뜻일까?

이명박이 5년 동안 ‘4대강 사업’과 ‘자원외교’ 등으로 국토와 국고를 분탕질한 뒤 국가 운영을 개선하기는커녕 더 악화시킨 박근혜의 임기는 아직 22개월이나 남았다. 그런데 이번 오찬간담회에서 드러난 것을 보면 그가 독선과 오만, 무책임을 반성하고 대통령직을 사퇴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야권이 그를 물러나게 할 방안을 찾지 못한다면 내년 대선을 통해 정권을 교체하는 길 말고 주권자들을 ‘지옥’에서 구해낼 방책이 달리 없을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야권이 4·13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을 겸허하게 떠받들어 정권교체의 길로 매진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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