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망월동 가서 무조건 무릎 꿇어라

-전직 대통령 예우, 신변보장 요구는 파렴치의 극치

올해 5월 18일은 ‘광주민주화운동’(정부의 공식 용어) 36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 운동의 이념을 기리고 민중항쟁의 정신을 이어받기를 다짐하는 노래인 ‘임을 위한 행진곡’을 박근혜 정권이 아직도 공적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고집하는 가운데 뜻밖의 사건이 벌어졌다. 지금도 ‘전직 대통령’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전두환이 광주를 찾아가서 희생자들과 유족들에게 ‘유감의 뜻’을 표명할 의사가 있다는 뉴스가 언론에 보도된 것이다. 그의 ‘측근’이라는 김충립(한반도프로세스포럼 대표, 전 특전사 보안대장)은 지난 13일 JTBC 기자에게, 최근 ‘광주 방문’을 전두환에게 건의했음을 인정하면서 그와 나눈 대화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김충립: 광주도 36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는데, 이대로 끝나기를 원하지 않으니 당신이 사과하고 또 광주에 다녀오는 것이 중요하다.

전두환: 아, 내가 발포 명령자로, 발포자로 되어 있는데 어떻게 사과를 하느냐?

김충립: 발포는 다른 사람이 했지만, 그것까지 감싸 안고 총체적으로 유감을 표한다고 사과를 하시죠.

전두환: 그것 좋다. 그것 좋다. 그렇게 하자. 지금 (광주) 가고 싶다. 그러나 못 간다. 첫째 광주 민심이 두려워서 못 가고, 둘째 신변보호가 안 되니까 못 가고, 셋째, 전직 대통령의 예우가 안 돼 있기 때문에, 넷째 그 추종하던 사람들이 전부 다 피해를 받고 있는데 연금문제도 해결이 되고 사후에 국립묘지도 가고 훈장 받은 것도 (되돌려) 받아야지.

김충립: 그럼 이 네 가지가 해결되면 가실래요?

전두환: 당연히 가야지.

5월 항쟁의 최일선에 나서 싸우다가 신군부’ 하수인들의 총칼에 목숨을 잃은 ‘영령들’, 그리고 평생 장애인으로 살고 있는 부상자들과 가족이 전두환과 김충립이 나눈 대화를 전해 듣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당시 광주 상황을 목격한 시민들은 틀림없이 아래와 같이 반문할 것이다.

전두환이 발포 명령자도 발포자도 아니라고? 그는 신군부의 수괴로서 1980년 5월 17일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김대중을 비롯한 재야인사들을 내란음모 혐의로 체포했다. 바로 이튿날 전남대 학생들이 그런 폭거에 항의하는 뜻으로 시위를 벌인 것이 5월 항쟁의 시발점이었다. 전두환의 지시가 없었다면 특전사령관이나 보병사단장이 자의적으로 발포 명령을 내렸단 말인가? 그야말로 서천 소도 웃을 소리이다.

신군부의 1, 2인자였던 전두환과 노태우는 김영삼 정권 시기인 1996년 1월 14일 내란 및 반란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다. 전두환은 그 해 8월 26일 서울지방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12월 16일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이듬해 4월 17일 대법원은 전두환과 노태우 등이 저지른 어마어마한 범죄행위를 인정하고 2심 판결을 확정했다. ‘반란수괴, 반란모의 참여, 반란 중요임무 종사, 불법진퇴, 지휘관계계엄지역수소 이탈, 상관살해미수, 초병살해, 내란수괴, 내란모의 참여, 내란목적 살인,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등.
전두환은 사형 집행을 당해도 죄 값을 모두 치를 수 없었지만, 당시 대통령 김영삼의 ‘정치적 계산’ 덕분에 사면을 받아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런 인물이 ‘5월 광주’의 희생자들과 유족, 그리고 부상자들을 다시 농락하고 있다. 망월동 ‘민주묘역’과 ‘구 묘역’에 묻힌 ‘열사들’의 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저의 죄를 용서하십시오. 이제부터라도 영령들의 고귀한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백배사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겠습니다’라고 말해도 모자랄 텐데 말이다.

전두환은 천하가 다 아는 ‘파렴치한’이다. 그는 1997년 대법원의 최종 판결에서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으로 2,205억 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았다. 그가 대통령 재임 기간에 위법적으로 형성한 ‘비자금’은 무려 9,500억여 원으로 추정되었다. 전두환은 대법 선고 이후 13년 동안 추징금 총액의 24.2%인 533억 원 만을 납부했다. 그러다가 2010년 10월 11일 미납 추징금 1,672억 원 중 겨우 3백만 원을 납부했다. 당시 그는 자기 지갑에는 ‘29만 원밖에 없다’고 엄살을 부려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다. 그 3백만 원조차 2011년 3월로 끝나는 추징금 납부 시효를 앞두고 강제집행에 따른 재산 압류를 피하기 위한 짓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전두환은 현재 연금, 비서관 및 운전기사 임명, 사무실 제공 등 전직 대통령 예우는 받지 못하지만 2014년에만 ‘사저 경호비’로 6억7천만여 원을 정부 예산에서 지원받았다. 그는 요즈음도 ‘측근들’을 데리고 골프를 즐기거나 해외여행을 다닌다고 한다.

광주의 한 시민단체는 “사실상 자체 경호가 가능한 상황에서 ‘광주 방문, 유감 카드’로 노리는 것은 전두환 자신과 측근들의 사면”이라고 분석했다. 김충립도 5월 15일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전두환이 광주를 방문하려는 ‘숨은 목적’이 무엇인지를 이렇게 암시했다.

유감의 뜻을 표하고는 싶지만 혼자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추종자들이 같이 가야 하는데, 그들도 아직까지 형을 받고 있다. 연금도 못 받고 국립묘지도 못 가고 훈장도 반납하고 아직은 사면이 덜 된 상태이다. 그런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광주 시민들이 이해해주고 마음이 풀어져야 한다.

전두환은 1979년 10월 26일 대통령 박정희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탄에 맞아 세상을 떠난 뒤 주권자들의 합법적 결정에 따라 새 정부가 세워지는 것을 막고 그해 12월 12일의 군사반란과 이듬해 5월 17일의 쿠데타를 통해 민주주의 부활의 숨통을 끊어버린 ‘반역도당’의 우두머리였다. 그는 박정희의 유신독재에 못지않게 야만적인 군사독재를 자행하면서 7년 동안 한국사회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것도 모자라서 이른바 ‘호헌’을 통한 장기집권을 꾀하다가 6월항쟁에 밀려 권좌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그는 국가를 ‘조폭집단’의 사조직처럼 움직이면서 정보수사기관을 앞세운 고문과 용공조작을 일삼고 자신과 친족의 부정축재에 몰두했다. 전두환은 이승만과 박정희의 반민주·독재체제 후계자로서 이명박, 박근혜와 더불어 국가와 민족공동체를 파탄 상태로 몰아넣은 데 대해 엄중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 전두환은 ‘광주 방문, 유감 표명’ 같은 말을 다시는 입에 담지 말고 법적 시효에 관계없이 남은 추징금을 하루라도 빨리 내는 것이 역사 앞에 조금이라도 속죄하는 길이라는 것을 왜 깨닫지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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