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기관장이 ‘천황 폐하 만세’ 부르는 나라

일제강점기의 악몽이 되살아난다

우리 겨레가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야만적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지 올해로 71년이나 된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사회에서는 일제 잔재가 청산되기는커녕 친일파의 후손들이 대통령직부터 집권세력의 핵심부에 이르기까지 광범하게 포진되어 있다. 그들이 ‘내 조상의 친일·반민족 행위를 솔직히 인정하고 역사 앞에서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대신해서 사죄한다’고 말한다면 더 이상 시비를 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는 아직까지 그렇게 한 정치지도자나 ‘저명인사’가 전혀 없다. 이런 현실을 타파하지 않으면 진정한 민주화와 자주·독립이 이루어질 수 없음이 분명하다.

최근 국책기관의 책임자가 워크숍에서 ‘친일파의 후손’이라고 공언하면서 ‘천황 폐하 만세’를 삼창(三唱)한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일고 있다. 그 ‘주인공’은 국무조정실 산하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국가기후변화적응센터장 이정호이다. 이 사건은 지난 23일 자 아시아경제 기사를 통해 처음으로 알려졌다.

기사가 나간 바로 그 날 KEI는 몇 시간 만에 자체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사자 및 관련자에 대한 면담 및 관련자료 등을 종합 조사한 결과, 공식 또는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천황 폐하 만세’ 삼창을 외친 사실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시아경제는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증언과 ‘녹취록’을 통해 이정호의 ‘천황 폐하 만세’ 삼창이 사실임을 밝혀냈다. 지난 27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불려 나간 이정호는 더불어민주당 의원 민병두가 “할아버지의 직업이 무엇이었느냐”고 묻자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아시아경제가 워크숍 참가자들에게 확인한 바에 따르면 그는 회식 자리에서 “할아버지가 일제시대에 동양척식회사의 마지막 사장이었다”고 말하고 “천황 폐하 만세”를 불렀다고 한다. ‘동척’이라는 약칭으로 불리던 그 회사는 일제강점기 조선 식민지 수탈에 앞장선 악명 높은 조직이었다.

아시아경제는 이정호의 아버지가 전두환·노태우가 이끌던 ‘하나회’의 총무였고, 육군 보안사령관과 참모총장 등을 거쳐 노태우 정권의 국방부장관을 지냈다는 사실도 보도했다.

지금 박근혜 정권이 ‘암실’에서 편찬하고 있는 ‘진실한 국정교과서’가 나오면 어린 학생들은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행적을 단 한 줄도 보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학생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일제강점기에 조선의 언론과 지식인들이 ‘천황 폐하’에게 얼마나 뜨겁게 충성을 바쳤는지를 실례를 들어 살펴보기로 하자.

‘민족지’를 표방하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일제가 중국을 본격적으로 침략하기 시작한 1936년부터 당시 일본 왕 히로히토에게 ‘용비어천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최상의 ‘찬사’를 바쳤다. 1940년 4월 29일(‘천황의 생일’ 이라는 천장절) 조선일보 1면 머리에 실린 사설(‘봉축 천장절’)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만화가 방창하고 춘광이 무르녹는 이 29일은 천장가절이다. 황공하옵게도 천황 폐하께옵서는 이날에 제39회의 어탄신을 맞이하옵시사 옥체가 유건하시옵고 보조(寶祚)가 유강하옵신 바 금년의 금일은 특히 황기 2600년인 조국식년(肇國式年)의 날로 1억 신자(臣子)의 충심으로 흥아성 업도 황위 하에 일단은 진척을 보아 선린의 신지나 국민정부가 환도의 경축을 하는 이때에 이 가신(佳辰)을 맞이한 것은 더욱 광휘 있고 경축에 불감할 바이다.

같은 날짜 동아일보 사설(‘봉축 천장절’)의 앞부분은 아래와 같다.

신록이 양광(陽光)에 빛나는 때를 당하여 천장가절을 봉영할 적마다 1억 민초는 항상 황은의 광대심후함에 감격을 새롭게 함으로써 봉은경앙(奉恩 景仰)의 염을 굳게 하거니와 특히 금년은 황국 웅비를 기하는 기원 2600 년이요 사(邪)를 파(破)하고 정(正)을 현(顯)하는 성전을 일으킨 지 제4년, 오늘 폐하께옵서는 제39회의 어탄신을 맞이하옵시와 천기(天璣) 더욱 어가려(御佳麗)하옵시다 하오니 국민은 오직 공구 감격함을 마지않는 바 이다. 배승하건대 지나사변의 과정에 있어서 궁중에서는 어하연을 어중지 하옵시고 오로지 시국 해결에만 어진념하옵신다 하오니 실로 공구할 뿐이다.

한국 현대문학의 창시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대문호(大文豪)’라고 불리는 춘원 이광수가 육당 최남선과 더불어 ‘특급 친일·반민족행위자’였다는 사실은 검인정교과서에도 바르게 기록되어 있지 않으니, 국정화될 역사교과서(빛을 보지 못할 가능성이 농후하지만)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는 이광수의 친일·반민족행위에 관한 기록이 무려 10쪽이 넘게 나온다. 그중에서 단 한 가지 사례만 보기로 하자.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 1942년 2월 20일 자에 그가 ‘창씨와 나’라는 제목으로 쓴 글이다.

내가 향산이라고 씨를 창설하고 광랑이라고 일본적인 명으로 개(改)한 동기는 황송한 말씀이나 천황어명과 독법(讀法)을 같이하는 씨명을 가지자는 것이다. 나는 깊이깊이 내 자손과 조선 민족의 장래를 고려한 끝에 이리 하 는 것이 당연하다는 굳은 신념에 도달한 까닭이다. 나는 천황의 신민이다. 내 자손도 천황의 신민으로 살 것이다. 이광수라는 씨명으로도 천황의 신민이 못 될 것이 아니다. 그러나 향산광랑이 조금 더 천황의 신민답다고 나는 믿기 때문이다. 내선일체를 국가가 조선인에게 허하였다. 이에 내선일체운동을 할 자는 기실 조선인이다. 조선인이 내지인과 차별 없이 될 것밖에 바랄 것이 무엇이 있는가. 따라서 차별을 제거하기 위하여서 온갖 노력을 할 것밖에 더 중대하고 긴급한 일이 어디 또 있는가.

이정호의 ‘천황폐하 만세’ 삼창을 단순한 우발적 사건으로 보아야 할까? 그것은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친일파와 그 후손들의 잠재의식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은 지난 17일 ‘역사교과서 국정화 무력화법’을 공동 발의했다. 더민주 의원 이찬열이 대표 발의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은 검인정 도서만 교과서로 인정하고 국정교과서는 학교에서 사용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만시지탄이라는 느낌이 들지만, 여소야대 국회는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라는 각오로 그 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박근혜 정권의 친일·반민족행위 은폐와 미화, 유신독재 찬양 같은 역사쿠데타를 반드시 저지해야 한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이정호 사건이 이런 경각심을 일깨우는 데 ‘이바지’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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