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권의 ‘신종 보도지침’

언론자유 세계 70위도 과분하다

6월의 마지막 날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18층 전국언론노동조합 회의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은 전 청와대 홍보수석 이정현(현재 새누리당 재선 의원)과 김시곤(2014년 4월 당시 KBS 보도국장)의 통화 내용을 담은 ‘녹취록’ 공개로 시작되었다. 나는 10분이 넘게 육성이 생생하게 나오는 영상을 보면서 참담한 심경을 가눌 수가 없었다. ‘대통령의 입’인 홍보수석이 명색이 공영방송인 KBS의 일선 보도 책임자를 으르고 구슬리는 모습이 생생히 떠올랐기 때문이다. 기자회견을 주최한 8개 언론단체 대표의 한 사람으로 연단에 앉은 내 옆에는 특별초청을 받은 ‘예은 아빠’ 유경근(4·16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이정현이 김시곤에게 기관총탄 쏘듯이 퍼부어 대는 말을 들으면서 가슴이 터질듯한 분노를 억누르려는지 눈을 지그시 감고 주먹을 움켜쥐고 있었다. 바로 아래와 같은 대목들에서 특히 그랬다.

지금 이 전체적인 상황으로 봤을 때 그 배에 있는 최고의 전문가라는 운전하고 있는 놈들이 뛰어내리라고 명령을 해야 뛰어내리지 지들은 빠져나오고 다른 사람들은 그대로 놔두라고 그러는데 그걸 해경을 두들겨 패고 그 사람들은 마치 별 문제가 없는데 해경이 잘못이나 한 것처럼 이런 식으로 몰아가고, 지금 국가가 어렵고 온 나라가 어려운데 지금 이 시점에서 그렇게 해경하고 정부를 두들겨 패다니···(2014년 4월 21일 밤 9~10시 무렵 통화)

그래 한 번만 도와줘 진짜. 요거 하필이면 또 세상에 (대통령님이) KBS를 오늘 봤네. 국장님 요거 한 번만 도와주고 만약 되게 되면 나한테 전화 한 번 좀 해줘 응?(4월 30일 밤 10시쯤 통화)

4월 21일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뒤 닷새째 되던 날이다. 당시 온 국민의 관심은 왜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이 승객들에게 선내 방송 한마디 하지 않고 자기들만 배에서 뛰어내렸는지, 해경이 신속히 구조작업에 나섰으면 대다수 승객들, 특히 단원고 학생들을 구할 수 있었는데 왜 팔짱만 끼고 있었는지에 쏠려 있었다. 승객의 가족들은 해경의 방관이 많은 희생자를 낳은 직접 원인이라고 비판하며 빨리 선실에 들어가 구조작업을 하라고 호소했다. 그런데 이정현은 바로 그런 시점에 KBS가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 마치 ‘반국가적 행위’라도 되는 듯이 보도국장을 몰아붙였다. 4월 30일 KBS 9시 뉴스에는 다시 해경을 비판하는 기사가 나갔다. 해경이 언딘 잠수사들을 우선 투입하기 위해 해군 잠수사들의 진입을 막았다는 내용이었다. 이정현은 그 기사에 대해 숨이 넘어갈 듯이, 녹음을 다시 해서 내보내 달라고 ‘하소연’을 했다. ‘청와대 낙하산 사장’의 통제를 받는 보도국장에게 ‘보도지침’을 내린 셈이었다.

김시곤은 이정현으로부터 ‘전화 보도지침’을 두 번째로 받은 지 보름 남짓 뒤인 5월 16일 밤 11시 KBS <뉴스라인>에 ‘재임 내내 보도 압력’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그 충격적인 뉴스를 본 KBS 보도본부 부장단 18명은 “KBS가 날개도 없이 추락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그 책임을 통감하고 부장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김시곤은 정직 4개월의 중징계를 받고 ‘정직무효소송’을 법원에 냈는데 2016년 2월 29일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패소 판결을 받았다.

‘국민의 방송’이라는 KBS가 박근혜 정권으로부터 음양으로 받고 있는 통제와 간섭은 전두환 정권 시기인 1986년 9월 6일 민주언론운동협의회(약칭 언협, 민주언론시민연합의 전신)의 기관지 <말>이 폭로한 ‘보도지침’을 연상시킨다. 당시 한국일보 편집부 기자이던 김주언이 편집국 데스크에 놓인 ‘보도지침 일지’를 언협 실무자에게 제공함으로써 세계적인 뉴스가 되었던 것이다. 당시 문화공보부 홍보정책실은 공휴일을 빼고는 하루도 빠짐없이 ‘보도지침’을 신문사와 방송사에 내려보냈다. 전두환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재야운동권의 움직임이나 전두환 자신에 대한 비판을 보도하는 것은 ‘절대불가’였다. <말>지에는 1985년 10월부터 1986년 8월까지의 ‘보도지침’ 내용이 상세히 실렸다. 그 사건으로 김주언과 김태홍(언협 사무국장), 신홍범(언협 실행위원)이 구속되어 옥살이를 하고 풀려났다.

박근혜는 2012년 대통령선거 기간이던 10월 30일 한 경제단체의 간담회에서 “방송의 공공성을 실질적으로 이루겠다”면서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을 심도 있게 논의할 공론의 장을 마련한 뒤 그 결과를 받아들여 실천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대통령 재임 40개월이 지나도록 그 공약은 공약(空約)으로 그치고 있다. 박근혜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은커녕 더욱 ‘충성스런 낙하산 사장’을 KBS, MBC에 내려보내는 일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래서 MBC가 주권자들의 불신을 가장 많이 받고 있고 KBS가 그 길을 ‘열심히’ 따라가고 있다.

지난 4월 20일 ‘국경없는 기자회(RSF)’는 ‘2016년 세계 언론자유 지수’를 발표했다. 한국은 130개국 가운데 70위로 역대 최하위를 기록했다. 노무현 정부의 31위, 이명박 정부의 40위권에서 박근혜 취임 이후 50위권, 60위권으로 떨어지더니 70위까지 곤두박질 친 것이다. 지금 박근혜 정권이 자행하고 있는 언론 탄압이나 통제를 보면 70위도 과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6월 30일 기자회견을 가진 8개 단체는 ‘청와대의 세월호 보도 통제 증거에 대한 입장’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요구했다.

·세월호 언론청문회를 열어 보도 통제의 진상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
·다시는 청와대가 공영방송을 좌지우지하고 진실을 은폐하지 못하도록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20대 국회에서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의 세월호 보도 개입과 진실 은폐에 대해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한다.

20대 국회는 민심의 엄정한 심판에 따라 여소야대라는 구조를 부여받았다. 정권교체를 한소리로 외치는 세 야당이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이다. 낙하산 사장들이 버티고 있는 한 내년 대선 기간에 ‘공정방송’을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야권이 ‘관영화한 공영방송’이 제자리를 찾도록 하는 법과 제도를 만드는 데 힘을 모으기를 바란다.

· 이 글은 <미디어오늘>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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