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이 새누리당 대표가 된다면

최근 KBS 전 보도국장의 녹취록 공개로 확인된 ‘청와대 보도지침’의 당사자 이정현이 새누리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것이라고 한다. 그는 7일 새누리당 당사에서 출마를 알리는 기자회견을 할 예정이라고 6일 밝혔다. 이정현은 “호남 출신 새누리당 대표는 그 자체가 국민과 당원에 의한 정치 혁명”이라며 “섬기는 리더십으로 대한민국 정치의 근본을 바꿀 비전을 제시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참으로 황당한 일이다. 지난 6월 30일 전국언론노동조합을 비롯한 언론단체들이 공개한 ‘김시곤 녹취록’ 때문에 많은 언론매체들이 기사와 논설로 이정현에게 호된 비판을 가했고, SNS에서는 “정계를 떠나라”는 소리가 높았다. 그런데 그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집권당의 대표가 되어 ‘정치 혁명’을 일으키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직후인 2014년 4월 하순에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던 이정현은 KBS 보도국장 김시곤에게 두 차례(21일과 30일)나 전화를 걸어 기사를 빼거나 고쳐달라는 압력을 가했다. 그런 사실이 녹취록이라는 명백한 증거를 통해 입증된 직후만 해도 이정현은 국회에서 기자들을 만나 “어쨌든 이것으로 인해 물의가 된 것은 이유를 막론하고 정치인으로서 무조건 죄송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7월 1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야당 의원들의 질문 공세를 받은 청와대 비서실장 이원종이 “잘못된 보도내용을 바꾸는 것은 홍보수석뿐만 아니라 언론을 담당하는 공무원의 본연의 임무”라고 주장한 뒤 이정현의 언행은 표변했다.

그는 같은 날 오후 기자들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정부 정책을 홍보하고 언론사에 협조를 구하고, 국가 위기나 위난 상황 때 언론과의 협조를 통해 그걸 함께 극복하려는 것이 홍보수석의 역할이라고 생각했고 그때 그것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 녹취록을 들어보면 이 말이 거짓임이 금세 드러난다. 이정현은 공영방송인 KBS에 ‘협조’를 구한 것이 아니라 정부에 불리한 기사를 빼거나 유리하게 고치라고 강압한 것이다. 그것도 “(대통령님이) 하필이면 KBS 뉴스를 봤으니 한 번 좀 봐 달라”는 호소조의 압력을 가하면서. 대통령이 임명하는 낙하산 사장의 인사권 앞에서 보잘것없는 약자에 불과한 보도국장이 어떻게 ‘지엄한 분’의 심기를 대변하는 홍보수석의 ‘보도지침’에 저항할 수 있었겠는가?

야당 의원들과 언론전문가들은 녹취록을 통해 드러난 이정현의 ‘보도 외압’은 명백한 범죄행위라고 잘라 말했다. 방송법 제4조 제2항에는 “누구든지 방송 편성에 관하여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조항을 위반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게 되어 있다. 이정현은 ‘무죄추정의 원칙’을 주장할는지 모르나 녹취록을 직접 들었거나 언론을 통해 그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미 그에게 정치적, 윤리적으로 ‘파산 선고’를 내렸을 것이다.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김시곤 녹취록’이 보도되기 사흘 전인 6월 27일, 참사 당시 KBS 보도에 개입해 방송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당시 사장 길환영과 홍보수석 이정현을 고발하기로 의결하고 이튿날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청와대의 하수인 집단’이라는 비판을 자주 듣는 검찰이기는 하지만, 검사가 이정현을 엄정히 수사해 기소하고 재판부가 최종적으로 유죄 판결을 내린다면 그는 의원직을 박탈당함은 물론이고, 혹시 새누리당 대표직을 차지하고 있다 하더라도 당장 물러나야 할 것이다.

이정현은 1988년 소선거구제가 도입된 이래 호남에서 보수여당 소속으로는 처음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재선(비례대표 포함 3선)까지 된 인물이다. 그러니 그가 자신을 ‘정치 혁명’의 주역이라고 자랑하는 것도 일리는 있다. 그런데 정치적 행적이나 언행을 보면 그는 4월 혁명, 6월 항쟁과 더불어 한국현대사의 혁명적 사건인 5월 광주민중항쟁의 이념이나 정신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다시 말하면 민주주의 실현이나 땀 흘려 일하는 민중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만드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뜻이다.

박근혜가 한나라당 대표를 맡고 있던 2004년 어느 날 17대 총선 낙선자들을 위로하는 자리에서 이정현은 “한나라당이 거듭나려면 호남을 버리면 안 된다”며 30여 분이나 열변을 토했다. 박근혜는 “말씀을 참 조리있게 잘하시네요”라고 칭찬한 얼마 뒤 그를 수석부대변인에 임명했다고 한다. 이정현은 그렇게 해서 ‘원조 친박’의 핵심부로 진입하게 되었다. 2012년 대선이 끝난 뒤 박근혜는 그를 청와대 정무수석에 임명했고 그 다음에는 홍보수석으로 자리를 옮기게 했다. 이정현이 ‘박근혜의 입’ 또는 ‘복심(腹心)’으로 불리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이정현의 언행을 보면, 박근혜가 친일파이자 독재자인 박정희의 딸이라는 사실, 대선 공약을 대수롭지 않게 깨뜨리거나 국회의 입법권을 예사로 침해하는 일, 세월호 참사 당시 7시간이나 행적이 묘연한 것, 무능과 독선 때문에 국정을 파탄 상태에 빠트리는 것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다. 그의 가슴에는 오직 ‘지존’에 대한 불타는 충성심만 가득 찬 듯이 보인다.

어쨌든 이정현은 2014년 재보선에서 전남 순천·곡성 지역구에 출마해 예상을 뒤엎고 당선되었다. 지난 4·13 총선에서도 단독선거구가 된 순천에서 어렵지 않게 재선에 성공했다. 마을회관에서 잠을 자면서 노인들을 살갑게 모시고 웬만한 어른들에게는 ‘아재’ ‘형님’ ‘누님’이라는 호칭을 스스럼없이 쓰는 친화력, 그리고 ‘진박 실세’의 힘으로 지역에 거액의 예산을 끌어들이는 그의 정치적 ‘수완’이 재선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현실을 중시하는 정치인들은 이정현의 그런 ‘능력’을 높이 평가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호남을 진정으로 사랑하는지 정치적 목적으로 그 지역에 뿌리를 내리려 하는지는 그가 초선의원이 된 지 반년 뒤인 2015년에 광주에서 한 다음과 같은 말을 통해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광주 시민들이 이정현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나는 쓰레기다.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쓰레기통에서)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가지고 청와대 정무수석을 시키고, 홍보수석을 시키고 이렇게 배려를 했다.

이정현이 새누리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는 것은 기정사실로 보인다. 마땅한 후보가 없는 ‘진박 세력’이 그를 밀어 당선시킬는지, 다른 후보를 찾을는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만약 그가 새누리당 대표가 되어 내년 대통령선거를 총괄하는 자리에 앉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다른 것은 몰라도 청와대 홍보수석 때 ‘당연한 업무’로 내린 ‘보도지침’을 막강한 집권당 대표로서 재현하지는 않을까?

마지막으로 이정현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KBS 보도본부 27기 기자 18명이 지난 5일 발표한 성명의 앞 대목이다.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 딱 그 느낌.
이정현 전 수석의 겁박을 실제로 접했을 때.
그리고 그 화살이 우리의 존재 이유인
KBS 뉴스를 향하고 있음을 새삼 실감했을 때. (···)

일개 임명직 공무원이 KBS 보도국장에게 마음대로 전화를 걸 수 있고,
답변할 틈도 주지 않고 욕설까지 섞어가며 목에 핏대를 세울 수 있는,
그러면서 대통령도 봤다며 간교한 협박을 서슴지 않는···.

·이 글은 <미디어오늘>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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