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이 ‘개·돼지’면 혁명과 항쟁은 누가 했나

교육부 고위관리라는 사람이 역사에 길이 남을 ‘망언’을 남겼다. 주권자인 국민의 99%를 ‘개·돼지’라고 몰아붙인 것이다. 이 황당무계하고 시대착오적인 발언의 주인공은 교육부 정책기획관 나향욱이다. 그는 지난 7일 저녁 서울 종로의 한 식당에서 경향신문 정책사회부장, 교육부 출입기자와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공무원 정책실명제에 관해 대화를 나누다가 ‘신분제’ 이야기를 꺼냈다고 한다. 미디어오늘 9일 자 기사에 간략히 소개되었지만, 경향신문 인터넷판 7월 8일 자 기사에 나오는 대화 내용을 더 자세히 보기로 하자. 나향욱이 말하고 경향신문 기자들이 질문하는 순서로 되어 있다.

“나는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고?(모두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웃음)”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 민중은 개·돼지다. 이런 멘트가 나온 영화가 있었는데···.”
“<내부자들>이다.”
“아, 그래 <내부자들>···. 민중은 개·돼지로 취급하면 된다.”
“그게 무슨 말이냐?(참석자들의 얼굴이 굳어지기 시작)”
“개·돼지로 보고 먹고 살게만 해주면 된다고.”
“지금 말하는 민중이 누구냐?”
“99%지.”
“1% 대 99% 할 때 그 개·돼지?”
“그렇다.”

(···)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는 게 무슨 뜻인가?”
“신분이 정해져 있으면 좋겠다는 거다. 미국을 보면 흑인이나 히스패닉, 이런 애들은 정치니 뭐니 이런 높은 데 올라가려고 하지도 않는다. 대신 상하원···위에 있는 사람들이 걔들까지 먹고 살 수 있게 해주면 되는 거다.”

(···)

“기획관은 구의역에서 컵라면도 못 먹고 죽은 아이가 가슴 아프지도 않은가? 사회가 안 변하면 내 자식도 그렇게 될 수 있는 거다. 그게 내 자식이라고 생각해 봐라.”
“그게 어떻게 내 자식처럼 생각되나? 그게 자기 자식 일처럼 생각이 되나?”
“우리는 내 자식처럼 가슴이 아프다.”
“그렇게 말하는 건 위선이다.”
“지금 말한 게 진짜 본인 소신인가?”
“내 생각이 그렇다는 거다.”

경향신문 기자들은 더이상 대화를 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자리를 떴다고 한다. 나향욱은 8일 저녁 교육부 대변인과 함께 경향신문사 편집국을 찾아가서 “과음과 과로가 겹쳐 본의 아니게 표현이 거칠게 나간 것 같다. 실언을 했고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아무리 술을 많이 마시고 피로한 상태에서 한 말이라 하더라도 그의 ‘민중 개·돼지론’과 ‘신분제 고정화론’은 너무나 조리가 ‘정연’하다.

교육부는 9일 “소속 공무원의 적절치 못한 언행으로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 드린 데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며 나향욱에게 대기발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문제를 이렇게 끝낼 수가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그는 단순히 이번 ‘망언’만 토해낸 공직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행정고시 36회 출신으로 교육부 장관 비서관, 청와대 행정관 등을 거쳐 지난 3월 교육부 정책기획관으로 승진한 그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누리과정, 대학 구조개혁 등 교육부의 주요 정책들을 기획하고 다른 부처와 조율하는 핵심적 보직을 맡고 있었다. ‘민중은 개·돼지’라는 확신을 가진 사람이 국정화 등 교육의 앞날을 좌우할 정책 개발과 집행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다면 그 결과는 너무도 명백할 것이다.

나향욱의 생각처럼 국민의 99%가 ‘개·돼지’라면 5천2백만에 가까운 대한민국 인구 가운데 52만여 명을 뺀 나머지 5천150만 명은 모두가 ‘짐승’이 되어버린다. 나향욱이 보기에 ‘민중’은 누구인가? 인구의 99% 가운데는 노동자, 농민, 지식인, 중소기업인, 문화예술인, 각 부문의 전문직 종사자들이 모두 들어 있다. 넓은 의미의 민중은 유형, 무형의 가치를 생산해내는 사람들의 총체적 명칭이다. 인간생활에 필요한 온갖 재화와 지식, 정보는 민중의 노동을 통해 창출된다. 나향욱의 ‘민중관’에 따르면 그는 ‘개·돼지들’이 만든 쌀과 반찬을 먹고 그들이 생산한 자동차를 타고, 문학과 음악, 미술 등을 향유한 셈이 된다.

민중은 1919년 3·1운동부터 1960년 4월혁명, 1980년 광주민중항쟁, 1987년 6월항쟁까지 겨레의 독립이나 민주화에 앞장선 주역이었다. 박근혜 정권이 강행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작업을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는 사람들이 민중을 역사 발전의 주체로 보지 않고 있음은 비밀이 아니다. 그런 인물들과 나향욱이 ‘밀실’에서 어떤 ‘협업’을 했을지 우려된다. 이 부분은 세 야당이 국회에서 청문회를 열어서라도 반드시 밝혀내야 할 것이다.

지금 한국사회는 극심한 빈부격차, 극소수 기득권층의 권력 독점, 학벌과 족벌에 따른 신분제 고착으로 자유나 평등과는 동떨어진 비민주적 체제로 굳어져 버렸다. 오죽하면 ‘금수저’ ‘흙수저’ ‘헬조선’ 같은 말들이 상용어가 되었을까? 나향욱은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 이상 더 굳힐 신분제는 도대체 무엇일까? 선민의식과 우월감에 젖어 있는 고위 공직자들 가운데 나향욱 같은 인물이 더 없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반역사적 엘리트나 시대착오적 관료는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정의와 진리에 역행하는 지배구조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미디어오늘>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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