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민주, 기회주의를 버려라

지난 7월 8일 국방부 정책실장 류제승과 미8군 사령관 토머스 벤달이 “주한미군에 사드를 배치하기로 한미동맹 차원에서 결정했다”고 발표한 뒤 정당으로서 가장 먼저 반대 의사를 밝힌 쪽은 정의당이었다. 상임대표 심상정과 당 외교본부장 김종대 등은 10일 국회 정론관에서 ‘사드 배치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한·미 양국이 밝힌 사드 배치는 그 중대성에 비춰 볼 때 너무 즉흥적이고 일방적인 결정”이며 “한반도 평화와 경제적 번영을 위협하는 전략적 위험요인”이라는 이유로 반대한다고 선언했다.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 박지원은 12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가 끝난 뒤 “우리 당은 국익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사드 배치를 반대하고, 한·미 양국은 배치 합의를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면서 “정부는 사드 배치에 대해 반드시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최대의 쟁점인 ‘사드 배치’ 논란에 대해 어정쩡하고 기회주의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그렇게 만든 장본인은 비상대책위 위원장 김종인이었다. 그는 한·미 정부 당국이 ‘사드 배치 합의’를 발표한 직후인 7월 11일 한겨레와 인터뷰를 통해 그것을 기정사실화 해버렸다.

미군이 (사드를) 가져다 놓겠다고 결정하고 (우리 정부와) 협의해놓았다. 우리가 찬성이냐 반대냐 따져야 할 차원을 넘어서 버렸다. 수권을 준비하는 정당으로서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아무런 고려 없이 이거냐 저거냐 (양자택일하듯) 얘기해선 안 된다.

김종인은 이 말을 하기에 앞서 이런 단서를 달기는 했다. “정부가 확고한 방향 없이 서투르게 일을 진행하다가 정치권과 국민의 반대에 부딪힌 것이다. 외교·안보·통상에서 아마추어 수준에도 못 미친다.” 박근혜 정권이 ‘확고한 방향’을 가지고 그 일을 추진했다면 무조건 찬성했으리라는 뜻이었을까? 국민의당 전 대표 안철수가 7월 11일 “사드 배치에 관한 국회 비준과 국민투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데 대해 김종인은 15일 그런 제안을 단호하게 거부했다.

사드 배치는 국민투표의 대상이 안 된다. (국회) 비준 절차도 필요 없다. 앞으로 한·미 관계를 위해서도 국민의 사드 배치에 관한 컨센서스(의견 일치)를 위해서도 정부와 국회가 더 밀접한 협의를 거치는 과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7월 12일 사드 배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더민주 의원들이 비공개로 간담회를 열었다. 발언에 나선 24명 가운데 6명이 신중론을 내세운 데 반해 18명은 사드 배치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반대론을 폈다. 당내 모임인 ‘민평련’ 소속 의원 16명이 13일, 의원총회를 열어 당론을 채택하자고 요구한 뒤 청문회 개최와 아울러 국회 차원의 사전 비준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원내대표 우상호는 “대책위원회를 만들었는데 무슨 의원총회냐?”고 반박했다. 그런데 7월 말 현재까지 더민주 대책위가 사드 성주 배치에 대해 어떤 당론을 정했다는 소식은 전혀 들리지 않는다. 수권, 다시 말하면 정권교체를 하겠다는 제1야당이 이 문제에 관한 한 기회주의와 무책임으로 일관하고 있음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7월 13일 국방부 정책실장 류제승은 기자회견을 통해 “한·미 공동실무단이 사드체계의 군사적 효용성을 극대화하고 지역주민의 안전을 보장하면서 건강과 환경에 영향이 없는 최적의 사드 배치 부지로 경북 성주지역을 건의했고 이를 한·미 양국의 국방부 장관이 승인했다”고 발표했다. 바로 같은 날 더민주 전 대표 문재인은 “사드 배치의 재검토와 공론화를 요청합니다”라는 내용의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국회에서 기자들이 “문 전 대표의 입장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김종인은 “(사드 배치를) 재검토하라고 한다고 재검토가 되겠느냐”고 대답했다. 문재인이 “정부가 국회 동의를 받지 않을 경우 SOFA(한미주둔군지위협정)를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데 대해 김종인은 “개인적으로 말하는 것이 구속력이 있어야 말이지, 무슨 의미가 있느냐”라고 일축했다. 그야말로 ‘한미동맹’의 합의라면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대주의적 정치인의 발언으로 들린다.

박근혜 정권은 애초에 경북 칠곡을 후보지로 거론하다가 현지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히자 성주로 급선회했다. 성주군민들 역시 반대할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들의 저항은 처음에는 단순한 집회나 시위의 형태로 나타났지만, 날이 갈수록 새누리당 정권 규탄을 넘어 ‘박근혜 탄핵’으로까지 발전했다. ‘결사적 항전’은 7월 26일에 절정에 이르렀다. 새누리당 원내대표 정진석을 비롯한 당·정의 고위직 인물들이 주민대표들과 간담회를 하려고 성주군청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들은 주민 500여 명은 오전 10시부터 군청 앞에서 ‘새누리당 장례식’을 시작했다. 성주읍 거리 곳곳에는 “차기에는 안 속는다 개누리당 박살내자”, “친환경 농촌에 사드 배치가 웬 말이냐” 등의 현수막이 펼쳐졌다. ‘개누리당’이라고 적힌 영정과 병풍이 놓인 장례식장에서는 검은 상복을 입은 젊은이들이 “근조, 우리의 마음에서 박근혜는 죽었다”, “사드 대안이 있냐고? 박근혜 탄핵이 대안이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열흘이 넘게 집권세력과 극우보수언론이 조장한 ‘외부세력 개입론’에 시달리던 성주군민들의 분노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가까스로 간담회장인 군청으로 들어간 정진석은 “아무리 국가안보가 중요하다고 해도 군민들의 건강과 지역 환경에 명백한 피해와 경제적 부담을 주는 것을 강요할 수는 없다”며 “사드배치문제와 관련해서는 (국회) 청문회 이상이라도 조치가 필요하다면 못할 이유가 없다”고 단언했다. 현재 집권당의 실질적 대표인 정진석이 그렇게 공언했다면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당, 정의당과 함께 박근혜 정권의 ‘사드 배치 일방적 결정’에 대한 청문회를 신속히 열자고 제안했어야 한다. 그러나 더민주 지도부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성주에서 ‘새누리당 장례식’이 벌어진 이튿날인 7월 27일, 사회 원로와 각계 인사 2천6백여 명이 서명한 ‘사드 반대 선언’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회견에서는 ‘사드는 공멸이다. 평화를 선택하라’는 선언문에 이어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에 보내는 공개서한’이 낭독되었다.

제1야당은 ‘차기 집권’도 중요하지만, 집권자의 잘못된 판단으로 국민의 안위와 국가의 백년대계를 그르치는 정책을 비판하고 바로잡을 책무가 더 막중합니다. 더욱이 미국과 중국의 세력다툼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현 시점에 일방을 적으로 삼는 서툰 외교·군사정책은 자칫 국난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

이에 우리는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냉철한 역사의식과 용기 있는 현실 인식으로 박근혜 정부가 사드 배치를 철회하도록 적극 대처해 나가는 것을 당론으로 정할 것을 국민과 함께 요구하고자 합니다.

또한 이와 함께 더불어민주당이 이미 사드 배치 반대를 당론으로 정한 국민의당, 정의당과 함께 야권 연대를 통해 사드 배치에 대한 한·미 간 합의가 반드시 국회의 비준을 받도록 앞장서 관철해낼 것을, 여소야대를 만들어준 민의의 이름으로 간곡히 촉구하는 바입니다.

그동안 비대위 체제로 운영되던 더민주는 공식 대표를 선거로 뽑는 전당대회를 오는 8월 27일에 열기로 했다. 새 대표가 선출되면 김종인은 비대위 위원장직에서 물러나 비례대표 의원으로 남을 것이다. 4명의 후보 가운데 누가 대표로 당선되든 간에 ‘김종인 체제’가 무너뜨린 더민주의 야당성을 되살려 내년 19대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이루는 데 앞장서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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