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배치 반대’에 대한 박근혜의 몰이해

지난 7월 13일 정부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를 경북 성주군에 배치하겠다고 발표한 뒤 한 달이 가까워진다. 그동안 박근혜 정권이 이 중대한 문제를 둘러싸고 벌여온 갈팡질팡은 ‘가관(可觀)’이라는 표현이 사치스럽게 여겨질 지경이다. 발표 당일부터 성주는 물론이고 각계각층에서 반대 여론이 끓어오르자 박근혜는 바로 이튿날인 14일 ‘국론 통합’을 강조하고 나섰다. 청와대에서 자신이 주재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국가 대사를 ‘밀실 결정’ 식으로 밀어붙인 데 대한 해명은 전혀 하지 않은 채 이렇게  주장한 것이다. “사드 배치 과정이 워낙 위중한 국가 안위와 국민 안전이 달린 문제라서 공개적으로 논의를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다양한 선정 지역을 가지고 논의를 광범위하게 하지 못한 것은 위중한 사안이라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국가 안위와 국민 안전이 달린 문제’라면 당연히 국민들을 대표하는 기구인 국회에 알리고 논의 과정을 거쳐야 마땅하다.(이것이 대통령 탄핵 사유가 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국회 대책특별위가 구성되면 야당들이 거기서 검토해야 할 것이다.)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 박근혜에게 86%나 되는 몰표를 주었다는 성주는 매우 보수적인 고장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사드 배치 지역’으로 발표되자마자 그곳에서는 군민들의 정치의식에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하필이면 왜 성주냐”라는 이유로 반대투쟁에 나섰다는 군민들은 ‘사드배치철회 성주투쟁위원회(성주투쟁위)’를 결성한 뒤 거의 날마다 촛불집회를 열었고 지난 7월 26일의 ‘새누리당 장례식’에서는 “박근혜 탄핵”을 외치기도 했다. 그들의 주장은 ‘한반도 평화’로까지 발전했다. 단순히 ‘사드 성주 배치’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어느 곳에라도 사드가 들어서는 것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8월 4일 박근혜가 대구·경북 지역의 새누리당 초·재선 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성주군민의 불안감을 덜기 위해 성주군에서 추천하는 새 지역이 있다면 면밀하게 조사하고, 그 결과를 정확하고 상세하게 알려주겠다”고 말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성주군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성주투쟁위가 바로 이튿날 발표한 성명에 박근혜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사드 배치를 ‘겨레의 존망’이 걸린 최대의 관심사로 보는 시각이 잘 나타나 있다.

우리 성주군민은 오늘로서 23일째 촛불을 밝혔다. 지난 20여일 동안 우리 성주군민의 외침은 오직 사드 배치 철회였다. 인구 4만5천명의 작은 군이라고 사드배치 예정지라는 멍에와 오욕을 뒤집어쓰게 된 우리가 어찌 우리보다 인구가 더 적은 곳에 이 더럽고 위험천만한 괴물을 가지고 가라고 떠넘기겠는가? (···) 지난 20여일 동안 우리는 싸움만 한 게 아니다. 우리의 생존을 넘어 대한민국의 군사주권이 심각하게 침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아이들을 부둥켜안고 울면서, 참외밭을 뒤엎으면서 아프게 깨우쳤다. (···) 우리는 앞으로도 사드의 제3의 장소로의 이전이 아니라 철회를 외칠 것이며 성주가 대한민국이고 대한민국이 성주임을 잊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우리 고향 성주에서 사드를 막아내는 것이 우리에게 부여된 역사적 사명이며 영광스러운 임무임을 잊지 않는다.

박근혜는 그동안 ‘사드 성주 배치’ 일방적 결정을 반대하는 군민들의 소리나 언론에 보도되는 비판적 여론을 ‘괴담’이라고 몰아붙인 바 있다. 성주투쟁위의 성명에 드러나는 정치의식과 국가에 대한 사랑에 비하면 박근혜의 천박한 인식은 ‘몰이해’의 표본이라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원내대표들은 지난 3일 사드 논의와 검찰 개혁을 위한 국회 차원의 대책특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새누리당 원내대표 정진석은 “민생경제를 위협하는 야당의 부당한 요구에 맞설 것”이라고 반발했지만, 현재 한국사회에서 ‘사드 배치 일방적 결정’ 번복과 ‘정권의 하수인 집단’으로 전락했다는 비난을 받는 검찰을 개혁하는 과업 이상의 ‘민생 문제’가 달리 있을까? 세 야당이 사드대책특별위를 구성하게 된다면 다음과 같은 문제들을 치밀하게 논의한 뒤 박근혜에게 책임을 물을지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이다.

1)피해자인 ‘위안부 할머니들’과 사전 협의도 하지 않고 일본 아베 정부를 상대로 ‘위안부 문제 합의’ 발표를 하던 때처럼, 그리고 입주업체 대표들과 대책을 의논하지도 않고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통보했듯이, 국무회의의 요식행위만을 거쳐 ‘사드 배치’를 공표한 목적과 경위는?

2)사드 한 개 포대의 구성 비용은 1조5천억여원이며 요격미사일 1발 가격은 약 110억원으로 알려져 있다. 국방부장관 한민구는 지난 8일 “한·미 상호 방위비분담금 안에서 처리하기 때문에 사드 배치와 관련한 부지를 제공하는 것 외에 한국이 부담하는 비용이 추가로 들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국 정부는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제5조에 관한 특별협정인 SMA에 따라 주한미군 주둔 비용의 일부로 방위비 분담금을 미국 정부에 지원하고 있다. 최근에는 주한미군의 부동산 임대료 면제, 각종 세금 면제, 공과금 혜택 등 간접적 지원금까지 합치면 연간 1조5천억원에 이르는 방위비분담금을 내고 있다고 한다. 미국이 한국에 사드를 배치할 경우 방위비분담금을 늘리지 않고 순전히 자국의 예산으로 천문학적 사드 유지비를 감당하겠다는 뜻인가?

3)박근혜는 사드 배치의 가장 큰 목적으로 ‘북한의 핵 공격 위협’을 들었으나 현실적으로 남한의 안위를 더 위협할 수 있는 것은 북한의 장사정포와 신형방사포, 그리고 단거리 미사일이다. 이런 무기들을 방어할 체계를 확보하기에 앞서 수도권에서 200킬로미터나 떨어진 성주에 사드를 먼저 설치하겠다는 이유는 무엇인가?

4)사드 제작사인 미국의 록히드마틴은 요격실험 11번을 모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지대지 미사일 요격실험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 국방부 미사일운용시험평가국장 마이클 길모어는 지난해 3월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서면진술을 통해 “사드는 신뢰성이 부족하다”고 증언한 바 있다. 한국 정부가 전자파와 소음, 성주의 참외농사에 대한 영향 등을 제대로 평가하지도 않은 채 성급하게 ‘배치’ 결정을 내린 이유는 무엇인가?

5)한국 최대의 교역국인 중국이 ‘사드 배치’의 궁극적 목표는 자기나라와 러시아라고 끊임없이 주장해 왔는데도 무역, 문화 수출, 관광 등에서 치명적 손실을 입을 가능성을 무시하고 그것을 강행한 목적은 무엇인가?

6)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에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대통령 박근혜는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중대한 ‘군사주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했다. 이 한 가지만으로도 그는 탄핵을 받아야 하지 않는가?

‘사드 배치’는 박근혜 정권 대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려는 민중’의 싸움으로 확대되었다. 이 문제에 대해 박근혜가 ‘몰이해’를 바탕으로 한 독선과 아집으로 일관하는 한 해결책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가뜩이나 ‘헬조선’에서 신음하고 있는 이들이 18개월이나 남은 그의 임기 동안 얼마나 더 참담한 일을 겪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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