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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감찰관을 ‘위법’으로 모는 청와대의 ‘위법’

김종철 프로필 사진 김종철 2016년 08월 22일

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위원장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청와대 특별감사관 이석수는 지난 18일 민정수석 우병우를 수사해 달라고 검찰총장에게 의뢰했다. 혐의 내용은 우병우의 장남에 대한 ‘의경 보직 특혜 의혹(직권남용)과 주식회사 정강을 통한 '생활비 떠넘기기 의혹'(횡령)이었다. 그러자 청와대는 바로 이튿날인 19일 홍보수석 김성우를 통해 이석수가 특별감찰관법 22조를 명백히 어긴 ‘현행범’이라고 단정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어떤 내용이 그런 ‘단정’인지는 네 문단으로 이루어진 ‘이석수 특별감찰관 수사 의뢰에 대한 청와대 입장 전문’에 여실히 나타나 있다.



특별감찰관법 22조는 특별감찰관 등과 파견공무원은 감찰 착수 및 종료 사실, 감찰 내용을 공표하거나 누설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을 위반한 사람은 5년 이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 정지에 처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석수 특별감찰관은 언론에 보도된 것이 사실이라면 특정 신문에 감찰 관련 내용을 확인해줬으며 처음부터 감찰 결과와 관계없이 수사 의뢰하겠다고 밝혔고 그대로 실행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것은 명백히 현행법을 위반한 중대 사안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언론의 보도내용처럼 특별감찰관이 감찰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감찰 내용을 특정 언론에 유출하고 특정 언론과 서로 의견을 교환한 것은 특별감찰관의 본분을 저버린 중대 위법행위이고 묵과할 수 없는 사안으로 국기를 흔드는 이런 일이 반복돼서는 안되기 때문에 어떤 감찰 내용이 특정 언론에 왜 어떻게 유출됐는지 밝혀져야 한다.



‘청와대의 입장’은 이석수의 ‘위법행위’에 대해 ‘언론에 보도된 것이 사실이라면’ 또는 ‘언론의 보도내용처럼’이라는 전제를 달고 있다. 청와대가 언론에 보도된 내용의 진위를 가리려고 공식적으로 어떤 일을 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다. 단순한 가정법을 통해 대통령이 임명한 공직자를 ‘현행범’으로 몰아붙이고 있는 것이다.


설령 이석수가 특별감찰관법을 어겼다는 사실이 명백히 입증되었다 하더라도 청와대의 ‘입장’을 발표하기 전에 그를 검찰에 고발하거나 고소하는 것이 ‘합법적’이지 않은가? 그리고 너무나도 상식적인 법리이지만 검찰이 이석수를 기소해서 재판을 받게 해도 사법부의 최종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그는 ‘무죄 추정의 원칙’을 적용받아야 한다.


‘청와대의 입장’은 이석수가 “감찰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감찰 내용을 특정언론에 유출하고 서로 의견을 교환한 것은 특별감찰관의 본분을 저버린 중대 위법행위”라고 잘라 말하면서도 ‘특정 언론’이 어떤 매체인지를 밝히지 않았다. 이석수를 ‘국기를 흔드는 범죄자’로 몰려면 그가 언제 어디서 어떤 언론인에게 ‘감찰 내용’을 무슨 목적으로 알려주었는지를 확실한 증거를 바탕으로 제시해야 한다. 이 문제에 관해 이석수는 지난 17일 오전 ‘보도 입장자료’를 통해 “어떤 경우에도 SNS를 통해 언론과 접촉하거나 기밀을 누설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또 ‘감찰 상황 누설’을 보도한 MBC에 대해 “특별감찰관이 접촉했다는 언론사 기자와 이용했다는 SNS 종류를 밝히라”며 “입수했다는 SNS 대화 자료가 영장 등 적법한 절차에 의해 수집된 것인지에 대해서도 해명하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MBC는 후속보도를 통해 입수한 자료를 공개하며 “모 언론사 기자와 이석수 특별감찰관과의 전화 통화 내용으로 회사에 보고한 것이 SNS를 통해 외부로 유출됐다”고 밝혔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조선일보가 가장 강력한 의혹을 제기했다. 8월 18일 자 1면 기사는 “MBC가 입수 경위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고 전제한 뒤 이렇게 썼다.




야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특별감찰관 흔들기’ 차원에서 국가기관이 불법 도청이나 해킹을 주도한 것으로 드러날 경우 이 사건은 정권의 운명이 걸린 초대형 스캔들로 번질 공산이 크다. 국가기관의 불법 사찰은 용납되지 않는 범죄 행위다. 특히 이번 SNS 유출 건은 현 정권의 최고 실세로 불리는 우 민정수석을 감찰하고 있는 특별감찰관을 정조준하고 있다는 점에서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



경향신문 8월 19일 자 사설의 논조도 비슷하다.




청와대에선 이 특별감찰관과 특정 기자의 대화를 문제 삼고 있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언론 보도로 이미 알려진 것들이다. 기밀 누설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외려 시민의 의심은 다른 데로 향한다. 이 특별감찰관의 대화 내용이 유출된 과정에 국가기관이 개입했는지 여부다. 우 수석이 조기에 사퇴하지 않는다면 이번 사태는 정권 차원의 ‘은폐·축소 스캔들’로 비화할 수도 있다.



특별감찰관 신설은 새누리당 후보 박근혜가 2012년 대선 때 “대통령 친·인척 및 측근의 비리와 부패를 근절하겠다”는 뜻으로 내건 공약이었다. 그는 셀 수도 없이 많은 공약을 공약(空約)으로 만들면서도 보기 드물게 이 약속은 지켰다. 2014년 3월 여야 합의로 특별감찰관법이 국회를 통과한 것이다. 2015년 3월 박근혜는 초대 특별감찰관에 변호사 이석수를 임명했다. “22년 간 검사로 재직하면서 감찰 업무의 전문성과 수사 경험을 두루 갖춘 적임자”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적임자’가 내놓은 대표적 감찰 결과인 ‘우병우 검찰 수사 의뢰’를 청와대가 ‘위법’으로 몰아붙이는 ‘위법’을 저지른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초법적 발상’이라고 비판했지만, 그것은 단순한 ‘발상’이 아니라 명백한 위법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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