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는 정세균 아닌 새누리당이 하고 있다

지난 1일 열린 정기국회에서 국회의장 정세균이 낭독한 ‘개회사’에 대해 새누리당 지도부는 ‘정치적 테러’라고 공격하고 나섰다. 당 대표 이정현은 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한마디로 민생을 볼모 잡고 국회를 인질 잡고 예상되는 피해를 다 감안한 정치 테러”라고 단언한 뒤 “누구보다 국회법을 잘 알고 입법 취지를 잘 아는 분이 즉흥연설이 아니고 원고를 써서 수차례 독해를 거쳤을 게 뻔한데 이렇게 했다는 것은, 준비된 테러를 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국회고 국민이고 무시하고 정치 야욕과 욕심을 채우기 위한 테러”라고 주장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새누리당 간사 염동열은 의원총회에서 “정세균 의장, ‘균’이라고 하는 것은 동식물에 기생해서 부패를 일으키는 단세포 동물이다, 이렇게 규정돼 있다”고 운을 뗀 뒤 “저희가 의장을 뽑을 때는 좋은 발효균이 되라고 뽑았다. 그런데 악성균, 테러균, 그 테러균은 이제 추경파행균으로, 민생파괴균으로, 이제 지카(바이러스)보다 메르스보다 더 크게 국민의 아픔을 지속적으로 공격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 여기서 이번 ‘개회사’ 문제를 발단으로 국회의장 정세균이 테러를 한 것인지, 아니면 새누리당이 테러를 한 것인지를 면밀히 따져보기로 하자. 먼저 정세균의 ‘개회사’부터 살펴보겠다. 그가 개회사에서 특히 강조함으로써 새누리당 의원들이 집단 퇴장을 하고 ‘정기국회 전면 거부’를 선언하게 만들었다고 여러 언론매체들에 보도된 부분들은 아래와 같다.

제 개인의 목소리가 아닌 국민의 목소리라 생각하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최근 우병우 민정수석과 관련한 논란은 국민 여러분께 참으로 부끄럽고 민망한 일입니다. 국민의 공복(公僕)인 고위공직자, 특히 청와대 민정수석이라는 자리는 티끌만한 허물도 태산처럼 관리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청와대 민정수석은 실질적으로 검찰에 대한 영향력을 크게 행사하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그 당사자가, 그 직을 유지한 채, 검찰수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을 국민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의 상황이 매우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북핵 문제로 촉발된 국제사회의 제재와 남북 긴장상태 고조, 그리고 이에 맞선 북한의 지속적인 무력시위로 동북아 전체의 평화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북핵 문제는 동북아를 포함한 국제사회의 문제이지만 무엇보다 우리의 안보와 직결된 우리의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직접 당사국으로서 우리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북핵 문제에 대한 해법도 우리가 먼저 만들어야 하고, 그에 따른 대화나 행동도 우리가 먼저 나서야 합니다. 그래야 파국을 막을 수 있고, 또 북핵 문제를 넘어 한반도 통일 과정에서의 이니셔티브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사드 배치와 관련한 정부의 태도는 우리 주도의 북핵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사드 배치의 불가피성을 떠나서 우리 내부에서의 소통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로 인한 주변국과의 관계 변화 또한 깊이 고려한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런 과정이 생략됨으로 해서 국론은 분열되고, 국민은 혼란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잘못된 선택에 대한 응분의 제재는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남북이 극단으로 치닫는 방식은 곤란합니다.

정세균이 청와대 민정수석 우병우의 사퇴를 우회적으로 ‘권고’하는 대목을 듣고 새누리당 의석에서 항의하는 고함이 터졌다고 한다. 그리고 ‘사드 배치’에 관한 비판이 끝나기도 전에 원내대표 정진석을 포함한 새누리당 의원들은 일제히 퇴장해버렸다. 사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새누리당 의원 수십여 명은 그날 밤 11시쯤 국회의장실로 찾아가서 고성을 질렀다. 친박계 의원 이장우는 정세균을 향해 “진보좌파를 대표하는 의장이냐”고 소리쳤다. 몇 명은 집기를 집어던졌으며, 의원 한선교는 국회의장 경호원의 멱살을 잡기도 했다. 정세균이 2일 오전에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하자 새누리당 의원들은 2일 오전 1시쯤 의장실을 떠났다. 더불어민주당은 새누리당 의원들이 국회의장을 실질적으로 ‘감금’했다고 비판했다.

먼저, 온갖 의혹에 휩싸인 우병우가 사퇴하고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정세균이 가장 먼저 한 것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은 물론이고 대다수 언론매체들, 특히 조선·중앙·동아일보도 논설과 기사로 강하게 요구한 것이다. 그러니 정세균이 개회사를 통해 그런 주장을 한 일을 ‘정치적 테러’라고 몰아붙일 수는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새누리당 지도부와 의원들이 가장 흥분한 것은 정부가 국민적 합의도 없이 사드 배치를 결정했다는 비판이었다. 정세균은 ‘동북아 전체의 평화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북핵 문제는 동북아를 포함한 국제사회의 문제이지만 무엇보다 우리의 안보와 직결된 우리의 문제’라는 전제 아래 “북핵 문제에 대한 해법도 우리가 먼저 만들어야 하고, 그에 따른 대화나 행동도 우리가 먼저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말이 ‘정치적 테러’가 될 수 있는가? 아니면 “사드 배치와 관련한 정부의 태도는 우리 주도의 북핵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고, “사드 배치의 불가피성을 떠나서 우리 내부에서의 소통이 전혀 없었”다는 말이 ‘정치적 테러’인가? 정세균은 입법부의 대표로서, 박근혜 정권이 사드 배치를 독단적으로 결정한 것을 비판하면서 ‘국론이 분열’되고 ‘국민이 혼란스러워하는’ 현재 상황을 걱정했을 뿐이다.

새누리당 지도부와 일부 의원들은 정세균이 ‘개회사’에서 ‘정치적 중립 의무’를 어기고 야당의 편에 선 것은 중대한 문제라고 공격했다.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자유겠지만, 국회의장의 의무에 관해서는 국회법에 명시된 것이 없다. 제10조(의장의 직무)는 “의장은 국회를 대표하고 의사를 정리하며, 질서를 유지하고 사무를 감독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새누리당이 ‘국회의장의 정치적 중립 의무’는 불문율이라고 주장한다면 헌법 제42조 2항(“국회의원은 국가 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을 읽어보라고 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세균은 더불어민주당 출신으로서 국회에서 합법적 선거를 통해 뽑힌 국회의장이다. 이와 동시에 그는 국민의 대표들이 모인 국회의 대표이고 국민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데 공적으로 ‘국가 서열 2위’인 국회의장이 의사당이라는 공석에서 읽은 개회사를 ‘정치적 테러’로 몰아붙이는가 하면 인물 자체를 “동식물에 기생해서 부패를 일으키는 단세포 동물”이라고 비하하는 새누리당의 행태야말로 ‘정치적 테러’이자 ‘보컬(말로 하는) 테러’의 극치를 보여준다. 또한 그가 어떤 ‘정치적 야욕’ 때문에 그런 개회사를 낭독했다는 주장을 하려면 명백한 근거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서울시장 박원순은 지난 1일 밤 SNS 생방송 ‘원순씨 X 파일’에서 새누리당이 국회의장 사퇴 결의안을 낸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누가 볼까 부끄럽다. 깽판.”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새누리당의 행동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국기문란.”

박정희와 김종필이 만든 민주공화당, 전두환과 노태우의 민주자유당, 그 뒤의 신한국당과 한나라당, 그리고 지금의 새누리당으로 이어지는 수구보수정치집단은 반세기 가까이 한국의 헌정 질서를 송두리째 무너뜨리거나 위기에 빠뜨리는 행태를 계속해 왔다. 그들은 이번에 국회의장의 공개적 발언을 ‘정치적 테러’라고 공격함으로써 그런 ‘정치적 유전자’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입증한 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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