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기를 두 번 죽이려는가

지난해 11월 14일 저녁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경찰이 조준 발사한 물대포를 맞고 317일 동안이나 사경을 헤매던 농민 백남기가 25일 오후 2시 14분에 끝내 숨을 거두었다. 아내와 두 딸, 수십 년 동안 민주화운동과 농민운동을 함께 해오던 동지들, 그리고 서울대병원을 찾아가서 그의 쾌유를 빌던 시민들의 애통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으리라.

박근혜 정권의 경찰은 서울대병원 의료진이 지난 24일 오후, 백남기의 상태가 주말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가족에게 알리자마자 그날 밤 9시쯤 병원 인근에 재빨리 병력을 투입했다. 성균관대 앞, 창경궁 앞, 이화동네거리 등지에 경찰버스 20여 대가 배치됐고,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에는 사복경찰 100여 명이 도열했다. 병원 안에도 사복경찰 10여 명이 들어갔다. 백남기가 사망할 경우 검찰이 시신을 부검할 것이라는 정보가 전해지자 ‘생명과 평화의 일꾼 백남기 농민의 쾌유와 국가폭력 규탄 범국민대책위원회’(백남기 대책위)는 25일 오전 11시 서울대병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에 대해 “부검 시도를 중단하고 (백남기 농민 물대포 사살) 책임자를 기소하라”고 요구했다. 백남기 대책위 사람들과 시민, 청년학생 2백여 명은 경찰의 ‘시신 탈취’에 대비해 연좌농성을 벌였다.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감도는 가운데 오후 3시 30분경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주민과 표창원이 중환자실에 도착하자 농성을 하던 100여 명이 두 의원과 함께 고인의 주검을 영안실까지 운반할 수 있었다.

유족은 장례식장 3층에 빈소를 마련하고 오후 6시 조금 지나 문상객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경찰은 엉뚱하게도 서울대병원과 양천구 서울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45개 부대 3600여명의 병력을 배치했다. 고인의 주검을 탈취해서 강제 부검을 하겠다는 뜻일까?

경찰이 물대포로 백남기를 조준 사격한 것이 명백한 ‘살인미수’였다는 사실은 사건 직후 살수차에 장착된 CCTV 영상으로 확인된 바 있다. 그러나 경찰에 대한 인사권과 감독권을 장악하고 있는 대통령 박근혜는 공권력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 단 한마디 사과도 한 적이 없다. 백남기의 가족과 대책위는 경찰청장 강신명을 ‘살인미수’ 혐의로 고발했지만, 검찰은 전혀 수사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 9월 12일 국회에서 열린 ‘백남기 청문회’에서 가족들에게 사과하기는커녕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다쳤거나 사망했다고 해서 무조건 사과하는 것은 아니다. 결과만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백남기가 물대포에 직격을 당한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대회’ 진압 책임자였던 경찰청 경비국장 이중구는 그 뒤 강원경찰청장으로 ‘영전’했다. ‘살인미수’에 대해 1차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사람에게 오히려 ‘포상’ 성격의 ‘영전’을 안겨준 셈이다. 박근혜 정권이 야당의 반대를 물리면서, 갖은 부정과 부패를 저지른 인물들을 총리나 장관에 임명하는 ‘관행’의 축소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4일 밤 서울대병원 연좌농성에 합류한 21세 여성 김혜빈이 인터넷매체 오마이뉴스에 올린 글은 읽는 이들이 분노와 울분과 슬픔을 억누를 수 없게 할 것이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SNS에 올라온 글들이 사실이라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병원 안까지 들어온 사복경찰들, 방패를 들고 서 있는 경찰들의 모습을 보며 내가 어떤 나라에 살고 있는 것인지 화도 치밀어 오르고, 선생님이 꿈꾸었던 세상은 이게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 울컥했습니다.

병원 입구에 함께한 시민들과 밤을 지새웠습니다. 돗자리 하나 깔고 쌀쌀한 가을밤을 보냈습니다. 무척 더웠던 여름날들이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병원 앞은 너무 추워 옆에 있는 친구와 꼭 붙어 간신히 밤을 보냈습니다. 새벽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어르신을 지켜야 하기에 눈 뜬 밤을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 견뎌냈습니다.

그냥 가만히 긴 밤을 보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가방에 있는 종이를 꺼내 가족들이 온전히 슬퍼할 시간조차 주지 않으려는 정부에 대한 참담한 마음을 담아 작은 대자보를 써서 곳곳에 붙였습니다.

김혜빈이 오마이뉴스에 사진으로 실은 ‘대자보’ 내용들은 이렇다. “너희가 기다리는 건 백남기 농민의 시신이겠지만, 우리는 아직도 백남기 농민의 웃는 모습을 기다린다.” “슬퍼할 시간 좀 주세요, 제발.” “우리 아버지와 같은 분이고, 내겐 소중한 농민입니다. 함부로 손을 대지 말아주세요!”

박근혜 정권은 백남기를 두 번이나 죽이려 들었다. 그러나 칠순 날에 숨을 거둔 백남기는 이제 ‘열사’가 되었다. 1980년 5월 ‘서울의 봄’에 중앙대 총학생회 부회장으로 서울역 앞 시위를 주도했던 청년, 그 이후 35년 가까이 민주화운동과 ‘우리 밀 살리기’에 전념했던 지도자, 아내와 두 딸을 끔찍이 사랑하던 남편이자 아버지인 그의 육신은 곧 치러질 ‘백남기 열사 민주사회장’(가칭)이 끝나면 가족과 동지들의 곁을 떠날 것이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그의 영혼이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 <미디어오늘>과 <뉴스타파>에 보낸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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