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의 ‘박근혜 탄핵론’, 야당이 응답하라

서울시장 박원순이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대통령 박근혜를 향해 직설을 토했다. 청와대가 문화예술계 정치검열을 위한 ‘블랙리스트’(9473명)를 문화체육관광부에 내려보냈다는 언론의 보도에 관해 쓴 글의 핵심적 내용은 이렇다.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습니다. 이런 야만적 불법행위와 권력 남용을 자행하는 현 정부와 대통령은 탄핵 대상이 아닌가요? 이런 정도의 사건이 서구에서 일어났다면 어떤 대통령도, 어떤 내각도 사임할 일이 아닙니까?

2014년 지방선거 때 저를 지지 선언한 1600여명 명단도 주요한 대상으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 닉슨의 워터게이트를 생각해 보십시오. 정상적 민주주의 하에서 어떤 공직 후보자를 지지했다고 블랙리스트에 오르고, 온갖 불이익을 받았다는 사례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권력의 막장 드라마이고 사유화의 극치입니다. 당장 국회는 특별조사위원회를 꾸리고 그 조사 결과에 따라 탄핵이든, 사임 요구든 그 무엇이든 합당한 조치를 요구하기 바랍니다. 총선 민의가 무엇을 바라는지 아직 잊지 않았다면 야당은 야당다운 역할을 제대로 해 주시기 바랍니다.

새누리당 대변인 김성원은 박원순의 ‘박근혜 탄핵론’에 대해 “대한민국 서울시장의 위치와 직분을 넘고 넘어도 한참 넘는 ‘막장 정치테러’다. 한마디로 ‘막장 시장’의 단면을 보는 것 같다”고 비난했다. 새누리당의 반응은 그렇다 치고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은 박원순의 주장에 어떻게 대처할까? 박원순은 더불어민주당 당원으로서 서울시장이 되었으므로, 우선 더민주는 그가 공개적으로 제기한 탄핵안에 대해 의원총회를 열어 진지하게 논의를 해야 할 것이다.

박원순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라는 단 한 건을 가지고 박근혜를 탄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난 3년 7개월 남짓 동안 박근혜가 대통령으로서 저지른 ‘사건들’ 가운데는 탄핵소추의 사유가 되어야 마땅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헌법의 관련 조항(제65조 1항)부터 먼저 보기로 하자.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 행정각부의 장, 헌법재판소 재판관, 법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감사원장, 감사위원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 박근혜가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했다고 판단되는 대표적 사례들을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동안 ‘행방불명’ 됨으로써 신속한 재난 구조 활동에 지장을 주었고, 국가원수로서 어떻게 공직을 수행했는지를 본인이 아직까지도 밝히지 않고 있는 것.
· 헌법 제23조 1항에는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는데, 국회에서 논의나 의결을 거치지도 않은 채 자의적으로 개성공단을 폐쇄함으로써 입주한 기업체들에게 막대한 재산 손실을 끼치고 남북관계를 극도로 악화시킨 것.
· 일제가 저지른 만행의 피해자들인 ‘위안부 할머니들’의 동의나 국회 논의 과정도 없이 일방적으로 일본 아베 정권과 ‘10억 엔으로 재단을 설립’한다는 조건에 합의함으로써 피해 당사자들에게 정신적 상처를 주고 일본의 사죄를 항구적으로 받을 수 없게 만든 일.
· 2014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대회’ 현장에서 차 벽에 건 밧줄을 끌어당기고 있던 농민 백남기에게 경찰이 물대포를 여러 번이나 직사해 결국 사망하게 했는데도 공권력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한마디 사과도 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빚어진 ‘살인행위’ 책임자를 오히려 영전시킨 일.
· 청와대 민정수석 우병우와 가족이 관련된 위법행위 의혹들에 관해 본인이 설득력 있게 부정하지 못하고 있는데도 그를 비호하면서 정부의 주요 기관들에 대한 인사 검증과 사정을 계속 맡기고 있는 것.
· 북한의 미사일을 정확히 조준해서 격추할 수 있다는 성능이 아직 검증되지도 않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국회와 논의도 하지 않은 채 경북 성주에 배치하기로 결정한 뒤 다시 같은 지역의 롯데골프장으로 장소를 옮기기로 함으로써 현지 주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잠재적으로’ 위협하고 있는 것.
·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안종범이 전경련 회원인 재벌들에게 강압적 방법으로 거액을 ‘출연’하게 해서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을 주도했다는 증거들이 드러나고 있는데도 박근혜 자신이 ‘근거 없는 소문’이라고 몰아붙임으로써 자신이 져야 할 최소한의 책임마저 회피하고 있는 것. 특히 이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고 있는 최순실이 청와대 뒷문으로 공공연하게 드나들고 있다는 사실이 보도된 뒤에도 박근혜 자신이 정면으로 부인하지 않은 일.(노무현 정부 때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야당이 당연히 탄핵소추를 했을 것임)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박원순의 ‘박근혜 탄핵론’ 제기를 계기로 삼아 위에 열거한 사건들이 ‘탄핵 사유’가 될 수 있는지부터 검토한 뒤 탄핵 소추가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오면 국민의당과 정의당에 ‘공조’를 요청해야 할 것이다. 물론 더민주와 국민의당에는 2004년 3월 대통령 노무현 탄핵소추에 앞장섰다가 극심한 정치적 상처를 입은 의원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그것이 트라우마가 되어 ‘탄핵’ 소리만 들어도 움츠러들는지 모른다. 그러나 옳고 바른 정치인이 되려면 이제부터라도 변화하는 세상에 슬기롭게 대처하면서 다수 주권자들의 뜻을 존중해야 하지 않겠는가?

어떤 야당 의원들은 이렇게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헌법 제65조 1항에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의 발의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는데 현재 야 3당의 의석은 과반수가 넘지만 3분의 2에는 한참 모자라지 않는가?” ‘혹시’라는 단서를 달지만, 새누리당의 ‘반박’에서 35여 명이 이탈한다면 탄핵소추가 가능해질 수도 있다.

설령 박근혜에 대한 탄핵소추가 불발로 끝나더라도 국회에서 이 문제에 관해 깊이 있게 논의를 하고 홍보한다면 주권자들은 박근혜가 임기를 마저 채우는 것이 국가와 민족공동체에 어떤 해악을 끼치게 될는지를 명확히 깨닫게 될 것이다. 그것이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이 주권자들에게 봉사하는 길 아닐까?

·이 글은 <미디어오늘>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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