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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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MBC 뉴스의 수상한 변신

김종철 프로필 사진 김종철 2016년 10월 25일

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위원장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최순실 관련 보도가 갑자기 쏟아진 까닭은?


‘최순실 게이트’가 처음으로 터진 날은 지난 9월 20일이었다. 한겨레가 1면 머리에 크게 올린 기사(‘대기업 돈 288억 검은 K스포츠재단 / 이사장은 최순실 단골 마사지 센터장’)가 기폭제였다. 그날 이래 한 달이 넘도록 최순실 게이트는 극우보수언론 말고 거의 모든 언론매체가 가장 집중적으로 보도하는 소재가 되었다. 그러나 ‘공영방송’이라는 KBS와 MBC는 한국사회를 뒤흔드는 이 사건에 대해 ‘까막눈’이었다. 10월 19일까지 KBS의 뉴스9은 ‘최순실’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뉴스를 6건 보도했는데 모두가 단신(短信)이었다. MBC 뉴스데스크는 같은 기간에 최순실 관련 뉴스를 지상파방송사 가운데 가장 적은 5건을 내보냈을 뿐이다.


그런데 10월 20일부터 KBS와 MBC 뉴스에 수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금기처럼 되어 있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보도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KBS는 그날 아침 9시 뉴스에 ‘최경희 이대 총장 사임···의혹은 부인’이라는 기사를 비교적 길게 내보냈다. MBC는 같은 시간대에 “청(靑), ‘최순실, 대통령 연설문 수정 보도 말도 안돼’”라는 기사를 올렸다.


그런 기사들이 나간 지 몇 시간 뒤에 대통령 박근혜는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열고 미르·K스포츠 재단을 ‘두 재단’이라고 지칭하며 최순실의 이름은 거론하지도 않은 채 “이처럼 의미있는 사업에 대해 의혹이 확산되고 도를 지나치게 인신 공격성 논란이 이어진다면 문화 융성을 위한 기업들의 순수한 참여 의지에 찬물을 끼얹어 기업들도 더 이상 투자를 하지 않을 것이고 한류문화 확산과 기업의 해외 진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더 이상의 의혹이 생기는 일이 없도록 감독기관이 감사를 철저히 하고 모든 것이 투명하게 운영되도록 지도·감독해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여러 언론매체와 야당은 박근혜가 ‘두 재단’의 위법행위와 사유화를 모른 체하고 수사기관에 최순실 게이트를 속히 정리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근혜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그런 발언을 하기 몇 시간 전에 KBS에서는 근래 보기 드문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미디어오늘이 10월 21일자 인터넷판에 ‘단독’으로 내보낸 기사에 자세한 내용이 실려 있음). KBS 편집회의는 날마다 오전 9시에 보도국장을 중심으로 취재·스포츠·영상·편집 등 보도국 부장단이 모여 그날의 뉴스 9 아이템을 선별하는데 20일 회의에서는 최순실 게이트에 관해 “적극적으로 취재해보자”, “특종을 했으면 좋겠다”, “독일 특파원 프랑크푸르트에 갔느냐”는 등 종전의 회의들에서는 들을 수 없던 발언이 쏟아져 나왔다는 것이다. 그 회의를 계기로 KBS의 뉴스 9 등에 보도된 최순실 관련 기사들을 보면 ‘적극적 취재’나 ‘특종’과는 거리가 멀다. 독일 특파원이 프랑크푸르트에 간 것이 그나마 ‘취재 노력’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이다.


KBS가 10월 20일부터 22일까지 뉴스를 통해 보도한 최순실 게이트 관련 기사 32건을 분석해 보면 박근혜나 청와대 공직자들이 최순실과 어떻게 엮여져 있는지에 관한 내용은 전혀 없다. 한겨레와 경향이 주도적으로 파헤친 의혹들이나 위법행위들을 뒤늦게나마 소개한 뒤 최순실 게이트에 접근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서 KBS는 청와대나 새누리당의 주장과 해명은 비판 없이 그대로 전하는 ‘확성기’ 구실을 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뉴스 제목들이 그 실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 “청, ‘최순실이 대통령 연설문 고친다는 게 말이 되냐’”
· “이정현, ‘최순실 의혹’ 수사 문제 시 처벌하면 되는 일”
· “박 대통령 ‘재단 관련 불법행위 누구든 엄정 처벌’”
· “청 이원종 실장 ‘최순실 의혹’ 반박”
· “이정현 ‘각종 의혹 검찰 조사 통해 빨리 판결 나와야’”



최순실과 딸 정유라에 관한 기사 32건 가운데 ‘수사’ ‘조사’ ‘소환’ ‘진상 규명’ ‘감사’ ‘처벌’ 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는 기사 제목은 무려 17건이나 된다. 이런 기사들을 빼면 KBS 기자가 현장에 가서 직접 취재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은 다음 두 가지뿐이다.



· ‘최순실, 호텔·주택 2채 소유···부동산 매입 열중’
· “‘유럽서 잠적’ 최순실 모녀는 어디에?”



같은 기간에 MBC 뉴스데스크 등에 보도된 최순실 게이트 관련 기사 37건의 내용도 KBS와 거의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다만 “문 ‘최순실 게이트에 분노, 색깔론·종북놀음 빠져’”, “추미애 ‘대통령 실망···국민 의혹 증폭시킬 뿐’”, “추미애 ‘여권 모르쇠 일관하면서 문재인 타박’”, “민주당, ‘최순실 의혹’ 수사 촉구 대검 항의방문”처럼 야당의 주장이나 움직임을 더러 보도한 것이 KBS와 약간 다른 점이었다. MBC가 최순실 모녀가 거주하고 있다고 알려진 프랑크푸르트에 특파원을 보냈다는 사실은 뉴스에 나오지 않았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최순실 게이트를 묵살하다시피 해오던 KBS와 MBC가 어느 날 갑자기 수상하게 변신해서 관련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한 의도와 목적이 무엇인지는 명확히 드러났다. 두 방송사 모두 최순실이 차은택 등 측근과 함께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과 운영 과정에서 저지른 비리와 모든 의혹을 ‘그들만의 책임’으로 돌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청와대 낙하산사장들이 지배하는 KBS와 MBC가 박근혜를 ‘성역’ 또는 ‘지존’으로 섬기면서 ‘최순실 일파’를 꼬리처럼 잘라내려는 ‘작전’에 앞장섰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두 방송사의 애꿎은 사원들 말고 경영진은 한겨레 10월 20일자 사설(“‘최순실 비리’는 박 대통령의 공동 책임”)을 보고 어떤 반론을 제기할 수 있을까?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가 40여년 동안 끈끈하게 이어져온 언니·동생 사이라는 것은 천하가 아는 사실이다. 친동생도 범접하기 어려운 청와대 문턱을 내 집처럼 드나들었다는 사람이 최씨다. 그 최씨의 비리 혐의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청와대가 아무리 부정해도 이 사건이 전형적인 ‘대통령 측근 비리’임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


(···) 박 대통령이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평생 동생처럼 여겨온 사람이 물의를 일으킨 것은 나의 허물이며 바르게 처신하도록 가르치지 못한 것은 제 불찰” 정도의 대국민 사과를 해야 옳다.


사실 박 대통령은 이런 사과를 할 자격조차 없는지 모른다. 바르게 처신하도록 가르치기는커녕 최씨를 방약무인하게 날뛰게 한 사람이 바로 박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KBS·MBC 뉴스의 ‘수상한 변신’은 권력에 종속된 언론사 경영진과 간부들이 공영방송을 어떻게 ‘사영화’ 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입증했다. 많은 언론단체들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이 얼마나 시급한 과제인지를 다시 한 번 보여준 것이다. 10월 24일 오후 6시,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와 한국기자협회, 한국피디연합회가 공동주관하는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 42주년 기념식’에서는 2천명을 훨씬 넘는 사람들이 참여한 ‘자유언론실천 시민선언’이 발표된다고 한다. 서명자들에게 미리 전달된 문안에는 이런 구절이 들어 있다. “‘언론의 민주화 없이 권력의 민주화 없다’라는 명제는 주권자인 시민들이 뜻있는 언론인들과 함께 논의하고 실천해야 할 가장 중요한 시대적 사명이 되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주권자들이 권력의 민주화를 위해 언론의 민주화에 앞장서야 할 때이다.


·이 글은 <미디어오늘>에도 함께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