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가 만들어낸 세계 최고 평화시위대

-화합과 질서, 패러디와 신명이 넘실거리는 ‘문화혁명의 바다’ 

박근혜 퇴진 비상국민행동’이 주최하는 다섯 번째 주말 촛불집회가 열리던 지난 26일 오후 1시께부터 서울 일원에서는 진눈깨비가 이슬비처럼 내리기 시작했다. 1mm쯤 내린 뒤 저녁에 다시 가볍게 비가 올 것이라던 기상예보와는 달리 진눈깨비는 옷을 촉촉이 적실 정도로 계속 내렸다. 오후 2시 탑골공원 정문 앞에서 민주주의국민행동 등 시민단체들이 주관한 ‘박근혜 퇴진 시민결의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모두 불안한 표정이었다. ‘오늘 전국에서 2백만명이 모일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는데 이러다가는 50만 명도 안 될 것 같다’는 불안감이 그들의 표정에서 진하게 배어났다. 그러나 저녁 5시 조금 지나 광화문광장에서 청와대를 향한 대행진이 시작되기 직전부터 진눈깨비가 자취를 감추더니 그야말로 기적처럼 날씨가 포근해졌다. 주최 측은 밤 8시께 서울에서 1백만 명 이상이 집회에 참여했다고 발표했다. 9시 넘어서는 촛불을 든 인파가 150만으로 불어났고, 전국적으로는 190만이 되었다. 촛불집회 사회자가 그런 집계 내용을 발표하자 “와” 하는 함성이 우레처럼 울려 펴졌다. 어떤 사람들은 “오늘 날씨가 사나워 시민들이 적게 모일 것 같아 일부러 오후 일찍 집을 나섰다”고 말했다.

지난 토요일의 촛불집회는 대한민국 헌정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인 기록을 세웠다. 저녁 5시에 청와대 200m 앞 청운동 주민센터를 목표로 ‘학익진(鶴翼陣)’을 펼치고 행진한 인파는 무려 35만이었다. 군중은 하나같이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법과 질서를 어겨 경찰에 연행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박근혜가 ‘세계 최고의 평화시위대’를 만들어낸 셈이었다. 외신들은 그 놀라운 현상에 대해 극도의 찬사를 보냈다. AFP통신은 한국에서 190만이 벌인 촛불시위를 ‘피플 파워’라고 표현했다. 1986년 필리핀 민중이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를 몰아낸 민주혁명에 비유한 것이다. 당시 수도 마닐라 외곽의 고속도로를 가득 채운 시위군중의 수는 50만이었다.

광화문 일대는 150만 인파가 뿜어내는 체온 때문에 기온이 2~3도는 오른 것 같았다.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어린이부터 70세가 넘은 노인까지 모두가 잔치마당에 나온 듯했다. “박근혜 퇴진”, “박근혜를 구속하라”를 목이 아프도록 외칠 때는 모두 분노를 억누르지 못했지만 자유롭게 행진을 하거나 일행이 모여서 즉흥적으로 문화행사를 펼칠 때는 넘치는 신명을 주체하지 못했다. 광화문광장을 중심으로 종로, 서울시청 앞, 을지로, 안국동, 서소문 등지에서는 패러디와 풍자의 ‘경연’이 벌어졌다. 내가 직접 목격한 시위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한 농민이 소형 트럭에 싣고 오후 2시 반쯤 탑골공원 정문 앞에 풀어놓은 소 두 마리였다. 한 마리의 몸뚱이에는 “하야하그라 박근혜”라고 쓴 광목천이 둘러져 있었다. 다른 한 마리는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 됐나 / 내가 웃겠다”라는 펼침막을 걸치고 있었다. 박근혜가 얼마 전 대국민담화에서 한 말은 “소도 웃을 일”이라는 뜻이다.

그날의 잔치마당에서 가장 섬뜩한 장면은 파란 수의를 입고 수갑을 찬 채 오랏줄에 묶인 ‘박근혜 등신대(等身大) 허수아비’였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최황이 경찰 차벽이 설치된 종로구 통인동 새마을금고  네거리에서 ‘죄수 박근혜’를 머리 위로 번쩍 치켜들자 군중이 몰려들어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박근혜 체포단’이라고 밝힌 서울대 학생 3명은 박근혜 가면을 쓰고 오랏줄로 목을 묶은 채 철창 모양의 종이로 얼굴을 가리고 거리를 활보했다. 광화문광장 한가운데에는 박근혜와 전 청와대 민정수석 우병우의 사진을 붙인 펀치게임기가 설치되어 사람들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청와대 들머리 차벽에서 경찰과 맞선 시민들은 의경의 방패를 빼앗는 일 같은 것은 전혀 하지 않고 오히려 ‘고생한다’며 손을 잡거나 핫팩을 건네주기도 했다. 시위대는 지난 19일 촛불집회 때보다 더 많은 스티커로 차벽을 장식했다. 미국인들이 그런 장면을 보았다면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미국에서는 경찰에 쫓기는 흑인이 이상한 움직임을 조금만 보여도 백인 경관이 총으로 사살하는 사건이 자주 터지는데 도대체 한국의 시민과 경찰은 어떻게 저리 태평할 수 있는가?’ 집회가 끝난 뒤 자원봉사자들이 쓰레기를 비닐봉지에 담아 수거함으로써 광장과 거리가 말끔해지는 것도 외국인들에게는 신기한 광경이었을 것이다.

서울시내 주요 도로들을 누빈 풍물패와 춤꾼들, 그리고 아마추어 가객들은 평화대행진을 하는 시민들이 어깨를 들썩이고 노래를 따라 부르게 만들었다. ‘박근혜 퇴진’을 당연한 일로 여기고 전야제를 펼치는 듯이 보였다. 나는 태평로의 한 고층 빌딩 꼭대기 층에 올라가 광화문 일대를 내려다보면서 1963년 8월 28일 미국 흑인 민권운동 지도자 마틴 루터 킹(목사)이 수도 워싱턴에서 주도한 ‘평화대행진’을 연상했다. 흑인의 민권 개선에 크게 이바지한 그 행진에 참여한 사람은 20만 명이었다. 거기 비하면 2016년 11월 26일 광화문 일대에 모인 150만 명이 얼마나  대단한 수 자인지를 여실히 알 수 있다.

26일의 촛불집회를 앞두고 SNS에는 미국 덴버대학교 교수 에리카 체노웨스의 ‘학설’이 널리 퍼졌다. 그는 3년 전에 한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1900년부터 2006년까지 전 세계에서 일어난 반정부시위들을 분석한 결과 한 국가 인구의 3.5%가 꾸준히 평화시위를 이어가면 정권이 유지되지 못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반정부시위가 폭력화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50%쯤 된다.” 대한민국 인구는 5100만이므로 3.5%는 180만 명이다. 지난 토요일 전국에서 촛불집회에 참여한 사람은 190만 명이니 체노웨스의 ‘3.5%’를 확실히 넘어선 셈이다.

최순실·안종범·정호성에 대한 검찰의 공소장에는 박근혜가 국정농단의 ‘주범’이라고 나와 있다. 27일 기소된 차은택 공소장에도 그렇게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도 박근혜는 검찰의 조사를 거부하고 있다. 박근혜에게 이렇게 권한다. “누구인지 몰라보게 가면을 쓰고 수수한 옷을 입은 채 촛불집회 현장에 나와 ‘박근혜 퇴진’ 함성을 들어보라. 촛불이 횃불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임을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지금 한국사회에서는 거대한 평화혁명의 열풍이 불고 있다. 그것은 정치·경제·교육의 근본적 혁신을 요구하는 주권자들의 투쟁인 동시에 패러디와 신명이 넘실거리는 ‘문화혁명’이기도 하다. 박근혜는 어느 부문에나 ‘창조’라는 수식어를 붙이며 문화까지 파괴하고 말았지만 이번의 문화혁명은 한류의 진면목을 세계에 과시하고 있다.

2016년 가을의 평화혁명은 ‘헬조선’에서 신음하는 청소년들에게 ‘낙원조선’의 빛을 던져주고 있다. 20년이 넘도록 무력해져 있던 대학의 학생운동이 힘차게 부활하는가 하면 중고등학생들까지도 놀라운 정치적 각성을 하면서 조국의 미래를 밝게 하고 있다. 이제 많은 청소년들은 더 이상 헬조선의 늪에서 헤매기를 거부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역설적으로, 박근혜는 평화혁명과 문화혁명을 유발한 ‘공로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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