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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2016년 12월 12일
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위원장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지난 9일 국회가 박근혜 탄핵소추안을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시키자 국무총리 황교안이 대통령권한대행을 맡았다. 그는 그날 오후 8시 정부서울청사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국가원수이자 행정부 수장인 박근혜가 탄핵소추를 당하게 된 데 대해 황교안은 담화문에서 단 두 문장으로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에게 사과했다.
대통령을 보좌해 온 저로서 지금의 상황에 대해 깊은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박근혜 정권의 부역자 1호’로서 ‘국헌 문란’에 대해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황교안은 그렇게 두루뭉술한 말로 주권자들에게 ‘사과’를 하면서 대통령권한대행 자리에 앉았다.
황교안은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에서 국정이 한시라도 표류하거나 공백이 생겨서는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전 국무위원 그리고 모든 공직자들과 함께 오직 국민과 국가만 생각하며 국정 관리의 책임과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2015년 6월 총리 지명을 받은 뒤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온갖 부정과 비리 의혹이 드러났지만, 박근혜의 ‘은총’에 힘입어 그 자리를 차지한 황교안이 그로부터 1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 그 의혹들을 씻지 못한 채 어떻게 “오직 국가만 생각하며 국정 관리의 책임과 역할에 최선을 다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황교안에 버금가는 ‘부정·비리 혐의자들’이 태반인 내각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청백리’가 되어 황교안을 제대로 보좌할 수 있겠는가?
황교안이 대통령권한대행이 된 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은 12월 10일 자 조선·중앙·동아일보에는 ‘황교안 체제’를 지지하며 야당의 ‘국정 혼란’을 비난하는 사설들이 실렸다. 조선일보 사설은 제목(‘민주당, 비상시에 점령군 아닌 책임 정당 모습 보여 달라’)부터 그런 논지를 드러냈다.
검찰이 ‘국정 농단’의 ‘주범’이라고 밝힌 박근혜 때문에 커져 온 혼란의 책임을 야당에 덮어씌운 것이다.
같은 날짜 중앙일보 사설(박근혜 탄핵 이후···헌법과 협치로 헤쳐 나가자‘)은 “박근혜 정치는 종언을 고했다. 자욱한 안개정치도 한 고비를 넘겼다”고 전제한 뒤 이렇게 주장했다.
중앙일보 사설의 이런 논조는 박근혜가 탄핵소추안 국회 가결 직후 국무회의에서 한 발언과 맥이 통한다.
여러분 모두 마음이 무겁고 힘들겠지만, 우리가 맞닥뜨린 엄중한 국내외 경제 현안과 안보 현실을 생각하면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대한민국의 국익과 국민의 삶이 결코 방치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같은 날짜 동아일보 사설(‘박 대통령 탄핵안 가결, 이제 국회가 답을 내놓을 때다’)은 조선·중앙보다 더 진하게 황교안의 ‘대국민 담화’를 추켜세웠다.
이 사설은 “평화적이고도 절제된 촛불혁명이 국회 의결을 이끌어 냈지만 국회가 언제까지나 촛불에 의존해서는 위험하다”고 ‘경고’한 뒤 “광장의 민의가 제기하는 문제를 헌정질서 안에서 풀어내는 것이 국회의 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이 사설은 “앞으로는 국회가 통치의 중심이 돼야 하지만 과연 기대를 걸 수 있을지 솔직히 믿음이 가지 않는다. 평소에도 국회는 국정의 발목을 잡는 데만 유능했다”고 비아냥거렸다. 그렇다면 왜 ‘광장의 민의’를 국회가 풀어내라고 당부하는가?
한겨레와 JTBC가 지난 9월 하순 이래 ‘최순실 게이트’의 실상을 집중적으로 폭로한 뒤 조·중·동은 ‘박근혜 죽이기’라고 할 정도로 선정적인 기사와 논설을 잇달아 내보냈다. 그러나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박근혜가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자마자 그의 ‘호위무사’인 황교안 체제가 국정을 안정시키고 안보를 튼튼히 할 수 있다는 사설로 독자들을 현혹시키고 있다. 조·중·동이 이렇게 돌변하는 까닭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이런 현상이 세계 모든 혁명의 역사에서 나타난 바 있는 ‘반동’의 시작이라고 믿는다. 무력으로 이룬 혁명이든 무혈혁명이든, 그것이 성공의 단계로 접어들 때 가장 공포에 사로잡히는 쪽은 민중을 탄압하거나 기만해온 기득권세력이다. 조·중·동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군사독재정권 또는 극우보수정권과 공생하면서 스스로 ‘언론권력’이 되어 정치권력을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그런데 2016년 가을에서 겨울로 이어지는 ‘촛불혁명’은 박근혜를 탄핵 일보 직전으로 몰아가면서, 침몰 직전의 배 같은 새누리당이 민주진보진영에 정권을 내어줄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는 상황이 조·중·동에게는 악몽일 것이다. 김대중 정권 시기에 사주들이 세무사찰을 당해 옥살이를 하고 거액의 추징금을 물어낸 것보다 더 끔찍한 사태가 벌어지는 것을 세 신문 사주와 경영진이 바랄 리 없다.
지금 한국사회를 뿌리부터 흔들며 온 세계 언론의 극찬을 받고 있는 ‘촛불 혁명’은 비폭력평화혁명이자 명예혁명이다. 전국에서 하루 최대 232만 명이 참가한 촛불집회는 그 자체가 혁명전사들의 잔치마당이다. 그 마당에서 초등학생부터 중고등학생,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평범한 기성세대 사람들조차 박근혜 정권을 무너뜨리고 진정한 민주평화체제를 세워야 한다는 결의를 다졌다. 조·중·동이 ‘국정 안정’을 외치는 사설을 내보낸 바로 그 날 오후에도 전국에서 104만의 ‘촛불’이 ‘박근혜 즉각 퇴진과 구속’을 외쳤다. 그들은 그것이 나라와 겨레가 안정과 평화의 길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조·중·동이 앞으로 어떤 ‘프레임’을 짜면서 극우보수세력의 정권 연장을 위해 사력을 다할 것인지는 전례에 비추어 능히 예측할 수 있는 일이다. 그들은 야권의 대립과 분열을 조장하면서 보수와 중도의 대통합을 통해 선출되는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갖은 ‘작전’을 펼칠 것이다. 그러나 세계 최고 수준의 평화혁명을 주권자혁명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촛불 민심’은 이번에야말로 조·중·동의 심장부를 겨냥해 화살을 날릴 것이다. 조선·동아일보사는 광화문광장 바로 옆에 있고 중앙일보사는 거기서 2km도 되지 않는다. 조·중·동이여, 촛불이 횃불 되기 전에 혁명에 대한 ‘반동’을 멈추고 자숙하기 바란다.
·이 글은 <미디어오늘>에도 함께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