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궤변에 놀아난 청와대 기자단

- 들러리나 앵무새 노릇 하려면 차라리 해체하라

지난해 12월 9일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뒤 대통령 직무정지 처분을 받은 박근혜가 새해 첫날 느닷없이 ‘기자 간담회’를 가졌다. 말이 간담회이지 실제로는 방송 카메라들이 녹화하는 가운데 이루어진 회견이었다. 오후 1시 반에 시작된 간담회 내용이 여러 시간 뒤에 방송과 신문에 보도된 것을 보면서 바로 전날 서울 광화문광장의 ‘송박영신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100여만 시민들뿐 아니라 박근혜를 부정적으로 평가한 국민 96%는 분노와 허탈함을 억누르지 못했을 것이다. 박근혜가 탄핵 사유들에 대해 궤변과 거짓말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박근혜가 대통령 직무정지를 당한 처지이므로 청와대 기자단은 간담회 형식의 기자회견을 왜 여는지를 상세히 묻고 납득할 만한 설명이 없으면 참석을 거부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어쨌든 간담회는 열렸고, 박근혜는 검찰이 공소장에 명시한 ‘국정 농단의 주범’이라는 사실을 외면한 채 시종일관 대통령직을 정당하게 수행했다고 주장하거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관한 언론의 보도를 ‘오보’나 ‘왜곡’으로 몰아붙이는 데 초점을 두었다. “저를 도와줬던 분들이 뇌물이나 뒤로 받은 것 하나 없이 많은 일을 열심히 한 것인데, 뒤로 이상한 일 없는 분들인데도 고초를 겪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프다”는 박근혜의 주장은 검찰이나 특검이 구속한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 김종, 차은택, 문형표 등이 법적으로 그 어떤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는 뜻으로 들렸다.

박근혜가 과연 정상적 정신 상태와 기억력을 가진 사람인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은 세월호 참사 당일인 2014년 4월 16일의 ‘행방불명 7시간’에 대한 ‘해명’이었다. 그는 “당일 외부인 출입 의혹은?”이라는 기자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날 기억 더듬어보니 머리 만져주기 위해서 오고 목에 필요한 약 들고 오고 그 외에는 아무도 없다. 그날은 누가 다른 일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는가? 큰일이 터지고 학생들 구하는 데 온 생각이 집중되는 상황에서 다른 것 생각하는 게 대통령이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나? 그런데도 사실이 아닌 얘기들이 나오는 상황에서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든다.”

박근혜가 그날 일들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면, 헌법재판소가 지난달 22일 “문제가 되고 있는 세월호 참사 당일 피청구인이 청와대 어느 곳에 위치했었는지, 또 피청구인이 그동안에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보았는지를 시각 별로 밝혀 달라”고 요구한 데 대해 왜 열흘이 지나도록 아직 답변서를 보내지 못하고 있는가? 그리고 언론이 확실한 증인들을 통해 보도한 ‘주사 아줌마’와 ‘기 치료 아줌마’에 대한 해명은 왜 하지 않는가?

박근혜는 지난해 9월 하순 ‘국정농단 게이트’가 터진 뒤 10월 25일과 11월 4일에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청와대 기자들이 노트북도 들지 않고 들러리를 서고 있는 모습이 방송에 나가자 언론계 안팎에서 비판이 거세게 일어났다. 언론단체 비상시국회의는 11월 15일 기자회견을 통해 청와대 기자단에 이렇게 요구했다. “청와대가 허용하지 않았고 기자단이 계획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기자라면’ 물어야 한다. 물음을 금지하는 자들이 누구인지 밝히고 싸워야 한다. 국민의 탄식과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 오늘, 언론의 본령과 사명이 무엇인지 절대 잊지 않길 바란다.” 그래서 그런지 11월 29일 박근혜가 세 번째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회견장을 떠나려 하던 때에는 기자 두어 명이 돌발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이례적 광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박근혜는 나중에 답변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돌아서 버렸다.

새해 첫날의 청와대 기자간담회에서 박근혜가 자신의 ‘정당함’과 ‘무고함’을 길게 주장한 뒤 기자 15명이 질문을 했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뒤 처음 보는 이례적 ‘풍경’이었다. 그 질문들의 주류는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과 외부인 접촉’, 재벌 총수들에 대한 투자 압력과 ‘창조경제’의 실상, 최순실과의 관계, 문화계 ‘블랙리스트’였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전례 없이 날카로운 질문을 했다고 자부했을지 모르나 정작 박근혜의 답변은 동문서답 아니면, 검찰과 특검이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사실’임을 입증한 ‘혐의들’을 모조리 부인하는 내용뿐이었다. 예를 들어, 세월호 참사 당일 ‘의문의 7시간’에 대해 박근혜가 미용 시술을 전혀 받지 않았다고 주장한 뒤 그 질문을 했던 기자는 당연히 다시 손을 들고 “JTBC가 정밀한 영상으로 보도한 얼굴의 시술 자국은 무엇인가”라고 물었어야 한다. 다른 질문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청와대 기자단은 박근혜의 궤변과 거짓말을 독자들과 시·청취자들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들러리 구실을 하거나 앵무새 또는 ‘나팔수’ 노릇을 했다는 비판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16일 자 <뉴스타파>에 실린 기사(‘박근혜·최순실 체제의 부역자들 5-청와대 출입기자’)에는 이런 대목이 나와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기사를 쓰는 것보다는 청와대로 모이는 고급 정보들을 사주와 경영진, 데스크에  정보 보고하거나 자사의 이익을 관철시키는 창구 역할로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이 언론계 내·외부의 평가다. 특히 방송의 경우, 그 정도가 더 심해 결국 ‘청와대 방송’으로 전락해버렸고 청와대 출입기자 경력은 승진을 위한 지름길이 돼버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런 일이 청와대 출입기자 대다수의 주업(主業)이라면 그들은 더 이상 춘추관에 둥지를 틀고 앉아 있을 이유가 없다. 기자의 사명이자 권리는 많은 사실 가운데 무엇이 진실인지를 언론 소비자가 판별하도록 하는 작업과 활동이다. 그리고 독자와 시·청취자들은 공적 기능을 가진 언론에 대해 ‘알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박근혜 정권은 물론이고 그 앞의 이명박 정권도 ‘범죄왕국’이라는 오명을 벗어날 수 없음은 수많은 사실로 입증된 바 있다. 올해에는 이르면 4월, 늦어도 12월에는 대통령선거를 치러야 한다. ‘범죄왕국’을 청산하고 명실상부한 ‘민주공화국’을 세우기 위해서라도 언론인들은 권력을 바르게 감시하고 비판하는 노력을 훨씬 더 강화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미디어오늘>에도 함께 실립니다.

  • YoonJoo Lee

    동감합니다. 청와대 간담회 내용 보도를 보면서 저 또한 품었던 생각입니다. “이런 내용이나 옮길거면서 부른다고 거길 왜들 갔을까…?”

  • Giwon Jang

    칼럼 잘 읽었습니다.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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