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찬양한 교과서·위인전 그대로 둘 것인가

-유소년들 머리에 ‘허상’ 심지 말아야

유엔 사무총장 임기를 마치고 새해 첫 달 12일 귀국한 반기문은 출마 선언도 하지 않은 채 실질적으로 ‘대통령 되기’ 운동을 하다가 지난 2일 기자회견을 통해 불출마 의사를 밝혔다. ‘정치인 생활’을 3주 만에 마친 것이다. 그가 특정 정당이나 ‘빅텐트’를 통해 보수세력을 대표하는 후보로 나설 것이라고 기대하던 지지자들에게는 날벼락 같은 일이었으리라. 그러나 적지 않은 정치전문가들은 반기문이 중도 하차할 것이라고 ‘예보’를 한 바 있었다. 반기문이 밝힌 불출마의 핵심 원인은 이런 것이었다.

“저의 순수한 애국심과 포부는 인격 살해에 가까운 음해, 각종 가짜 뉴스로 인해서 정치교체 명분은 실종되면서 오히려 저 개인과 가족, 그리고 제가 10년을 봉직했던 유엔의 명예에 큰 상처만 남기게 됨으로써 결국은 국민들에게 큰 누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일부 정치인들의 구태의연하고 편협한 이기주의적 태도도 지극히 실망스러웠고 결국 이들과 함께 길을 가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판단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SNS에 반기문에 관한 ‘음해’와 ‘가짜 뉴스’가 나돌았다 해도 그것은 지엽적 현상이었을 뿐, 제대로 된 언론매체들은 그런 소문들을 바로잡아주려고 노력했다. 반기문과 가족에게 ‘큰 상처’를 남기게 된 주요 원인은 ‘가짜 뉴스들’이 아니었다. 그가 태광실업 회장 박연차로부터 23만 달러를 받았다는 의혹, 부정한 방법으로 거액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그의 동생과 조카를 뉴욕 검찰이 기소했다는 사실에 대해 반기문은 ‘사실무근’이라거나 ‘몰랐다’는 말밖에 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가 구체적인 정책이나 구상을 밝히지도 않으면서 김종필 같은 5·16 쿠데타의 ‘주범’부터 ‘국정 파탄의 책임자’ 이명박에 이르기까지 낡은 인물들을 만나 도움을 청하고, 새누리당과 바른정당, 국민의당 지도부를 번갈아 찾아다니며 단숨에 ‘꽃가마’를 타려고 드는 행태가 주권자들의 눈에 ‘순수한 애국심과 포부’로 보일 리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지난해 한때 문재인보다 크게 앞섰던 지지율이 귀국 이후 3주 만에 13% 대로 폭락해 반 토막이 난 것은 ‘자업자득’임이 분명하다. 이것이 불출마 선언의 더 큰 요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귀국 일성으로 “나는 진보적 보수”라고 외쳤다가 사방에서 날아든 비난의 화살을 맞은 반기문은 도대체 한국사회의 현상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다. 최순실을 대통령처럼 모시면서 국정을 농단함으로써 탄핵소추를 받은 박근혜에 대해 반기문은 명료하게 비판을 가한 적이 없다. 그는 “촛불집회에도 가보겠다”고 말하더니 불출마 선언 직전에는 “촛불이 변질됐다”고 주장했다. 현장에 가서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TV를 보니 그렇더라는 것이었다. 지난해 10월 말 이래 온 세계가 주목하면서 경탄하는 촛불혁명의 실체도 모르는 인물이 어떻게 대통령이 될 수 있겠는가? 그러니 그의 대선 출마 포기는 당연한 귀결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짧은 정치생활을 마친 반기문은 사인(私人)으로 돌아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권리와 자유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반기문 자신과 대중이 명확히 가려내야 할 일이 있다. 지금 중고등학생들이 쓰고 있는 교과서들에 그를 일방적으로 찬양하는 내용이 들어 있고, 어린이들을 위한 ‘반기문 위인전’이 시판되거나 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현상을 방관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주간조선> 2016년 6월 17일 자 기사(‘안철수는 빠지고 반기문은 남고···교과서에 실린 정치인’)에 따르면 “중·고교 역사 및 사회 교과서 중 반기문 총장에 대한 서술이 확인된 교과서는 모두 9종,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6종, 중학교 역사 교과서 3종”이다. 그 교과서들은 대체로 반기문을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표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어느 출판사가 펴낸 중학교 역사2 교과서에는 “2007년에 유엔 사무총장으로 취임하여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한 결과, 회원국들의 압도적 지지 속에 2011년에 재선되었다”라는 문장이 실려 있다. 교육부는 “정치인 등 논란이 될 수 있는 생존인물을 교과서에 수록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방침을 세웠다고 한다. 이런 교과서들이 나오던 때 반기문은 아직 정치인이 아니었지만, 이제는 명백한 정치 경력을 가진 인물이다.

교보문고가 발표한 것을 보면 2011년 인물·전기 분야 어린이도서에서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한 책은 <반기문 총장님처럼 되고 싶어요>였다. 반기문이 토마스 에디슨, 이순신, 안중근, 스티브 잡스, 버락 오바마 등과 함께 ‘위인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초등학생 아들을 둔 한 엄마는 <오마이뉴스> 1월 23일 자에 올린 글에, 학교 도서관에서 위인전 <반기문>을 읽은 뒤 그 아이가 ‘유엔 사무총장’을 꿈꾸고 있다고 썼다. 그런데 그 아들은 최근 반기문이 ‘유엔 결의안 11호’나 ‘위안부 할머니들’에 관한 기자들의 질문에 무성의한 답변을 하거나 짜증부터 내는 모습이 TV에 비치는 것을 보고 “위대한 반기문 총장님이 왜 저러느냐”고 꼬치꼬치 캐물었다고 한다. 그 엄마는 글을 다음과 같이 끝맺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님! 총장님을 보며 꿈을 키우는 수많은 꿈나무들의 가슴에 더 이상 상처를 주지 마세요! 귀국 후부터 며칠 동안 당신의 행적은 지난 10년이 얼마나 허상이고 부풀려졌는지를 보여주네요. 어른의 눈에 그저 당신은 대권에 눈이 멀어 약속도 잊은 전직 유엔 사무총장으로밖에 안 보입니다.”

국제적으로 이름난 언론매체들이 반기문을 ‘가장 우둔한 최악의 사무총장 ’, ‘무력한 관찰자’, ‘미국의 푸들(강아지)’, ‘어디에도 없는 사람’이라고 비판한 사실은 국내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초·중·고에 다니는 유소년들은 특히 감수성이 강해서 교과서나 베스트셀러에 실려 있는 위인이나 영웅에 관한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고 그들처럼 되려고 노력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데 반기문은 결코 그런 존재가 될 수 없다. ‘기름장어’라는 별칭이 보여주듯이 기회주의와 권력 지향성이 강한데다 자신의 필요에 따라 배신을 마다하지 않는 인물이다. 그러므로 반기문의 업적을 찬양하는 교과서들과 그를 위인으로 묘사하는 어린이도서들은 마땅히 보급을 중단해야 한다. 반기문이 지금부터라도 진실되고 겸허하게 살아갈 의지를 보이려면 교과서와 위인전에서 더 이상 자신을 다루지 말아 달라고 요청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나는 이른바 ‘대권’을 차지하려고 온갖 술수와 거짓을 일삼는 일부 정치인들보다는 학력이 낮아도 땀 흘려 일하면서 정직하고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진정한 ‘위인’이라고 믿는다.

·이 글은 <미디어오늘>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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