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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조중동 카르텔’ 탈퇴했나

김종철 프로필 사진 김종철 2017년 05월 15일

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위원장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문재인 당선 직후 확 바뀐 논조


‘조중동’이라는 말은 한국의 수구보수언론을 대표하는 조선·중앙·동아일보의 약칭으로 2000년대 초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세 신문 가운데 조선일보를 맨 앞에 내세운 까닭은 발행 부수가 가장 많고 영향력이 제일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다음이 중앙일보이고 마지막이 동아일보라는 것은 지난 15년이 넘도록 확고부동한 사실로 인정되어 왔다. 조중동의 대표적인 공통점은 21세기 들어 2012년까지 실시된 세 차례의 대통령선거에서 한결같이 보수정치세력을 대표하는 후보를 지지했다는 사실이다. 조중동은 2002년에는 노무현과 맞선 이회창, 2007년에는 정동영을 상대로 한 이명박, 2012년에는 문재인과 경합을 벌인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지난 19대 대선에서 조중동은 선거운동 기간 내내 자유한국당의 홍준표나 바른정당의 유승민보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을 폄하하고 매도하는 데 주력했다. 그런데 지난 5월 9일 오후 8시에 투표가 끝난 뒤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아 문재인의 당선이 확정되자 조중동의 ‘탄탄한 카르텔’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중앙일보가 조선·동아일보와 정반대 논조를 펼쳤기 때문이다. 세 신문의 사설을 통해 그 실상을 살펴보자.


조선일보는 5월 10일 자 사설(“문 대통령, ‘노무현 2기’ 아닌 통합·협치 불가피하다”)에서 의례적인 ‘축하’도 하지 않은 채 이렇게 ‘경고’했다.




지금 문 대통령을 찍지 않은 많은 국민은 앞으로 ‘노무현 2기’가 펼쳐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거의 매일 갈등과 분열로 지고 샜던 당시로 돌아간다는 것은 역사의 퇴행이다. 문 대통령이 그 시대를 넘어서 통합하고 협치하는 새로운 대통령 상(像)을 보여준다면 문 대통령을 찍지 않은 국민들도 곧 성공을 응원하게 될 것이다.



같은 날짜 동아일보 사설(“‘대통합 인사’로 새 정부 문 열어야”)은 “지지한 사람보다 지지하지 않은 국민이 더 많다”며 “걱정스러운 것은 선거 과정에서 문 후보나 그 주변에서 촛불 민의를 ‘적폐 청산’이나 ‘주류세력 교체’로 오독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는 점”이라고 ‘개탄’했다. 문재인이 홍준표보다 557만여 표나 더 받아 압승한 사실은 아예 외면해버린 것이다. 특히 조선·동아는 ‘보수의 텃밭’이라는 서울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에서 문재인이 홍준표를 훨씬 앞지른 충격적 투표 결과가 민심의 흐름을 상징한다는 것을 몰랐단 말인가?


동아일보 5월 11일 자 사설(‘한미동맹 뿌리박은 새 대북정책 짜라’)은 문재인이 김대중과 노무현의 ‘햇볕정책’을 이어받겠다고 약속한 데 관해 “북한 핵·미사일 강화를 막지 못했다는 점에서 사실상 실패한 정책”이라며 ‘대선공약집에 나타난 대북정책’에 ‘햇볕정책의 복귀’ 내지 ‘햇볕 버전 2’가 깔려 있는데 “냉철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이런 태도를) 혁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 5월 12일 자 사설(“‘검찰 독립’ 취임사 다음날 검찰 수사 언급한 문 대통령”)은 문재인이 “조국 민정수석에게 검찰에 대한 수사 지휘를 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는 언급”을 했다고 단정한 뒤 “첫날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고 ‘관전평’을 했다. 동아일보는 같은 날짜 사설(“청와대가 ‘검 길들이기’ 손 떼는 게 검찰개혁이다”)을 통해 “임명권자인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속까지 하면서 수사했는데도 미진하다는 대통령과 민정수석의 반응에 사표를 내지 않을 검찰총장은 없을 듯하다”며 문재인이 검찰 수사에 부당하게 개입하려 든다는 것 같은 논조를 펼쳤다. 조선일보의 같은 날짜 사설(‘작은 청와대라더니 이게 뭔가’) 역시 문재인을 헐뜯었다. 그가 대선 때 ‘낮은 청와대’를 공약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비대한 청와대 조직이 그대로”였다는 것이다.


토요일인 5월 13일에도 조선일보는 ‘국정교과서 내용 무엇이 잘못돼 폐지하나’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문재인을 이렇게 비판했다.




역사교과서 새로 쓰기는 역사 교육이 왼쪽으로 기울어 있어 바로잡아야겠다는 뜻에서 비롯됐다. 여기에는 지금 교단을 장악하고 있는 검정교과서들이 대한민국의 건국과 발전 과정, 북한의 실상에 대한 국민적 상식을 외면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그런데 청와대는 이런 생각을 ‘비정상’이라고 보고, 검정교과서의 잘못된 사관을 방치하는 것이 ‘상식과 정의’를 세우는 일인 것처럼 얘기했다.



이 사설 밑에는 ‘정윤회 사건 재조사가 그렇게 화급한 사안인가’라는 사설이 자리 잡고 있다.


같은 날짜 동아일보 사설(‘과거보다 미래 향한 통합·복지 대한민국으로’)은 제목과는 달리, 문재인이 신속하게 취하고 있는 조치들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업무지시 2호로 ‘국정교과서 폐지’와 5·18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지시했다. 전날 문 대통령이 ‘세월호’ 재조사를 지시한 데 이어 ‘박근혜표’ 정책 청산에 신호탄을 올린 셈이다. 새로 출범한 정부가 국민대통합을 외치면서 ‘과거’에 눈을 고정한 채 내부 분열을 자극하는 행보를 이어간다면 갈등 치유를 염원하는 국민의 기대와 어긋난다.”


문재인 당선 직후 중앙일보가 내보낸 첫 번째 사설(‘문재인 대통령에게 국민은 협치와 통합 요구했다’)은 조선·중앙일보와는 정반대 논조를 보였다.




환성과 탄식이 교차하는 가운데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이 오늘 새벽 탄생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을 축하한다. (···) 이번 대선은 우리 사회에 새로운 도전이자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새 대통령이 현 정치 구도를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협치와 통합 정부를 통해 이 땅의 민주주의를 한 단계 끌어올리면 대한민국은 앞으로 더 큰 기회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중앙일보는 같은 날짜 제2사설(‘패배한 보수, 뼈 깎는 자성으로 거듭나라’)에서 수구보수세력에 냉정하게 경고를 보냈다.




한국당과 홍 후보의 패배는 그들의 행적을 보면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한국당을 주도해온 친박계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독주에 편승해 권력을 탐닉해 왔고, 4·13총선에서 ‘막장공천’으로 국민에게 큰 실망을 안겼다. 그럼에도 총선 참패의 책임을 지지 않고 버티다가 대통령 탄핵이란 국가적 위기를 자초하고 말았다.



대선 참패에 대해 홍준표와 자유한국당의 책임을 묻지 않은 조선·동아와는 대조적인 논조이다. 같은 날짜 제3사설의 제목은 ‘한·미 정상회담, 철저히 준비해야’였다.


중앙일보는 5월 11일 자에 실은 2편의 사설(‘소탈하게 소통 의지 보인 대통령의 행보’, ‘첫 날 보인 탕평 의지, 임기 말까지 지켜라’)을 통해 문재인의 행보를 높이 평가했다. 5월 12일 자에는 ‘사드 갈등 풀 특사 파견은 빠를수록 좋아’, ‘국정원은 국가 안보와 대북 정보 수집이 본분’, “‘인(人)재지변’의 실업 해결을 위한 추경이 되려면”, ‘조국 민정수석···검찰 개혁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 정신’이라는 사설을 내보냈다.


중앙일보는 5월 13일 자 사설(‘문 대통령의 산뜻한 첫 걸음, 물밑 혼선은 경계해야’)을 통해 문재인에게 찬사와 함께 경고도 보냈다.




대통령 문재인의 첫 걸음이 산뜻하다. 어제 대통령이 청와대 직원식당에서 직접 식판에 음식을 담아 일반 직원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하는 모습은 낯선 만큼 신선했다. (···) 문 대통령은 선거 때 실무만 담당하고 국정 운영은 장관과 논의하는 장관책임제를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제 발표한 비서실 직제개편안대로라면 가뜩이나 큰 청와대 조직이 오히려 더 커졌다. 이런 식이라면 머지않아 각 수석들이 부처를 장악하려는 유혹에 빠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 사설 밑에는 ‘어느 때보다 중요한 4강 외교···다지고 또 다져라’라는 사설이 실려 있다.


언론의 으뜸가는 사명과 책무는 권력을 바르게 감시하면서, 확인된 사실을 바탕으로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특히 진보와 보수가 대립하고 있고, 겨레와 국토가 분단된 상황에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보도와 논평을 주권자들에게 전달하는 작업이 아주 중요하다. 그런데 앞에서 사설을 통해 검토했듯이, 조선·동아일보는 박근혜 탄핵과 구속 때문에 치러진 조기 대선의 결과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문재인의 압승을 평가절하하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중앙일보는 문재인이 대통령직에 취임한 뒤 나흘 동안 보인 자유롭고 서민 친화적인 행보를 높이 평가하는 한편 앞으로 나갈 길을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중앙일보가 왜 이렇게 변했는지에 관해서는 전문가들이 본격적인 분석을 하고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이다.


지난 3월 18일 홍석현은 중앙일보와 JTBC 회장직을 사퇴하면서 “제가 회사와 사회로부터 받은 은혜를 다시 사회에 환원하는 데 일조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가 아직도 중앙일보에 대해 실질적 지배력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 그 신문이 앞으로 문재인 정부를 자유롭게 감시하고 공정하게 비판한다면 ‘조중동 카르텔’ 시기의 역사적 과오에서 천천히 벗어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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