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를 국민의 품으로’

MBC가 바닥을 알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그 까닭은 명백하다. 규정도 절차도 어기면서 부당한 인사와 조직 해체를 자행하고 있는 경영진 때문이다. <문화방송노보> 184호(2014년 11월 6일자)에 그 실상이 적나라하게 실려 있다.

교양제작국 해체로 시작해 결국 ‘밀실 보복 인사’로 끝난 막장극이었다. ‘경쟁력’ ‘수익성’도 허울뿐인 핑계였다. 오로지 보복과 탄압을 위한 조직 흔들기에 지나지 않았다. 더구나 절차적 정당성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위법적인’ 경영 행위였다.
한국PD대상 작품상을 받은 PD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을 수상한 PD가, 30년 가까운 기자생활 동안 후배들의 귀감이 됐던 고참 기자가, ‘유배 생활’ 와중에도 색다른 인터넷 뉴스 프로그램을 모색하던 젊은 기자가 ‘업무실적이 미흡한 저성과자’라는 이유로 ‘교육’ 대상자가 됐다. 이런 징계성 교육은 회사 규정 어디를 봐도 제도적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유령 교육이다. (···)
영화 <제보자>의 모델이자 최근에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관련 다큐로 호평을 받았던 MBC의 간판 PD와 <PD수첩> 팀장을 역임하고 지난 9월 ‘이달의 PD상’을 수상한 유능한 PD들이 교양제작국의 해체와 함께 비제작부서로 쫓겨났다.

MBC의 <공식 블로그>는 “여러분의 MBC / 콘텐츠 중심의 글로벌 미디어그룹 / 공영방송 MBC의 미래입니다”로 시작된다. 그 아래 자리잡은 ‘MBC 방송강령’의 서두는 이렇다. “우리는 방송의 주인이 국민임을 명심하고 공영방송으로서 정직한 언론과 건강한 문화 창달을 통해 사회적 공익과 권익 증진에 이바지할 것을 선언한다.” 오늘날 주식회사 문화방송의 이런 선언을 믿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MBC는 박정희·전두환 정권 시기에는 독재를 옹호하고 찬양하는 데 주력하는 방송이라는 평가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1987년 6월 항쟁 이후 서울 MBC에 한국방송사상 처음으로 노동조합이 결성되면서 공정방송을 향해 힘차게 달려왔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 시기인 2010년 3월 청와대의 ‘낙하산 사장’이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김재철 씨가 취임한 이래 ‘국민을 위한 공영방송’과는 정반대 길로 치닫는 경우가 많았다. 그의 재임 기간에 경영진은 <PD수첩-4대강 수심 6m의 비밀>을 불방 조치하고 <후 플러스> <W> 등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던 수준 높은 프로들을 폐지하는가 하면 서울시장 보궐선거 기간에 여당 후보를 공공연하게 지원하는 뉴스를 내보냄으로써 노조와 많은 시청자들의 격렬한 비판을 일으켰다.

낙하산 사장의 전횡과 횡포를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고 판단한 노조는 2012년 1월 30일 ‘공영방송 MBC 정상화와 김재철 사장 퇴진을 위한 총파업’을 시작했다. 파업은 무려 170일 동안이나 계속되었지만 낙하산 사장을 실질적으로 임명한 청와대는 끝내 노조의 요구를 외면했고, 경영진은 노조 집행부 6명을 해고했다.

김재철 사장이 2013년 3월 퇴임한 뒤에도 MBC는 공영방송이 아니라 ‘관영방송’이라는 오명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현상은 2014년 12월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MBC의 신속하고 공정한 보도, 진보적인 PD저널리즘, 창의적이고 유익한 교양·예능 프로그램들을 까마득한 옛날의 추억으로만 간직하게 된 시청자들과 언론인들은 170일 파업 이후 경영진의 비이성적 인사와 조직 통폐합에 맞서 치열하게 싸우지 못한다는 이유로 노조 집행부는 물론이고 조합원들까지 비판했다. 지난 여름 KBS 새노조와 1노조가 협력해서 길환영 사장 퇴진운동을 벌이던 시기에는 여의도 MBC 사옥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고 노조의 각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MBC 경영진은 170일 파업이 정당하다는 1심 판결에도, 해고된 노조 집행부 6명에 대한 복직 판결에도 승복하지 않더니 마포구 상암동의 화려한 신사옥으로 옮겨간 뒤에도 부당한 인사와 조직 해체를 통해 유능하고 혁신적인 사원들을 핍박하고 있다.

상황이 파국을 향해 치닫자 진보적 언론단체들과 시민운동 진영에서는 “이제는 MBC 노조가 무기력하다고 탓만 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대책을 세우면서 노조를 격려하고 지원하는 운동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나오기 시작했다. ‘MBC를 국민의 품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안팎에서 뜻을 함께하는 조직과 개인들이 힘을 모으자는 것이다.

지난 11월 20일에 열린 가칭 ‘MBC를 국민의 품으로! 공동대책위원회 기획회의’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권력은 MBC를 사유화해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와 정체성을 내다 버리려 하지만, 우리는 MBC를 버릴 수가 없다. 유배당한 언론노동자들이 외롭지 않도록 든든한 벗이 필요하고, 문화방송을 재건하려는 양심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필요하다. 체념과 외면을 넘어 시청자·시민들이 다시 함께 참여하고 실천할 수 있는 작은 계기들을 이루어내야 한다. MBC의 존재를 잊지 않고 내부의 건강한 양심들과 손을 맞잡고 MBC를 권력의 품에서 국민의 품으로 되찾아오기 위한 소중한 걸음을 함께 내딛자.

MBC를 국민의 품에 안겨주는 과업은 안팎의 꾸준한 협업과 공동투쟁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그것은 단순히 MBC만을 ‘공정방송, 국민의 방송’으로 만드는 일이 아니라 KBS를 비롯한 공영매체들도 그런 길로 달려가도록 격려하고 지원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우리가 바라는 민주정권, 통일을 지향하는 정부는 국민의 품에 안긴 방송과 진보적 매체들이 하나가 되어 지금의 독선적이고 무능한 정권을 준엄하게 비판하고 단죄해야만 수립될 수 있다.

MBC 본부 노조 이성주 위원장은 노보에 쓴 글에서 이렇게 다짐했다. “벼랑 끝이라도 벌판에 선 것처럼 당당하게, 다시 일어서겠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어깨를 펴고 앞에 설 것입니다. 노동조합의 역사를 믿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믿습니다.”

나는 이 대목에서 투철한 전사이자 온화한 시인이던 김남주의 노래를 상기한다. “해 떨어져 어두운 길을 서로 일으켜 주고 /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마침내 하나 됨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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