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의 길과 박근혜의 길

참으로 요란했던 2014년이 저물어 간다. 지난 18대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공권력이 저지른 부정행위, 정보수사기관의 서울시 간첩사건 조작 등으로 박근혜 정권이 휘청거리던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 그 불행한 사건은 박 정권이 안고 있던 두통거리들을 쓰나미처럼 휩쓸어버렸다. 그러고 나서 청와대의 ‘문고리 3인방’과 ‘비선 실세’라는 정윤회의 실체에 관한 의혹이 언론을 장식하자 대통령 박근혜는 다시 한 번 궁지에 빠졌다. 그러나 2015년을 눈앞에 둔 지난 12월 19일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을 내림으로써 박근혜를 괴롭히던 문제들은 잠잠해진 듯이 보인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당장은 박근혜가 심각한 정치적 위기를 넘긴 것 같지만 대통령으로서 지금과 같은 길을 걸어간다면 레임덕은 물론이고 대통령직을 지탱하기 어려운 난국이 닥쳐오리라고 본다. 왜 그럴까? 아버지 박정희가 걸어간 길과 지금 박근혜가 걷고 있는 길을 비교하는 데서 그 실마리를 찾아보기로 하자.

무엇보다도 먼저, 박근혜는 나라의 주인인 국민을 섬기기는커녕 구름을 타고 가는 군주처럼 군림하는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이것은 아버지와 아주 비슷하다. 박정희는 1961년 5월 16일 쿠데타를 통해 실질적인 최고권력자가 된 뒤 자신의 정치적·개인적 이익을 위해서라면 헌법을 유린하는 짓을 서슴지 않았다. 1972년 10월 17일에는 ‘유신’이라는 미명 아래 ‘대통령 특별선언’이라는 문건 하나를 근거로 국회를 해산하고 정치활동을 정지시켰다. 유신독재에 대한 저항이 폭발하던 1974년 1월에는 긴급조치 1호를 발동해서 민주인사들을 구속했고, 4월에는 민청학련과 인혁당 사건을 조작해서 공포정치를 극대화 했다. 1975년 5월에 공포된 긴급조치 9호는 모든 언론매체와 국민의 입에 재갈을 물렸다. 박정희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는 독재자였다.

이런 평가에 대해 박근혜는 “나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항변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2013년 2월 25일 그가 청와대에 들어간 이래 1년 10개월 남짓 동안 드러난 일들을 보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민주정부의 수반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인 국민을 봉건왕조 시대의 신민처럼 하대하는 군주처럼 행동하고 있음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이 대통령이 되는 데 큰 도움을 준 18대 대선의 선거부정에 관해 움직일 수 없는 증거들이 드러났을 때 박근혜는 마땅히 주권자들을 향해 최소한 선거무효, 아니면 당선무효를 스스로 선언했어야 한다. 그런데도 그는 부정선거의 수혜자로서 단 한 마디 사과도 하지 않았다.

박정희는 대통령으로서 공과 사를 구분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는 학생데모가 격렬해지거나 반유신독재운동이 치열하게 벌어질 때는 ‘법과 질서’를 크게 외치면서 극한적 탄압을 가했지만 자신은 헌법도 법률도 지키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특히 집권 말기에는 청와대 바로 옆의 ‘안가’라는 곳에서 사흘이 멀다 하고 ‘섹스파티’를 벌였다. 거기에 여자들을 강제로 ‘조달’하는 일을 도맡은 채홍사는 당시 중앙정보부 의전과장 박선호였다.

박정희는 개인의 성적 욕구를 푸는 자리에 중앙정보부장, 청와대 비서실장과 경호실장을 동석시키고 봉건왕조 시대의 임금처럼 주색잡기를 즐겼던 것이다. 박정희는 결국 1979년 10월 26일, 바로 그런 짓을 하던 자리에서 심복이라고 믿던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탄에 맞아 저승으로 갔다.

박근혜는 국가의 공식 업무를 대통령 개인의 일처럼 다룬다는 점에서 아버지를 닮았다. 한국 정부는 지난 10월 24일 전시작전권을 거의 영구적으로 미국에 맡기기로 오바마 행정부와 합의했다는 사실을 갑자기 발표했다. 가장 중요한 주권들 가운데 하나인 전작권을 외국에 위탁하는 결정을 국민적 논의도, 국회의 토론과 합의도 없이 하고나서 마치 개인의 사적 처리사항인 듯이 발표해버린 것이다. 그런 뒤에 고작 A4용지 몇 장 분량의 경위서를 국회에 보냈다고 한다.

특히 세월호 참사 당일 온 국민의 관심이 승객 구조에 쏠려 있던 때 대통령이 무려 7시간 동안이나 행방불명된 사건은 박근혜가 과연 국가원수로서 권한을 행사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지에 대한 의혹을 극대화했다. 청와대 비서실장 김기춘이 국회에서 “나도 그 시간에 대통령께서 어디에 계셨는지 모른다”고 답변한 사실이 그런 의혹이 타당함을 입증했다.

박정희가 걸어간 길과 박근혜가 걷고 있는 길에서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 하나 있다. 바로 언론과의 관계이다. 박정희는 1972년 10월의 헌정쿠데타 이전에는 더러 언론에 대해 유화정책을 펼치기도 했으나 그 이후에는 철저히 탄압으로 일관했다. 수구보수언론 중에서도 특히 조선일보는 박정희에게 예속되어 있었다.

박근혜는 대선 후보 시기부터 언론은 권력이 장악할 수도 없고 장악해서도 안 된다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뒤에 KBS 보도국장 김시곤의 폭로로 박근혜의 그런 말은 모두 거짓임이 드러나고 말았다. 박근혜 정권이 박정희 정권에 버금가게 언론을 배후에서 조종하거나 탄압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던 것이다.

KBS와 MBC를 비롯한 방송사와 채널A, TV조선 같은 종편방송이 박근혜의 강력한 영향권 안에 있지만, 요즈음 수구보수언론이 한결같이 그의 우군이 아니라는 것이 아버지 시대와 다른 점이다. ‘청와대 문고리 3인방’ ‘숨은 실세’ 정윤회 문제가 터졌을 때 조선일보 사설에는 이런 대목까지 나왔다. “이렇게 무소신·무기력·무책임한 정권이 앞으로도 3년 넘게 이 나라를 끌고 가야 한다는 사실이 걱정스럽다.” 동아일보의 칼럼에도 비슷한 내용이 실렸다. 그러나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 이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논조를 확 바꾸어 “박근혜 만세”를 부르고 있다.

박근혜가 언제까지 그 만세 소리에 감격할 수 있을까? 수구보수언론은 박근혜가 다시 심각한 정치적 위기에 빠져 몰락할 가능성이 커지면 그를 거침없이 할퀼 것이다. 이것이 박정희와 박근혜가 언론에 대해 휘두를 수 있는 영향력의 차이이다.

대한민국은 현재 OECD 34개 국가 가운데 다음과 같은 분야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자살률, 산업재해 사망률, 가계부채, 남녀 임금격차, 가장 낮은 최저임금, 보행자 교통사고 사망률,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률, 온실가스 배출 증가율, 국가채무 증가율, 대학교육 가계부담률, 사교육비 지출, 저출산률 등등.

박근혜가 대통령으로서 지금 같은 행보를 계속하는 한,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둠에 싸인 밤’이 될 수밖에 없다. 그가 획기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없다면, 국민은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 대비해서, 아니 그런 정치적 행사 이전에라도 누구와 함께 어떤 일을 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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