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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적 침체”와 “임금없는 성장”

정태인 프로필 사진 정태인 2014년 12월 01일

칼폴라니 연구소 창립 준비위원

하바드의 래리 서머스교수가 2013년, 30년대 앨빈 한센이 제기했던 “지속적 침체”(secular stagnation)을 다시 끄집어 낸 이래 세계 경제의 장기 전망을 둘러싼 논쟁이 계속 되고 있다. 캠브리지의 튤링스교수와 제네바대학원의 리차드 볼드윈이 최근 편집한 “지속적 침체: 사실, 원인, 그리고 치료”는 현재까지의 논의를 짧고 깔끔한 칼럼들로 정리하고 있다. 서머스, 크루그만, 고든, 아이켄그린 등 쟁쟁한 고수들이 모두 등장하지만 합의와는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이 주제가 왜 논쟁적인지를 여실 보여주고 있다.


원래 한센은 인구의 노령화에 따른 경제성장율 저하를 걱정했던 것인데, 우리가 모두 아다시피 전후 30년간 세계는 “자본주의의 황금기”를 겪었다. 그러므로 일부 논자(예컨대 조엘 모키어)는 현재 로봇이나 생명과학 쪽에서 광범위한 기술혁신이 벌어지고 있으므로 우리의 일생 동안 지속적 침체를 겪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가계와 기업 모두 저축을 하고 소비나 투자를 하지 않는다면 완전고용을 위해서는 급기야 마이너스 실질이자율이 필요하게 될지도 모른다. 명목이자율을 마이너스로 만들 방법은 없으니, 4% 이상의 인플레이션을 일으켜야 한다는 주장(크루그만)도 나온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지난 30년간 "대순항(Great Moderation)" 때 합의된 거시정책이 별 효과가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독립적 중앙은행이 2% 내로 인플레이션을 잡고 경기에 따라 이자율을 조작하거나 때때로 확대재정정책을 사용하는 것 말이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미국, 유럽, 그리고 일본이 차례 차례 양적 완화(Quantative Easing)라는 비정통적 정책에 매달린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보고서의 필자들은 “지속적 침체”에 찬성하든 아니든, 현재 세계경제가 수렁에 빠진 이유로 인구고령화와 불평등의 심화를 모두 꼽는다. 경제활동에 참가하는 젊은 인구의 비중이 줄어든다면, 그리고 생산성 증가율이 충분하지 않다면 경제성장율은 떨어질 것이고 초저금리가 된다고 하더라도 노후를 위해 저축을 늘리려 할 것이다. 또 전 세계적으로 소비가 침체하는 가운데 투자를 늘리는 기업은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산과 소득의 불평등이 심해진다면 다시 한번 저축이 늘어난다. 피케티의 장기통계가 보여 준 것처럼 상위 10%가 자산의 70%, 소득의 5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앞으로 불평등이 더 심해진다면 총수요는 또 줄어들 것이다. 1년에 몇십억, 몇백억을 버는 사람들이 아무리 사치를 누린다 해도 절반 이상을 소비하기는 힘들테니 말이다.


학자들은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이라는 이름을 피해 굳이 대불황(the Great Recession)이라고 이름을 만들었다. 그 만큼 대공황과 전쟁의 기억이 싫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 때 이미 “장기침체”(the Long Recession)라고 불렀는데 위에서 본 바와 같은 장기적인 원인 말고도 전 세계적으로 총수요를 부추길 방법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원장으로 있던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은 2012년 “리셋 코리아”라는 책을 내면서 한국의 1960년대 중반 이래의 “수출주도 성장”, 그리고 1990년대 중반 이래의 “수출주도+부채주도 성장”이 막을 내렸다고 진단했다.


미국의 경우 70년대 중반부터, 그리고 한국의 경우에는 1990년대 중반부터 실질임금인상율이 실질노동생산성 증가율을 밑돌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비롯되는 총수요 부족을 해소하는 두가지 방법이 수출, 아니면 빚에 의한 소비다. 미국과 그리스, 이탈리아 등이 대표적인 부채주도로, 동아시아와 독일은 수출주도로 상당한 성장을 누렸다. 2008년 금융위기는 이러한 세계적 성장전략이 막을 내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의 현재 상황은 수출도 안 되고, 빚에 의한 소비도 한계에 다다른 상태다. 이젠 실질임금과 노동생산성의 격차가 확대되는 정도를 넘어서 급기야 실질임금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을 지난 연말 금융연구원의 박종규 선임연구위원은 “임금없는 성장과 기업저축의 역설”이라고 불렀다. 그의 계산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2년까지 5년 동안 실질임금은 2.3% 줄어든 반면, 실질노동생산성 증가율은 9.8%에 달했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 1995년에서 2012년까지 17년 동안 한국의 실질노동생산성은 OECD 18개국 가운데 가장 높았던 반면 실질임금 상승률은 꼴찌에서 세 번째였다. GDP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율(노동소득분배율)이 이들 나라 중에서 가장 빨리 감소했다는 얘기다.


기업소득은 빠르게 증가하는데 투자를 하지 않으니 “기업저축의 역설”이라고 할만한 상황이 도래했다. 이제 원리금 갚기에도 급급한 “절약의 역설”(케인즈)에 더해 “기업저축의 역설”이 추가된 것이다. 또 비정규직이나 시간노동을 늘려서 가까스로 고용율을 높였지만 전체 실질임금은 감소하고 있으니 이제 “고용없는 성장”을 넘어 “임금없는 성장”이다.


ILO의 일련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은 임금주도성장, 또는 소득주도성장(한국은 자영업의 비율이 높으므로 임금주도로는 부족하다)을 택해야 하는 나라가 되었다. 노동소득분배율이 1% 증가했을 때 소비가 늘어나는 순효과가 투자나 수출에 미치는 역효과보다 더 크다는 얘기다. 더욱이 부경대 홍장표 교수의 계량경제학 분석에 따르면 장기적으로 노동소득분배율의 증가는 투자나 수출도 부추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은 한국의 실질임금을 마이너스로 만드는 데 가장 많이 기여했을 것이다. 만일 대기업이 제대로 하청 단가를 쳐주기만 하더라도 전체 실질임금은 크게 늘어날 수 있다. 즉 한국의 경우 경제민주화가 “기업저축의 역설”을 해소해서 전체 성장에 기여할 수 있다. 기업의 현금유보와 부자들의 자산과 소득에 대한 세금을 올려서 보편복지를 확충하는 것 역시 총수요를 증가시키는 데 일조할 것이다. 여기에 최근 붐을 일으키고 있는 사회적 경제가 충분히 지역에 뿌리를 내리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기금 등에 의한 지원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나아가서 경제 전체의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는 생태투자를 정부가 주도한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서울시가 최근 에너지 제로의 임대주택을 건설한 것은 훌륭한 본보기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이름으로 “정규직 보호”의 해체를 꾀하는 것은 축구에서 자살골을 넣는 것과 마찬가지다. “경제민주화”와 “맞춤형 복지”를 내세워 당선된 대통령이 “경제민주화의 종료”와 “경제혁신”=규제완화 및 민영화에 몰두하고, “소득주도성장”을 내비쳐 인사청문회를 통과한 경제부총리가 “부채주도성장”(빚 늘려 집값과 전셋값을 올리려는 정책이 바로 그렇다)와 “대기업 임금 삭감”에 올인하는 한, 한국경제는 “지속적 침체”의 수렁 속으로 더욱 깊이 빠져들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