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타파3] 매년 1월 수습사원이 되는 사람들

건물이 드문드문 들어선 한적한 세종시의 한 카페. 차를 한 잔 시켜 놓고 구석자리로 가 남자와 마주 앉았다. 얼굴은 하얗지만 다부진 체격과 큰 키. 예의가 바른 한편으로 몸놀림과 말에 ‘각’이 살아있는 느낌이다. 정부가 처음 세종시에 옮겨왔을 때부터 청사를 방호하는 특수경비직으로 일해온 삼십대 남자 김모 씨를 만났다.

운동을 좋아하는 청년이자 한 아이의 아빠로 평범하게 살아온 사람이 기자를 만나게 된 건 그가 갑작스러운 해고를 당했기 때문이었다. 억울했던 김 씨는 6미터짜리 기다란 현수막을 펼쳐놓고 정부청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보통 양손에 들 수 있는 작은 하드보드에 자신이 요구하는 메시지를 적는 데 비해 과감하고 특이한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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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씨가 직접 적은 업무일지

안정된 말투로 또박또박 자신이 겪은 억울한 상황을 말하던 그의 음성이 떨렸던 순간이 있었다. 자신이 그간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가를 말하던 때였다. 누가 시킨 적도 없지만 그는 매일매일 발생한 특이상황들을 자신이 스스로 만든 업무일지에 빼곡히 적어놓고 있었다. ‘3월 8일 커터칼 소지자 발견’, ‘4월 1일 로드블럭 오작동’ 등, 사소한 것부터 중요한 것까지 발생 상황과 그에 대한 간략한 대처가 적혀있었다. 그는 그 기록들을 검토하고 생각하며 스스로 빈틈없이 일하고자 노력해 온 사람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일했던 사람이 갑자기 잘렸다. 이유는 괘씸죄. 김 씨는 경비용역업체에 고용된 계약직이었는데, 잦은 밤샘에 저임금 등 열악한 노동조건을 바꾸려고 노조를 만들었던 일이 문제가 됐다. 그 사연도 안타까웠지만, 그가 일해온 방식도 기가 막혔다.

매년 수습사원이 되는 사람들

그와 그의 동료들은 매년 1월이 되면 수습사원이 된다. 연말이 되면 주기적으로 잘리고 다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제출해야 한다. 그러면 회사가 맘에 드는 사람을 골라 다시 채용을 해준다. 그렇게 채용되면 그들의 신분은 도로 수습사원. 경력이 몇 년이든 매년 초 수습사원이 돼서 눈치보며 일을 시작한다. 수습기간에 나쁜 평가를 받으면 계약이 취소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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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검토하는 방송을 준비하면서 지난 주 비정규직 노동자를 여럿 만났다. 그런데 서울대병원에 갔을 때 이와 똑같은 일을 겪고 있는 어머님들을 또 만나게 됐다. 예측치 못했던 일이었다. 얼마 전 복직협상이 타결됨에 따라 농성을 끝낸 씨앤앰 케이블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씨앤앰이 하도급을 준 용역업체 계약직으로 일해 온 케이블 기사들도 계약을 다시 할 때마다 신입사원이 된다.

이들의 공통점은 비정규직이라는 것이다. 그냥 비정규직이 아니라, 원청이 아웃소싱을 한 용역업체에 계약직으로 고용된 사람들이다. 이들은 비정규직 중에서도 가장 취약한 노동조건에 처해 있다. 정부세종청사에서 해고됐던 김 씨는 노동자들을 갑, 을, 병 세 단계로 나눴다. 갑은 정규직, 을은 직접고용 비정규직, 가장 하층인 병은 자신 같은 용역계약직이라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직접고용 비정규직도 꿈 같은 얘기”라는 그는 갑작스럽게 일자리를 잃고도 자신을 보호하는 아무런 법적 장치를 찾을 수 없었다.

밑바닥 비정규직의 가장 밑바닥

돌아보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불법파견 노동자들이 정규직을 목표로 하는 투쟁이 노사분쟁의 주를 이뤘다. (캐리어 사내하청,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 기륭전자, KTX여승무원, 현대차 등) 하지만 최근에는 씨앤앰을 비롯해 용역업체 계약직들이 열악한 근로조건이나 고용승계 문제를 두고 싸우는 경우가 늘고 있다. (티브로드, 씨앤앰, SK브로드밴드, LGU+, 세종정부청사 해고자 등) 이는 비정규직 안에서도 점차 더 열악하고 더 불안정한 용역업체 노동자들이 늘고 있음을 뜻한다.

정부는 용역근로에 대해 파견, 특수형태근로자 등과 함께 ‘비전형근로자’라는 항목으로 통계를 잡고 있다. 비전형근로자는 2003년 167만8천명에서 2013년 221만5천명으로 최근 십 년 간 32% 이상 증가했다. 특히 청소, 경비, 주차, 시설관리 분야 등 용역근로가 이뤄지는 분야에 주로 취업하는 50대 이상 비전형근로자 인구 추계를 보면 같은 기간 52만명에서 114만8천명으로 두 배 이상이 증가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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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역계약직이 폭넓게 활용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직접고용 비정규직이나 파견 비정규직은 어쨌든 비정규직 보호법과 파견근로자 보호법의 적용을 받는다. 막 쓰고 막 자르기가 약간 까다롭다. 하지만 용역계약직은 다르다. 원청이 용역업체와 계약을 끊어버리거나 용역업체가 노동자와 재계약을 안 하는 방법으로 손쉽게 사람들을 쳐낼 수 있다. 이 영역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해고’에 대해서 법은 거의 아무런 방어 역할을 하지 못한다.

6~7년씩 일해도 늘 비슷한 수준의 임금을 받고 경력도 인정받지 못한 채로 매년 신입사원이 되어야 한다면 당사자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용역업체 사장 눈 밖에 나면 당장 그 해 말에 잘리고 다시 일자리를 찾아 떠돌아야 한다. 법의 구제를 받으려면 긴 시간에 걸쳐 막대한 소송비용을 감당하며 원청회사가 실제 사용자 역할을 했는가를 까다롭게 따져봐야 한다. 수많은 청소, 경비, 주차, 시설관리 노동자들이 이런 형태로 일하고 있다. 훨씬 싼 값에 사람을 쓰고, 누구 눈치도 보지않고 쉽게 자를 수 있으니 용역업체의 계약직이야말로 원청 사장님 입장에서 ‘신의 한 수’ 아니겠는가. 용역계약직이 늘어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힘의 격차가 만들어내는 인간적 모멸감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서 먹고 살아야 하는 자본주의 사회 생활인들은 그 노동력을 구매해주는 사장님들에게 언제나 ‘을’일 수밖에 없다. 이 힘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국가는 노동3권을 마련했고 노동자들은 자발적으로 노동조합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매년 사람이 바뀌고 원청과 용역업체 양쪽 사장님 눈치보며 전전긍긍해야 하는 이들에게 노동조합 만들고 파업도 하면서 사장님하고 밀당을 해보라는 권리는 먼 얘기일 뿐이다.

비정규직의 문제는 2년이니 4년이니 하는 ‘기간’이 아니라 바로 이 ‘힘의 격차’에 있다. 그리고 이 힘의 격차만큼 직접적인 차별이 이뤄지고 일하는 사람들은 인간적 모멸감을 겪게 된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고통받는 지점은 이 언저리다. 틈만 나면 트집 잡히고 예고도 없이 짤리고 욕먹고 하층인간 취급을 받는다. 노동권이든 고용보장이든 힘의 격차를 제도적으로 줄이거나 최저임금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지 않는 한 이런 열악한 처지는 바뀌지 않는다.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결국 비정규직을 늘리겠다는 말 밖에 안되기도 하지만, 그 중 가장 취약한 용역계약직을 보호하기 위한 실효성있는 대책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대책’이라는 말은 좀 면구스럽다.

청소경력 7년, 환갑을 두 해 앞두고 올해 다시 서울대병원에서 청소미화 수습사원이 되었던 이연순 씨는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만들었다는 관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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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들이 오면 내가 병원에 수술실이나 중환자실에 데리고 갔을 거예요. 니들 여기 우리 일하는 걸 봐라. 어떻게 이런 내용을 우리한테 제시할 수가 있냐. 데리고 가서 똑똑히 보여줬을 거에요.

이 긴 글에도 내가 그분들로부터 들었던 억울한 사연들과 열악한 처지들을 절반도 채 담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다. 세종청사 새로 지은 건물에 들어앉은 관료와 청와대의 높으신 분들은 찬바람 부는 겨울이 되면 매년 수습사원이 되는 사람들의 사연을 알고나 있을까.

* 세종정부청사 특수경비 김 씨는 지난 8일 재계약됐다. 언론의 비판적 보도에 부담을 느낀 정부가 용역업체를 압박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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