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만이 그들을 위로할 수 있다

구약성경의 욥기는 신에 대한 순결하고 단단한 믿음을 가졌던 욥(Job)에 관한 이야기다. 어느 날 사탄은 야훼에게 내기를 제안한다. 가장 신실한 인간인 욥에게서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빼앗더라도 지금과 같은 믿음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보자는 것이다. 야훼는 사탄과의 내기에 응한다. 이에 욥은 갑자기 자식들과 재산을 잃고, 결국 온 몸이 부스럼에 시달리며 건강까지 잃게 된다. 그렇게 고통에 시달리는 욥에게 엘리바스를 비롯한 친구들이 찾아온다. 하지만 처음에 욥을 위로하던 친구들의 태도는 조금씩 달라진다. 결국 그들은 “죄 없는 사람이 망한 일이 있더냐?”며 욥을 몰아붙인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대하는 이런 태도는 현실에 대한 상징으로 느껴진다. 세월호 유족들은 한때 친구처럼 그들을 위로하던 정치인과 주변 사람들이 순식간에 자신들을 적대하는 일을 경험했다. 얼마 전 발간된 세월호 유가족들의 육성기록집 <금요일엔 돌아오렴>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시민들의 마음이 어떻게 이렇게 순식간에 절대적인 호의에서 절대적인 반감으로 바뀌는지 그분들은 어리둥절해 했다. 세상이 참으로 교활했다. 언론이, 정치인이, 일부의 사람들이 순식간에 선장보다 해경보다 더 나쁜 사람들이 되어갔다. 가족들을 조롱하고, 보상금으로 공격했다.” (6p) 이런 대목을 보면 욥기는 인류사에서 반복되어 온 고통의 양상에 대한 성경의 오랜 통찰로 읽힌다.

▲ 욥과 그의 세 친구들 ⓒ Gustave Doré
▲ 욥과 그의 세 친구들 ⓒ Gustave Doré

성경의 많은 구절들은 이렇게 인간사의 다양한 모습들을 상징적으로 설명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욥기는 ‘고통’을 다룬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지극한 상실의 고통이 주제다. 욥기에 대한 해석은 분분할 수 있으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욥이 겪는 모든 고통의 원인이 ‘신들의 내기’였다는 것. 바꿔 말하면 우리가 현실에서 갑작스레 겪는 고통의 이유를 인간 스스로가 납득할 만큼 완전하게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렇게 욥기는 종교의 존재 의미를 우회적으로 설명한다.

그 고통의 와중에 욥은 끊임없이 “왜”를 묻는다. 왜 내 자식들이 죽고 내가 재산과 건강을 잃어야 하냐며 그는 야훼에게 따져묻고 싶어한다. 그 역시 자신이 겪는 고통의 이유를 이해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 대목에서 현실의 고통을 희석할 수 있는 한 가지 단서를 얻을 수 있다. “왜”를 아는 것. 자신이 겪은 상실의 이유를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는 순간부터 고통의 무게는 조금이나마 가벼워진다.

가족을 잃은 고통에 시달리던 오룡호 유가족들도 그래서 “왜”를 원했다. 작년 12월, 북극해 바로 아래 거센 풍랑이 이는 베링해에서 오룡호는 침몰했다. 4미터 높이의 파도가 들이쳐 어창의 나무격벽을 부수고 배수펌프가 막혀 배가 가라앉았다고 경찰과 회사는 설명했다. 하지만 유족들이 알고 싶은 것은 그게 아니었다. 거센 바람이 불기 전에 대부분의 어선들이 피항했던 그 바다에서 왜 오룡호는 계속 물고기를 잡아 올려야 했는지, 구조하러 온 배에 사람을 옮겨 싣지 않고 왜 그냥 보내버렸는지가 궁금한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고통을 자신의 마음에 대고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 “왜”가 필요했다.

하지만 진실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유족들은 오룡호 선주인 사조산업 건물의 그늘이 길게 드리워진 싸늘한 길바닥에서 먹고 자며 농성을 했다. 진상규명하고 책임자 처벌하라, 실종자 수색 대책 세우고 보상문제에 책임있게 나서라는 것이 유족들의 요구였다. 사조산업 건물에 모여든지 40일 째.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명절을 앞두고 계속 냉동고에 가족의 시신을 얼려둘 수 없었던 유족들은 울분을 삼키며 농성을 접었다.

▲ 오룡호 유족들의 노숙농성장
▲ 오룡호 유족들의 노숙농성장

내가 오룡호 유족들의 농성장에 처음 갔을 때 진한 부산 사투리를 쓰는 한 명의 앳된 여자가 눈에 띄었다. 스물세 살 김순화 씨였다. 이번 사고로 명을 달리한 선원의 딸 정도 될 거라는 짐작과 달리 그녀는 자신의 동생이 죽었다고 말했다. 오룡호에서 3항사로 일하던 김순홍 씨가 한살 터울 동생이었다. 동생은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을 못 하고 고교 졸업 후 바로 어선을 탔다. 늘 미안한 마음으로 바라보던 동생이 지난 겨울 이역만리 차가운 바다에서 짧은 생을 마감한 것이다.

순화 씨는 이 억울한 죽음의 이유를 알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멀리 서울까지 올라와 길바닥에서 먹고 자며 농성을 했다. 끝도 알 수 없는 험한 일이었지만 딱 한 가지, 고통이 설명되리라는 희망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조 측의 임원은 “세월호가 아니었으면 오룡호는 문제도 안 됐을 것”이라며 오히려 막말을 했다. 작년 말 사고원인을 중간발표했던 경찰은 여태껏 결론을 못 내고 있고, 사고의 실질적 책임자인 사조산업은 유족들이 “협상보다는 시위”에 몰두한다며 음해성 자료를 배포하고 있다.

욥은 자신 앞에 각개약진해온 무수한 고통 앞에서도 끝까지 신에 대한 믿음의 끈을 놓지 않는다. 이윽고 야훼는 욥 앞에 나타나 그가 모든 고난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돕는다. 하지만 신도 나타나지 않았을 뿐더러 이웃도 없고 자신들의 고통도 이해할 수 없었던 어떤 사람들은 결국 삶에 대한 믿음의 끈을 스스로 끊어버렸다. 쌍용차의 해고자와 그 가족들 상당수가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최초의 고통과 트라우마가 시작된 시점부터 5, 6년 사이에 일어났던 일이다. 오룡호의 유족들, 그리고 이제 사고 1년이 다 되어가는 세월호의 유족들을 보며 나는 위기감을 느낀다.

성경에서 욥은 결국 모든 고통을 긍정하며 그것이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창조자의 영역임을 받아들인다. 그러자 그가 잃었던 재산은 복원되며 3명의 딸과 7명의 아들 또한 부활한다. 하지만 성경의 상징체계가 아닌 현실의 인간에게 이런 부활은 없다. 자식과 형제를 잃은 고통을 받아들이기 전에 좌절 속에서 삶의 끈을 놓아버리는 사람들은 언제든 나타날 것이다. 그 시간이 오기 전에 이 모든 참극의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진실을 밝혀 고통의 무게를 덜어줘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가족’에서 ‘유가족’이 되어버린 사람들. 진실만이 그들을 위로할 수 있다.

※ 관련 기사
– 길바닥에 버려진 오룡호 유족들
– 세월호 유가족들의 기록, ‘금요일엔 돌아오렴’

  • kalshin

    잘 읽었습니다. 진실을 밝히는 것이 시작이란 생각에 공감합니다. 그 이후에야 진정한 사과도, 용서 혹은 처벌도 따라올 수 있겠죠…

본 글은 뉴스타파 블로그를 통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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