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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무가내’ 생탁 사측… 손해배상청구소송 패소

정재원 프로필 사진 정재원 2016년 02월 04일

다큐멘터리 연출, 장애인 활동보조인, 시민단체 활동가, 사이버사령부 관제요원 등을 하며 이십대를 보내다 대학을 11년만에 졸업. 경제, 과학기술, 인권 분야 관심.

입춘이라고는 하나 여전히 쌀쌀했던 4일, 부산지방법원에 막걸리 ‘생탁' 노조원들이 모였습니다. 생탁 회사 측이 노조원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의 1심 판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측은 파업노동자들이 사장 25명의 명예를 훼손했고, 생탁의 이미지를 실추시켜 그로 인해 매출도 줄었다며 1억2500만 원을 배상하라고 소송을 냈습니다. 노동자들의 마음 속에 무거운 짐이 되어 온 손해배상소송, 그 시작은 2년여 전 시작된 파업이었습니다.



취업규칙도 몰랐던 노동자들, 파업을 시작하다


▲ 이옥형 씨의 월급명세서 ▲ 이옥형 씨의 월급명세서

생탁 공장에서 일했던 5,60대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인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열악하다 못해 끔찍한 노동환경을 바꿔달라는 요구였습니다. 위 사진은 생탁 공장에서 병에 막걸리를 넣는 일을 했던 이옥형 씨의 월급명세서입니다. 2002년 578,000원에서 시작한 월급은 십여 년이 지난 2013년 123만9000원 입니다. 수당 칸은 비어있습니다.


이런 박봉을 받으면서 이 씨는 한 달에 단 하루를 쉬면서 일했습니다. 막걸리가 많이 팔리는 명절이 가까워오면 하루 15시간 넘게 일하기도 했고, 여름휴가는 (반드시 일요일을 포함해서) 일 년에 딱 이틀뿐이었습니다. 연월차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생탁공장의 노동자들은 집안에 경조사가 있으면 평일에 쓸 수 있는 단 하루의 여름휴가를 아꼈다가 썼습니다. 법으로 보장된 연차 수당등은 한 푼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바보같이' 일했던 생탁 노동자들은 2013년 12월, 그동안 있는 줄도 몰랐던 취업규칙 책자에서 우연히 연월차와 수당 관련 규정을 발견합니다. 취업규칙은 상식적인 선에서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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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을 계기로 40년만에 처음으로 생탁 공장에 노조가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사측은 노동환경을 바꿔달라는 노조의 요구를 무시했고, 결국 2014년 봄 첫 파업이 시작된 것입니다.



철판상자 안에서의 253일


파업의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50여명 일하는 회사에서 파업 시작 한 달 뒤에 제2노조가 만들어졌고, 처음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이 대거 빠져나갔습니다. 파업에 남아있는 조합원들이 ‘어용노조'라고 부르는 제2노조는 어느새 회사 측과 말을 맞춰 파업 조합원들을 압박했습니다. 이런 상황 전개는 사측이 노조 탄생 직후 노무사와 같이 만든 ‘노조 대응 문건’에 나온 그대로였습니다.




▲ 생탁 사측이 작성한 노조 대응 문건 ▲ 생탁 사측이 작성한 노조 대응 문건

사측은 남은 파업 조합원 중 계약직으로 일하던 노동자 4명을 계약해지 형식으로 해고했습니다. 기존 노동조합은 회사의 암묵적 지원을 받아 다수 노조가 된 제2노조에게 교섭권도 빼앗겼습니다. 당초 마흔 명이 넘었던 조합원은 10명으로 줄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사측과의 싸움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 부산 시청 앞의 광고탑 ▲ 부산 시청 앞의 광고탑

2015년 4월 16일 새벽, 생탁에서 운전 일을 했던 송복남 씨가 부산시청 앞의 광고탑 위에 올라갔습니다. 길고 긴 농성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렇게 또 한 번 기약없는 싸움이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두 달 뒤, 파업 노동자 중 한 명인 진덕진 씨가 급성 심장사로 사망했습니다.







▲ 시민들에게 유인물을 돌리는 故 진덕진 씨 ▲ 시민들에게 유인물을 돌리는 故 진덕진 씨

1961년생 진덕진 씨. 제조된 막걸리를 차에 싣는 ‘상차’ 일을 했다. 파업이 시작된 후 막막한 앞날과 지독한 생활고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시름을 잊기 위해 술을 많이 마셨다. 다시 일을 하려면 몸을 만들어야 한다는 동료들의 설득에 술을 끊고 농성장에 나온지 한 달 남짓. 아파서 좀 쉰다는 얘기를 하고 집에 간 지 며칠만에 아무도 없는 방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그의 사인은 급성 심장사. 의사는 진씨의 사망 원인을 장기 파업에 따른 스트레스로 추정했다.




동료를 잃은 송복남 씨는 기자와의 지난 6월 전화 통화에서 터져 나오는 울음때문에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는 죽은 이에게 미안해서라도 고공농성을 중단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더 흘렀습니다. 그리고 새해를 불과 일주일 앞둔 12월 24일, 서병수 부산시장의 중재 약속을 받고 송 씨는 253일만에 땅을 밟았습니다.


▲고공농성을 중단하고 내려온 송복남 씨. © 오마이뉴스 ▲고공농성을 중단하고 내려온 송복남 씨. © 오마이뉴스

시청, 노조, 시민단체 말에 모두 귀막은 생탁 사측


서병수 부산시장이 직접 나선 중재안은 간단했습니다. 생탁 사측, 노조, 노동청, 시민단체 등 4자가 모인 협의체를 만들어 생탁 문제를 해결하기로 한 것입니다. 해가 가기 전에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던 부산시장이 이와 같은 내용의 ‘4자 협의체’ 구성을 약속한 것이 작년 12월 31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후 한 달 이상의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협의체 구성에는 아무런 진전도 없었습니다. 생탁 회사 측은 노동 조건 개선과 함께 파업 기간에 대한 생계비 지급, 계약직 노동자들의 고용 보장 등을 요구하고 나선 노조 측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 있으니 파업 기간 중 임금 지급은 어렵고, 이미 해고된 계약직 역시 다시 고용할 수 없다는 게 회사측 입장입니다. 지금까지 4자 협의체는 제대로 된 공식 회의 한 번 열지 못했습니다.




마지막 선이라고 생각한 고공농성을 풀고 내려왔는데 일이 이렇게 되니 제가 오죽이나 울분이 쌓여있겠습니까. 내려오기 직전에 4시쯤까지도 불안해서 부산시장이 직접 문서에 도장을 찍어야 내려가겠다고 요구했습니다. 부산시 측은 이미 언론에 다 보도가 됐으니 그게 문서보다 강하다고 설득했습니다. 결국 주저하다가 급하게 핸드폰 하나만 들고 내려온 겁니다. 일이 이렇게 막혀 있으니 욱하면 뛰어내리고 싶은 그런 마음까지 듭니다. 술을 안 먹으면 잠이 오지를 않습니다.
- 생탁 노동자 송복남 씨



생탁 사측, 손해배상소송 패소


사측은 4자 협의에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지만 파업을 했던 지난해 노조원 10명에 대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은 계속 진행시켰습니다. 사측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 1심 재판이 열린 4일 아침 10시, 재판 현장에 모였던 조합원들이 모처럼 마음의 짐을 덜어낸 얼굴로 재판정을 나섰습니다. 1심 재판부는 노조의 활동과 생탁 매출 사이의 직접적 연관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사측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를 기각했습니다. 판결을 통해 사측의 억지가 확인된 순간이었습니다.


부산경남 막걸리 시장에서 독보적인 점유율을 바탕으로 일본 등 해외시장까지 진출한 생탁. 25명의 사장 대부분은 부모로부터 사장 직위를 물려받아 한 해 수 억원의 이득을 각각 나눠 갖지만, 월급 백여만 원 받으며 일해온 노동자들과는 한치도 타협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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