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는 여자였다

마리는 여자였다. 초등학생 때 외삼촌 댁에 놀러 갔다가 고등학생이었던 사촌오빠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사촌오빠는 엄마나 외삼촌 부부가 없을 때를 틈타 마리의 바지 속으로 손을 넣었다. 몇 차례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마리는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처음에는 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숨겼지만, 거듭 일이 일어나자 엄마에게만 살짝 그간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엄마 나… 이런 일이 있었어. 하는 담담한 진술이었지만, 사실 그 말의 뒤에는 자신을 보호해달라는 절박한 외침이 숨어있었다.

어쩌면 마리의 외부세계가 처음 마리를 부수려 했던 그 순간, 바깥을 향해 띄운 조난신호는 안타깝게도 회신 되지 않았다. 엄마는 마리의 말을 듣고 사촌오빠를 혼내거나 외삼촌 부부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오히려 마리에게 그게 별일이냐며 함구할 것을 요구했다. 네가 알아서 조심했어야지, 마리를 질책하기도 했다. 마리는 혼란스러웠다. 자신이 문제인가 싶어 사촌오빠를 피했지만, 방어불능의 자신을 무너뜨리고 밀려들어온 더러운 손길에 대한 기억은 어린 나이 연한 살에 화인으로 찍혀 남았다.

시간이 흘렀다. 마리는 서른 살이 되었다. 한 남자와 결혼을 했고 아이도 낳았다. 하지만 마리는 계속 그때의 일을 생각한다. 기억이 흩어졌다 싶을 때 불현듯 되살아난다. 그런 경험을 일러 흔히 ‘마음의 상처’라고 쉽게 표현하지만, 그것은 시간이 흘러 아무는 상처의 일종이 아니었다. 잠복해있다가 마음의 힘이 약해지면 다시 몸을 일으켜 숙주의 심신을 파먹는 불치의 병원균 같은 기억이었다.

사건 자체보다 절망적이었던 건 마리가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엄마가 보호를 거부한 일이었다. 마리가 지난 30여 년을 생각할 때 엄마는 나쁜 엄마는 아니었다. 힘든 상황에서도 마리를 성실하게 키웠고, 지금도 직장에 다니는 마리를 대신해 아이를 돌보며 노후에도 고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것을 마리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엄마와의 관계는 순탄치 못했다. 엄마의 헌신을 지켜보면서도 배경에는 불신이 흘렀다. 까마득한 어린 날의 기억이 여전히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가장 가까운 가족과의 관계를 저미고 있었다.

HINA ⓒ HULA Sean Yoro
▲ HINA ⓒ HULA Sean Yoro

나는 여성들이 겪어 온 성폭력 피해에 관한 취재를 하다가 마리를 만났다. 마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연스레 몇 가지 질문을 떠올렸다. 무책임한 양육자가 아니었던 엄마는 왜 마리의 구조신호에 응답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어린 마리가 보호를 요청했던 대상에 아빠는 왜 빠져있었을까.

마리의 이야기 속에는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아빠였다. 엄마는 아빠에 의한 가정 폭력에 시달렸다. 아빠는 바람을 피우기도 했고 집에 와서는 종종 힘을 휘두르거나 폭언을 했다. 엄마는 가정생활을 불안하게 느꼈고 여유가 없었다. 그런 까닭에 자신의 딸이 겪는 문제를 같이 의논하고 대응할 옆 사람이 없었다. 썩 미덥지는 않아도 그나마 자신에게 안식처였던 본가 가족들 사이로 오빠의 아들이 저지른 ‘범죄’를 공론화할 용기는 더욱 없었다. 흔들리던 배를 아예 반파시킬지도 모를 일을 시작할 마음의 힘이 없었던 것이다. 엄마는 시한폭탄 같은 마리의 호소를 받아안는 대신 그 불씨를 꺼버리길 원했다.

이런 상황이 만들어지기까지, 밖에서는 참고 삭이지만, 집에 오면 자기 아내를 때려도 된다고 생각했던 남편이 있었다. 그는 둘이어도 버거울 양육의 책임을 온전히 엄마에게만 떠넘김으로써 마리의 구조요청 범위에서 사라졌고 그로 인해 이 사건에 관한 마리의 트라우마에서도 사라졌다. 또한 이 모든 사건을 벌인, ‘남자는 좀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며 장난처럼 여동생을 희롱한 고등학생 남자아이 또한 관계가 멀어지면서 지금 마리가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거리에서 사라졌다. 여전히 현실의 관계에서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마리와 엄마, 두 여자다. 앙상해진 두 사람의 책상 위로 출제자가 사라지고 유효기간조차 지나 누구도 풀 수 없게 된 문제가 악취를 풍기며 놓여있다.

고통. 극복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고통. 여성을 때리거나 추행하거나, 일상적으로 말과 시선으로 희롱해온 여러 남성들의 폭력은 이렇게 불가해한 고통으로 한 인간의 삶을 포박한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그 포박을 이루는 단단한 사슬을 풀 수 없다. 이런 일이 어디 마리뿐일까. 남성들의 폭력이 쌓아 올린 여성들의 거대한 울분과 공포가 화구 속에 갇혀 들끓고 있다.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터져 나오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그 작은 표출에 불과하다.

여전히 마리와 엄마는 20여 년 전에 일어난 성폭력의 사슬에 묶여있다. 하지만 성폭력 피해자들을 지원하고 그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까지 폭넓게 돌봐온 여성운동의 노력으로 그나마 많은 피해자들이 치유의 길에 서 있다. 신안 섬마을 남성들이 저지른 잔인한 성폭력에 다친 선생님도 부디 그 치유의 길을 걷기를….아픈 상처가 질병으로 덧난 마리의 길을 더이상 누구도 따라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 마리(가명)는 여성혐오와 성폭력 문제를 취재하던 중 만난 한국인 취재원이었다. 기자는 지난 한 달 사이 여러 형태의 성폭력 경험을 가진 여성 5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취재가 진행되던 지난 21일 밤, 전남 신안에서 섬 주민들이 교사를 성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 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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