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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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집회’에 십자가가 등장하는 까닭은?

정재원 프로필 사진 정재원 2017년 03월 09일

다큐멘터리 연출, 장애인 활동보조인, 시민단체 활동가, 사이버사령부 관제요원 등을 하며 이십대를 보내다 대학을 11년만에 졸업. 경제, 과학기술, 인권 분야 관심.

탄핵심판 선고기일을 하루 앞둔 9일, 탄핵반대 단체들이 아침부터 헌법재판소 인근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탄핵을 찬성하는 국민이 대다수지만 탄핵반대를 외치는 사람들이 무시할 수 없는 규모임은 지난 3월 1일 탄핵반대집회를 통해 확인됐다. 태극기나 성조기 만큼이나 흔하게 십자가가 눈에 띄었던 이날 탄핵반대집회. ‘부활’과 ‘구원’까지 등장하는 이 집회의 독특한 색깔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모이게 된 걸까? 이 의문을 풀어줄 실마리를 지난 1일 한 교회에 잠입해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삼일절에 열린 탄핵반대집회 현장에서 십자가를 든 참가자 지난 삼일절에 열린 탄핵반대집회 현장에서 십자가를 든 참가자

삼일절을 맞아 경기도 안양 은혜와진리교회 오전 예배에 참석했다. 대형 교회들이 신도들을 탄핵반대 집회에 동원한다는 제보를 받고 사실 확인을 위해 예배당에 잠입한 것이다. 안양에 본당을 둔 은혜와진리교회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많은 신도를 거느리고 전국에 40개의 지교회를 둔 초대형 교회다.


뉴스타파에 제보를 한 사람들은 조용목 담임목사의 설교를 어릴 때부터 들으며 이 교회에 다닌 충성스러운 신자들이었다. 하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관해 알려진 내용은 거짓이며 변희재나 박 대통령 대리인단만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내용의 ‘시국 설교’를 듣던 젊은 신자들은 조 목사에 대한 오랜 신뢰를 거둘 수밖에 없었다. 일부 신도들은 길게는 30년 가까이 다녔던 은혜와진리교회와의 인연을 끊었다.




지난 삼일절 오전 예배에서 조용목 목사의 설교 장면 지난 삼일절 오전 예배에서 조용목 목사의 설교 장면

나는 설교를 들으며 목사가 탄핵반대집회 참여를 독려한다는 제보자들의 말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예배가 끝나고 밖에 나가니 교회 측은 신도들이 집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꼼꼼하게 준비를 해놓았다. 사무실에서는 태극기를 대량으로 준비해 나눠줬고, 교회 게시판에는 탄핵반대집회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교회 밖에는 45인승 전세버스가 스무대 가량 줄지어 서 있었다.


나는 어머니뻘 되는 신도들 틈에 섞여 그 버스에 올라탔다. 평소 탄핵반대집회를 취재하며 참가자들 틈을 비집고 돌아다닌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가까이 다가가 신분을 감추고 얘기를 나눠보기는 처음이었다. 가짜 신도임이 들통나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다소 공격적으로 보이는 탄핵반대 집회와 달리 버스 안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마치 관광버스를 타고 소풍 가는 것처럼, 버스에 탄 어머님들은 재잘재잘 떠들며 싸 온 음식들을 함께 나눠먹었다. 처음 보는 남자인 나한테도 아무 거리낌 없이 말을 걸며 김밥이나 과일 등을 나눠주었다. 교회에서 쓰는 몇 가지 말들을 배워간 덕에, 나는 수십 년씩 은혜와진리교회에 다녔다는 어머님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려 여러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교회가 준비한 버스를 타고 탄핵반대집회에 가는 은혜와진리교회 신도들 교회가 준비한 버스를 타고 탄핵반대집회에 가는 은혜와진리교회 신도들

이때까지 나는 이분들을 집회에 나서게 한 것이 목사의 설교나 어르신들의 카카오톡 등에 돌아다니는 ‘가짜뉴스’일 거라고 생각했다. 단편적으로는 맞는 얘기지만, 일부 신도들이 조 목사의 설교에 반발해 예배당을 박차고 나갔던 상황에서 왜 다른 신도들은 마음을 움직여 버스에 탔는지 궁금했다. 서울에 오는 내내 그분들과 얘기를 나눠본 결과, 집회에 나서게 한 것은 무엇보다 그들 마음 속의 ‘불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 강남의 소망교회 같은 곳에는 한국 사회의 엘리트나 부유층들이 많지만 대체로 서민층 거주지역에 세워진 은혜와진리교회의 신자들 상당수는 경기 변동이나 갑작스러운 사회 변화에 불안감을 느끼는 장노년층 서민들이다. 이런 교인들이 지금껏 세상살이의 불안감을 해소해 온 방법은 뭘까. 물론 ‘믿음’이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면 ‘은혜’를 입을 수 있고, 은혜를 입는 이상 고통 또한 ‘하나님의 계획’에 포함되며 결국은 하나님이 삶을 구원해줄 거라는 믿음으로 그들은 살아왔다. 은혜를 입기 위해 죄를 줄이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삶.


그런데 이런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문자가 유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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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자는 은혜와진리교회의 한 권사가 자신과 연결된 신도들에게 보낸 문자다. 이 문자를 받은 신도가 문자 내용을 취재진에게 제보했다. 얼마 후 교회와 무관한 다른 노인들의 카카오톡에서도 이 문자가 발견된 걸로 봐서는 누군가 만들어 진작부터 유포를 시작했고 상당히 널리 퍼진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과 중국이 합작해서 북한 특수부대를 동원해 대한민국을 전복하는 폭동을 일으키려 한다는 이 황당한 ‘가짜뉴스’는 우리 사회가 큰 변동을 겪는 지금 이분들이 느끼는 불안을 더욱 자극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타고 떠들썩하게 전해진 ‘긴급’한 ‘유혈 폭동’ 위기를 어떻게 이겨내야 할까? 믿음 하나면 지옥조차 피할 수 있다고 보는 분들 입장에서는, 이 위기를 극복할 유일한 방법 또한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은혜뿐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기이한 가짜 뉴스를 보여주고 불안감을 자극한 뒤, 목사가 설교에서 "애국자들이 집회에 참여하여 외치는 행동으로 하나님께 호소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부르심을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기이하고 놀라운 방법으로 이를 성취하여 줄 것"이라고 말하면 탄핵반대집회에 나가서 하나님 은혜를 받아 나라가 뒤집히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2017년 1월 22일 주일예배, 조용목 목사의 시국설교 장면 2017년 1월 22일 주일예배, 조용목 목사의 시국설교 장면

그 버스의 어머님들 중에는 미리 교육을 받은 것처럼 조목조목 가짜뉴스를 주변 사람들에게 해설해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저 수동적으로 말을 듣고 있었다. 그중 한 60대 여성은 “사랑하는 목사님이 원래 시국 말씀 한마디도 안 하셨는데 요즘 이렇게 매주 나라 걱정하시는 걸 보면 이번엔 정말 뭔가 잘못될 것 같다”며 “생전 집회 한 번 안 나가봤지만 이러다가는 큰일 날 것 같아서 오늘 버스를 탔다”고 말했다. 실체 모를 막연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믿고 사랑하는’ 목사의 지침을 따라 교회의 동원에 응한 것이다.


교회 사람들과의 관계나 신에 대한 믿음을 통해, 삶을 잠식하는 불안에서 벗어나 평안함을 되찾을 수 있는 종교는 삶에 긍정적인 의미가 된다. 하지만 조용목 목사는 거짓 정보에 자신의 정치적 편견을 짜 맞춘 설교로 신도들이 탄핵반대집회에 나가야만하는 이유를 만들어냈다. 신도들의 마음속 불안을 이용해 자신의 정치적 편견을 설파하고 정치적 행동을 조장해 나라를 진정으로 불안케 하고 있는 사람은 조용목 목사와 같은 일부 종교인들이 아닐까.




삼일절 당일 시청광장 일대에서 열린 탄핵반대집회 삼일절 당일 시청광장 일대에서 열린 탄핵반대집회

강남 소망교회나 사랑의교회 등 상대적으로 부유층이나 젊은층이 많은 교회들에서는 목사가 신도들을 정치적으로 동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이런 계층은 상대적으로 정확한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어서 가짜 뉴스나 목사의 엉뚱한 설교에 현혹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기독교를 20여 년간 연구해온 김진호 씨(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는 이런 교회의 목사들이 ‘돈줄’인 젊은 신도들을 잃을까봐 눈치를 보며 설교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90년대 이전에 교회를 장악해서 제왕적인 권력을 확립한 목사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교회에서 편향된 정치적 기획에 신도들을 동원하고 있다. 이런 정치적 기획에 휘말려드는 것은 서민층, 특히 장노년층 서민들이다. 한국 현대사의 전 시기에 걸쳐 재벌에 치이고 부패한 권력에 희생당했던 한국사회의 서민들이 이렇게 다시 종교 권력에 이용당하고 있다.